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舊 인천대화조] 인천 중구 관동 1가. 지명이 말해주듯 이곳은 영사관, 경찰서, 우체국 등 관공서가 밀집해 있던, 개항기 일본 조계지의 중심가였다. 이곳 개항장 부근에 남아있는 일본식 건물 한 채가 지나가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금은 120년 세월을 넘어 카페로 변신했지만 이곳은 가난한 조선인 인부들이 드나들던 개항 시절의 하역회사 사무소 겸 주택으로 사용한 건물 대화조였다. 120년 전 일본의 도시형 점포주택 일본식 상가 겸용 주택인 마치야(町家, 정가) 형태의 목조건물이다.201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남대문교회] “경성역 앞 남문 밖 교회에서 만나자”해방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어수선했던 시절, 실향민들에게 서울역 건너 지금의 남대문교회는 약속의 장소였다. 회현동 언덕, 고층 빌딩이 들어서기 전까지 한눈에 들어왔음직한 남대문교회. 1885년 제중원 신앙공동체로 시작된 교회는 병원이 이전될 때마다 예배 공간이 바뀌었고 드디어 1910년, 남대문 밖에서 첫 예배당의 봉헌식을 가졌다.70평 규모의 한옥 예배당 건립을 시작으로 제중원 교회에서 남대문밖 교회로 개칭되었다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태릉선수촌]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자리 잡은 종합 선수 합숙훈련장 태릉선수촌. 태릉선수촌은 1964년 도쿄올림픽대회 후 한국 스포츠의 재건과 일선 지도자 및 국가대표 선수의 강화 훈련을 위해 당시 대한체육회장인 민관식의 추진에 의해 1966년 6월 대한체육회가 설립한 종합 선수 합숙훈련장이다. 각 경기종목의 국가대표나 예비 국가대표 선수들을 수시로 입소시키면서 합숙훈련을 하며 전력의 집중적인 향상을 위하여 종합운동시설과 숙박시설이 갖추고 있다.숙소 몇 동으로 출발한 선수촌은 50년 새,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중앙대 영신관] 검은 돌밭이라고 해서 거의 버려진 땅이었던 옛 흑석동 일대. 80년 전 이곳을 중심으로 중앙대학교의 역사가 시작됐다. 중앙대는 1918년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중앙교회에 중앙유치원 창설을 계기로 유치원 교육운동과 함께 새로운 민족교육을 목표로 출발하였다. 당시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되는 학교를 제외하고 우리의 힘과 자본으로 설립해 민족교육을 가장 효과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학교는 유치원이었다. 그 불모의 땅을 학교권 도시로 바꾼 석조 교사(校舍) 한 동. 캠퍼스에서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인천 중구청] 일본식 목조건물을 재현해 놓은 인천의 개항 누리길. 차이나타운과 인천 중구청을 잇는 이 길은 개항 후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일본 조계지(주로 개항장에 외국인이 자유로이 통상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구역) 이자 근대 인천을 잘 느낄 수 있는 지역이다. 특히, 중구청은 개항 당시 일본영사관으로 출발해 지금까지도 관공서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지금의 인천 중구청은 일제강점기 시기인 1932년 8월 19일에 착공하여 총 6번의 설계변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양화대교] 한강 3대 나루터 중 하나였던 양화진이 있던 합정동 부근. 1965년, 이곳과 영등포 당산동을 잇는 다리가 놓였다. 철거된 옛 광진교를 제외하면 한강대교 이후 근 반세기 만에 걸쳐진 다리로 당시엔 제2한강교로 불렸다. 당시 한강대교만으로는 교통량을 감당하기 어려워 한강 하류에 다리를 가설하고 양화대교를 준공하였는데 서울 서부와 수도권 서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서울에서 서부전선의 문산으로 물자 수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이 더 컸다.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국기원] 서울 강남의 중심 테헤란로 인근. 2013년, 이곳엔 국기원길이라는 명예 도로명이 부여됐다. 세계태권도 본부로 널리 알려진 국기원 이 있어, 이곳을 방문하는 전 세계 태권 도인들과 강남을 찾는 일반 관광객에게 태권도 종주국 한국의 위상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기 위해서다.