[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인천상륙작전기념관] 1950년 9월 15일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에 의해 시작된 인천상륙작전.“맥아더 원수 지휘하에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으로써인민군은 패퇴하기 시작했다. 저항하는 패잔병들을 무찌르면서한강을 도하한 국군은 서울로 진입했다.”민족의 증언3 中전세를 역전시키며 한반도를 지켜낸 최고의 작전으로 평가되는 인천상륙작전.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기념관이 있다.인천 송도 청량산 중턱에 우뚝 서 있는 인천상륙작전기념관. 호국용사들이 새겨진 거대한 반원형의 아치로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이종석 별장] 한양도성 북쪽에 있다는 뜻의 성북동. 성북동 성곽 길을 따라 걷다 만나게 되는 덕수교회, 그 뒤편에 웅장한 가옥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이종석 별장이다. 이종석 별장의 화려함은 당대에도 큰 주목을 받았는데... 1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성북동 이종석 별장에 숨겨진 역사를 만나본다. “이 부자의 별장은꼭 왕공(王公)이 사는 집 같이호거장려(豪擧壯麗)하다“-삼천리 제7권 제5호 (1935.6.1.)1900년경 건립된 이종석 별장. 별장의 주인 이종석은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舊 용산철도병원] 용산역과 신용산역이 자리 잡은 한강로 3가 일대에 낡은 벽돌색 건물 한 채가 눈에 뜨인다. 현재는 ‘옛동’이란 이름 하나만 남아있는 방치된 서울의 등록문화재 舊 용산철도병원이 그것이다. 사업비 30조 원에 육박한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용산 개발 사업이 무산되면서 2014년 1월 코레일 측은 용산부지 등 부동산 자산 매각 추진하면서 구 용산 철도병원은 매각 대상에 놓이게 된다. 1904년 만주와 한반도의 지배권을 두고 벌어진 러일전쟁을 계기로 일본의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서강대 본관] 신촌 중심가에 자리한 서강대학교. 학교 정문에 들어서면 능선 위에 세워진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중심에 있는 건물이 바로 본관이다 엄격한 비율과 절제된 분할 미가 돋보이는 본관 건물은 건축가 김중업의 대표적인 초기작 중 하나이다. 본관은 1959년 11월에 건립된 것으로 연면적 4,184m2,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로서 이사장실, 총장실을 비롯하여 종합봉사실, 기획처, 교무처, 총무처, 대외교류처, 법인 사무처 및 80여 평 규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가난했던 1960년대, 연극인들의 꿈의 무대로 불렸던 남산 드라마센터. 다양한 창작극과 실험적인 작품들을 무대에 올리며, 우리나라 현대연극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갔다. 1962년 남산 자락에 건립된 드라마센터는 한국 최초의 연극 전문 공연장을 표방하며, 건립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극작가이며 연출가인 유치진 선생이 미국 록펠러재단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아 착공하여 1962년 준공되었다.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옛 광통관] 100여 년 전의 근대건축물 중 드물게 본래의 기능이 이어져 내려오는 곳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점포 중의 하나로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위치한 광통관이 바로 그것이다. 1909년 신축된 이후 지금까지 은행 점포로 사용되고 있으며 근대 건축물로는 보기 드물게 본래의 기능을 변함없이 이어오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기 자국의 은행을 앞세운 일본의 경제 침략이 본격화되고 1899년 정부 관료와 조선인 실업가가 참여한 민족계 은행 대한천일은행이 설립되었다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서울도서관] 2009년 4월 등록문화재 52호 구 서울시청사가 일부 철거를 완료하고 4년여의 공사를 거쳐 2012년 10월 13일 서울시청 신청사가 개청되었다. 지금은 시민들의 공간이 된 서울도서관은 광복 이후 80여 년간 대한민국의 서울시청 건물로 사용되어왔다. 