농지와 초가집 뿐, 허허벌판이었던 당시 의 역삼동 구릉지에 태권도인들의 꿈인 중앙도장이 건립된 건 1972년. 대지 2천여 평 총공사비 1억 5천여만 원, 지하 1층 지상 3층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완공됐다.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혜화동성당] 젊음과 문화의 거리 대학로를 조금 벗어난 혜화동 로터리 일대는 천주교계에선 ‘믿음의 고향’으로 불린다. 한국 최초의 신학교 가톨릭대학과 가톨릭 법인의 동성고등학교 그리고 서울 북부지역 성당의 중심 혜화동 성당이 있기 때문이다. 혜화동성당은 약현성당(1892년 축성), 명동성당(1898년 축성)에 이어 서울에 세 번째 축성된 성당이다.혜화동성당은 성 베네딕도 수도회가 지금의 혜화동에서 이전하면서 그 터에 1927년 혜화동성당이 건립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후 신자들이 증가하면서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구 인천우체국] 인천광역시 중구 항동. 교차로에 면해 좌우로 펼쳐진 듯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인천 중동우체국. 구 인천우체국이었던 이곳은 90년 넘게 우편업무를 이어가고 있는 인천 우정의 상징이다.건물이 지어진 것은 1923년. 개항 후 일본은 영사관 안에 우체국을 자체 운영했는데 1905년 한일통신협정으로 조선 우체사를 흡수 후 1923년 인천우편국을 신축 이전했다. 절충주의 건축양식을 단순화한 건물은 입구 양쪽에 기둥형식의 탑부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장충체육관] “박치기로 유명한 김선수는 드디어 앞이마로 루인을 공격, 결승골을 빼앗아 2대 1로 세계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김기수 선수가 이탈리아의 벤베누티를 판정으로 누르고 한국 프로권투사상 첫 세계챔피언이 됐다”스포츠에 울고 웃던 곳,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제8대 대통령 취임식이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성대히 거행됐습니다”네 번의‘체육관 선거’를 치르며 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곳, 바로 최초의 실내경기장인 장충체육관의 이야기이다.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문익환 가옥] 북한산 인수봉 가는 길, 강북구 수유리의 한 주택가. 산자락을 배경으로, 통일의 집으로 더 잘 알려진 문익환 가옥이 있다. 문 목사의 반려자이자 남편과 함께 통일과 민주화를 위해 일해온 통일 할머니 박용길 장로가 문 목사 별세 후, 누구나 통일을 논의할 때 쓸 수 있는 공간이란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이곳이 지어진 때는 1960년대. 30년이 넘어 수리가 불가피해진 집 소문을 들은 건설 노동자들이 1997년, 모금을 하고 직접 손봐 튼튼하게 재단장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광장시장] 한양 동쪽 흥인지문 근처에 열렸던 대규모 난전 배오개(이현: 梨峴) 장터 자리에 1905년 7월 5일 한성부의 개설 허가로 최초의 상설시장인 동대문시장(現 광장시장)이 개점하였다. 現 동대문 상권의 시작이자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으로 남은 곳, 서울 공식 전통시장 1호 광장시장이다. 올해로 개점 112년을 맞는 종로구 예지동의 광장시장은 몇 년 전, 인기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푸짐한 먹거리가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하지만 광장시장엔 먹거리뿐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답동주교좌성당] 동인천역 인근, 제법 가파른 답동 언덕길을 오르면 인천 가톨릭의 중심이자 각종 집회가 치러졌던 인천지역 민주화 운동의 현장, 답동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사적 제287호로 지정된 성당은 중앙에 큰 탑을 두고 경사진 지붕 양 끝에 소탑을 둔, 20세기 초 국내에 지어진 교회 건물의 보편적 양식을 띠고 있다.1897년 코스트 신부가 설계하여 고딕 양식의 초기 성당으로 축성되었으며 제4대 드뇌(E.Deneux) 신부 부임 후 1937년 로마네스크식으로 재축성 되었다. 개항지 제물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한강철교] 한 세기 전, 용산과 노량진 일대를 교통의 요지로 발전시키며 들어선 한강철교. 