조선을 완전히 지배하게 된 1910년, 일본은 조선총독부령을 발포해 한성부를 경성부로 개칭하고 경기도의 부속 도시로 격하시켰다. 서울은 더 이상 조선의 수도가 아니라 식민지의 일개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탑골공원] 종각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종로 한가운데엔 대한제국 초기, 공원으로 개방된 근대의 공간이 있다. 1920년 ‘파고다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원하였으나 1992년 지금의 명칭으로 바뀐 탑골공원이다.97년 전 거국적인 만세 운동의 진원지였던 공원의 첫 얼굴은 삼일문. 탑골공원 자리는 고려시대 흥복사라는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불심이 컸던 조선 세조에 이르러 2천 명이 넘는 군사를 동원하고 가옥 200여 채를 사들여 도성 제일의 가람 원각사로 중건되었으나 연산군 때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용산 신학교] 1886년 프랑스와 통상 외교 조약이 체결되면서 100년간에 걸친 조선의 천주교 박해정책이 막을 내리고 약현성당(1892년 건립된 최초의 서양식 고딕 성당) 명동성당(1898년 건립된 두 번째 고딕 성당)에 이어 1902년 세 번째 고딕 성당인 원효로 성당이 건립되었다. 용산 원효로에 자리 잡은 성심여자중고등학교 교정엔 100년을 훌쩍 넘긴 고색의 고딕 성당이 있다. 경사진 땅에 그대로 세워져 오르는 곳에선 3층처럼 보이지만 성당을 따라 돌면 어느새 2층
[미디어파인 칼럼=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중앙탕] 오래되고 촌스러운 가게들 사이로 서울의 예전 모습이 마치 시간이 정지해버린 듯 친근하고 푸근하기까지 하다. 북촌 골목길 귀퉁이에 계동의 명소라는 별칭이 붙은 2층짜리 대중목욕탕이 있다.24시간 사우나, 찜질방이 대세인 요즘, 외지인들에겐 그야말로 골동품 같은 목욕탕이지만 이곳 주민들에게 중앙탕은 여전히 일상의 한 부분이다.인근에 위치한 중앙고등학교 운동부의 샤워장으로 사용되다가 대중목욕탕으로 문을 연건 1969년. 목욕탕은 나이가 반세기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디어파인 칼럼=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3년 11월, 종로구 소격동에는 미술계 최대의 화제였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을 했다. 서울관의 화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둘을 잇는 근대의 공존이다. 그중 미술관의 주출입구인 붉은색 벽돌 건물은 1928년 개원한 경성의학전문학교 부속의원의 외래 진찰소 건물로 1932년 일부 준공 후 1933년 증축으로 40년 가까이, 보안과 통제로 불가침 영역이었던 국군 기무사령부이자 일제강점기엔 서울대 의대의 전신이 된 경성의전 외래진료소가 있었다.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건국대 상허기념관] 서울 광진구 화양동의 건국대학교. 교정으로 들어서면 2만여 평의 호수 일감호를 시작으로 여느 대학처럼 최신식 건물들이 즐비하다. 그 교정 한가운데로 들어서 있는 붉은색 고풍스러운 벽돌 건물 하나, 건국대학교의 모태이자 지금은 상허기념관이라는 이름의 대학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옛 서북학회 회관이다. 서북학회 회관(西北學會 會館)으로 불렸던 이 건물은 건립 당시만 해도 민족애국계몽단체인 서북학회의 회관으로 종로구 낙원동 282번지에 그 터를 잡았던 건물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낙원동 떡전골목] 순수와 장수를 뜻하는 떡국으로 새해를 열고... 명절마다 생일마다 제사마다 먹었던 떡... 그리고 우리 떡의 명맥을 잇고 있는 서울의 한 거리가 있다. 창덕궁과 창경궁이 가까운 낙원동 일대엔 한국전쟁을 전후해 터를 잡은 옛 떡전골목이 바로 그곳이다. 이곳 떡집 대부분은 짧게는 3~40년에서 길게는 100년 가까이 이 골목을 지키고 있다. 한때 수 십 곳에 달했던 떡집들이 지금은 열 곳 남짓으로 줄었고 궁중 떡으로 유명한 이곳의 맛과 멋은 여전히 서울시
[미디어파인 칼럼=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부민관] 일제 강점기, 동양극장, 단성사, 명치좌 등의 여러 극장들은 영화 상영으로 인기가 높았던 경성부민들의 문화공간이었다. 하지만 많은 연극단체와 악극단을 위한 대규모 공연장으론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던 1935년, 태평로를 사이에 두고 지금의 서울시 청사인 경성부청 맞은편에 국내 최초의 다목적 공연장이 들어섰다. 현재 서울 시의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부민관은 1,800명을 수용했던 대강당 외에도 중강당과 소강당, 조명과 냉난방 시설 등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지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정관헌] 광해군의 경운궁에서 대한제국의 본궁이 된 덕수궁. 궁의 대표적인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과 덕수궁 미술관 그리고 덕수궁의 가장 높은 곳엔, 덕수궁 건물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지어진 양식 건축물이 하나 있다. 정관헌. 이름 그대로 고요하게 내려다본다는 뜻의 이 회랑은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이 다과를 즐기던 휴식공간이자 외교사절을 접대하는 등 행사와 만찬을 즐겼던 연회장이었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뒤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관에 피신해 있던 고종은 환궁 후 덕수궁 안에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새마을 운동 7년을 결산하고80년대 새로운 의지를 다짐하는 77년도새마을지도자대회가 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전주에서 열렸습니다.수십년 만에 닥쳐왔던 극심한 가뭄 속에서도우리 농민들은 피땀 어린 노력을 다해 4,170여만섬의 쌀을 생산했고 특히 정보 당 494kg수확으로 세계최고기록을 세워이젠 쌀이 남아돌아서 걱정일 정도인데...- 대한뉴스 1154호 / 1977.12.19.쌀 4천만 섬 생산, 수출 100억 달러 달성으로 자신감과 의욕이 충만하던
[미디어파인 칼럼=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해방촌]빈 도시락마저 들지 않은 손이 홀가분해 좋긴 하였지만해방촌 고개를 추어 오르기에는 뱃속이 너무 허전했다.산비탈을 도려내고 무질서하게 주워 붙인 판잣집들이었다.철호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레이션 곽을 뜯어 덮은 처마가 어깨를 스칠 만큼 비좁은 골목이었다.부엌에서 아무 데나 마구 버린 뜨물이, 미끄러운 길에는구공탄 재가 군데군데 헌데 더뎅이 모양 깔렸다.../ 소설 中950~60년대 궁핍한 서민의 삶을 그린 소설과 영화의 배경이 됐던 용산구 판자촌 일대. 용산구 용산동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동국대 명진관] 1902년 초, 동대문 밖엔 전국의 사찰을 총괄할 수사찰인 원흥사가 창건된다. 그리고 신불교운동을 전개하던 몇몇 승려들에 의해 불교연구회가 조직됐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서두른 건 근대불교 학교의 설립이다. 그렇게 불교계는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인 명진학교를 설립했지만 교단의 혁신 운동과 맞물려 학교는 오랫동안 부침을 겪어야 했다. 서울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남산 자락의 필동 일대. 대학으로 승격되면서 혜화동을 떠나 새롭게 마련한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뚝섬수원지] 서울에서 시민들이 수돗물을 먹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구한말, 함경남도 북청 출신을 중심으로 생겨나 서울 골목길을 누비며 우물물을 길어다 판매하고 방대한 조직으로 성장했던 물장수.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머리맡에 찬 물을 솨아 퍼붓고는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 사라지는북청 물장수물에 젖은 꿈이북청 물장수를 부르면그는 삐걱삐걱 소리를 치며온 자취도 없이 다시 사라진다날마다 아침마다 기다려지는북청 물장수- 북청 물장수(김동환 1924년)
[미디어파인 칼럼=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서울기상관측소] 경희궁 서쪽 언덕 위, 종로구 송월동 1번지엔 흰색의 고풍스러운 건물이 하나 있다. 지난 80여 년간 서울의 날씨를 공식 기록해온 서울기상관측소. 1933년, 낙원동에 있던 경성측후소를 옮겨온 것이다. 서울의 모든 기상 기록은 이곳 송월동 기상관측소에서 관측된 것이 공식 기록이 된다. 예를 들면, 이곳에 비와 눈이 와야 서울에 눈비가 온 것으로 발표되고 이곳 벚나무에서 세 송이 이상 꽃이 펴야 서울 벚꽃 개화가 알려지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