철강 1,200톤, 벽돌 120만 장, 석재 5만 개가 투입된 근대식 토목공사에 의한 최초의 대형 교량이다. 육로 12시간, 뱃길 8시간을 1시간 여로 단축한 새로운 근대 교통망으로 등장한 것이다.경인 철도 부설권을 따내 철교 건설을 시작한 이는 미국인 제임스 모스, 그러나 자금난으로 부설권은 일본 철도 회사로 넘어갔고 한강철교는 결국 일제에 의해 완공됐다.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서정주의 집] 1960년대 말, 당시 영등포구에 속했던 지금의 사당동 남부순환도로 주변으로 예술인 마을이 조성됐다. 200동 양옥이 들어섰던 예술촌은 다가구와 연립주택이 밀집한 주택가로 변했고, 그 한복판으로 2011년 일반에 공개된 2층 집은 서정주 시인이 당시 이곳으로 이사 오면서 직접 설계해 지은 곳이다.1970년 서정주 시인이 입주해 2000년까지 거주한 서정주의 집은 건축면적 74평의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시인이 직접 그리고 수치를 적어 넣은 간이 설계도며 자재 목록에선 시인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세종문화회관] 경복궁의 주작대로(朱雀大路)이자 조선시대에는 주요 관청이 들어섰던 육조거리, 지금의 세종로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상징적인 공간이다. 이곳엔 단아한 한옥처럼 들어서 있는 서울의 문화회관인 세종문화회관이 자리하고 있다.1972년 12월 2일 저녁. 서울시민회관이 화마에 휩싸이며 51명이 숨지고 70여 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벌어졌다. 대연각 호텔, 청량리역 대왕코너 화재와 함께 1970년대 서울시 3대 화재 사건 중 하나인 서울시민회관 화재.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舊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 지난 2010년, 인천 개항 박물관으로 재탄생한 옛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금융기관이었던 일본제1은행 부산지점의 인천출장소로 시작됐다. 건물은 일본인 건축가 니이노미 다카마사 설계로 1899년 완공된 좌우대칭의 절충주의 양식의 건물이다. 맨사드 지붕과 함께 제1은행 인천지점의 건축적 특징은 지금은 없어진, 지붕의 브래티싱. 개항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한국 YWCA] 김필례, 김활란, 유각경 3인의 선구적 신여성을 주축으로 1922년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조선YWCA)가 창설됐다. 이후 1924년 세계 YWCA 가입함으로써 식민시대, 또 다른 차원의 민족 개화운동이자 남성 지배의 구습에 맞선 여권운동의 출발점이 한국 YWCA에 의해 시작된다. 90여 년 전 한국사회의 변혁을 염원했던 여성의 물줄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명동성당을 마주 보고 서있는 지금의 한국 YWCA 연합회 건물은 한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회현아파트] 서울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남산 자락.1960년대 말, 높고 낮은 구릉지의 판자촌을 철거하고 일자형 일색으로 들어서던 여느 시민아파트와 달리 ㄷ자형으로 세워진 회현 제2시민아파트. 당시로선 높은 축에 속했던 10층으로 설계됐지만, 열악했던 사업이었던 만큼, 몇몇 층으로 직접 들어갈 수 있는 구름다리가 엘리베이터를 대신했다.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68년 12월...불도저라 별칭이 있었던 김현옥 서울시장은 시민아파트 건립 계획을 발표하게 된다.
[미디어파인=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서울지하철1호선] 메트로폴리탄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대도시 서울을 관통하는 대동맥 9개 운영노선 총 연장 327Km, 하루 평균 수송 인구가 700만 명에 서울지하철1호선이 40여 년 전 도심권 교통소통의 새 장을 열었다.최초의 국산 자동차가 탄생한지 10년 만에 경적을 울려대는 승용차와 버스가 넘쳐나기 시작한 1960년대, 그리고 인구 500만을 훌쩍 넘어선 1970년의 서울. 지하철도 건설만이 4대문 안 도심의 교통정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1960년대, 지하철 건설 계획은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