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올리버 스톤 감독의 ‘알렉산더’(2004)도 훌륭하지만 로버트 로센 감독의 ‘알렉산더 대왕’(1957)을 비교해 음미하는 것도 절대 시간이 아깝지 않을 듯하다. 기원전 356년 알렉산드로스가 태어난다. 그리스로부터 야만국으로 분류됐던 당시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는 왕위에 등극해 그리스의 패권을 잡게 된다.

그런 그의 훌륭한 조력자가 아들 알렉산드로스. 그러나 필리포스의 권력이 커질수록 주변에 여자가 늘어나 결국 본처 올림피아스를 내치고 친척인 장군 아타로스의 조카 에우리디케를 왕비 자리에 앉힌다. 알렉산드로스는 필리포스가 전쟁터에 나가있는 동안 태어났고, 아버지와 내내 갈등했으며 왕위 계승에 불안을 느꼈다.

필리포스는 아내의 부정을 의심했고, 그런 만큼 알렉산드로스를 쉽사리 아들로, 후계자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필리포스는 아테네와 테베의 연합군과 상대하는 카이로네이아 전투에 18살의 알렉산드로스를 참전시킨다. 알렉산드로스는 죽을 위기에 놓인 필리포스를 살리는 등 혁혁한 전과를 세워 인기가 급상승한다.

그로부터 2년 후 옛 수도 아이가이의 극장에서 알렉산드로스의 친구가 단검으로 필리포스를 죽인다. 알렉산드로스는 ‘전통대로’ 군대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오른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앞둔 그는 코린트 동맹을 근거로 그리스 도시 국가들에게 군사와 무기를 요구하는데 아테네의 멤논만 이에 반발해 페르시아로 가 용병이 된다.

이후 잘 알려진 대로 용기와 규율을 빼면 절대적 열세인 알렉산드로스의 군대는 페르시아 군대와 싸워 승승장구하고 결국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황제는 측근에게 죽임을 당한다. 다리우스는 죽어가며 알렉산드로스에게 편지로 유언을 남긴다. 자신의 딸 록사나와 결혼함으로써 이 세상을 하나로 융합하라는.

물론 다리우스의 유언은 픽션이다. 알렉산드로스는 스스로 정복지의 공주들과 혼인함으로써 잘 알려진 헬레니즘 문화의 발생을 유도했다. 개방적이면서 보편적인 세계 시민적 문화를 추구한 이 문명은 얼마 뒤 전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 북부와 아시아 지역까지 아우르게 되는 로마 제국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작품의 크게 2부로 구성됐다. 1부는 아버지와의 갈등, 2부는 다리우스와의 전 세계의 운명을 건 일대 결전이다. 알렉산드로스는 마마보이였다. 마케도니아의 이웃나라 에페이도스의 공주였던 올림피아스는 강한 여자였고, 당연히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앉히고자 노심초사했지만 필리포스는 전쟁에 바빠 집을 자주 비웠다.

자존감 강한 올림피아스의 정조를 의심했고, 여자도 많았으며 전쟁과 정사에 바빴으니 가정적일 리가 없었다. 모자는 필리포스와의 사이가 나빴고, 그럴수록 필리포스의 마음은 아내에게서 멀어지고 아들에겐 거리감이 생겼다. 자신도 두 형제를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올림피아스는 알렉산드로스가 태어나자마자 이름을 지어주고 제우스의 아들이라고 선포했다. 측근인 이집트 예언가 역시 여러 가지 징조를 신탁으로 해석해 그녀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며 여론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신탁을 의심하는 사람은 필리포스와 그의 측근들이었다. ‘알렉산더’에서 그랬듯 올림피아스는 알렉산드로스의 가장 큰 후원자이자 걸림돌이었던 것.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철학자를 손꼽으라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두를 다툴 것이다. 유약한 몽상가였던 알렉산드로스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필리포스는 당시 최고의 석학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초빙했지만 연역법적 스승과 귀납법적 제자는 내내 안 맞았다.

그렇게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화 초반에 안티 세력으로서 필리포스에게 알렉산드로스의 부족한 점만 지적한 뒤 사라진다. 필리포스까지 퇴장한 후 페르시아와의 2부가 시작되면 전장의 경험이 쌓여갈수록 알렉산드로스는 만천하에 자신이 신이라고 선언한다. 그 자만심이 극에 달해 최측근이자 친척인 클레이토스와 말다툼 끝에 그를 죽인다.

그는 자신을 제우스의 아들인 아킬레우스와 동일시한다. 제우스는 무명의 긴 삶과 영광의 짧은 삶의 두 가지 선택지를 줬는데 자신은 아킬레우스처럼 후자를 선택했다고 당당하게 외친다. 그는 “우린 모두 동등한 신의 자식”이라고 외친다. 스피노자의 통일론을 그는 거의 2000년 전에 이미 사해동포 이론으로 외친 것이다.

영화는 그를 웅변가로 묘사한다. 내내 그의 정적으로 등장하는 아테네의 웅변가 데모스테네스를 물리치는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아테네는 도시나 국가가 아닌 사상”이란 대사는 ‘토르: 라그나로크’의 “아스가르드는 행성이 아니라 국민”이란 토르의 대사를 연상케 하는 관념론적인 주장이다.

“정복할 것은 땅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란 대사 역시 마찬가지. 알려졌다시피 아리스토텔레스는 보수적이다. 하지만 알려진 바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알렉산드로스는 매우 진보적이다. 그는 정적 멤논의 아내 바르시네와 연인 사이로 그려진다. 페르시아에서는 현지 복장을 하고 그들의 편을 들어준다.

실제로 그는 정복지의 모든 종교를 허용했고, 풍습과 문화도 지켜줬다. 페르시아에서 군인들에게 단 한 번의 약탈만 허용했을 뿐 그 외에는 융화 정책을 펼쳤다. 고르디움에서 저 유명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고민 없이 칼로 내리치는 시퀀스가 이 영화와 알렉산드로스의 정체성을 간단하게 웅변한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알렉산드로스와 다리우스의 전투는 바로 제우스와 아후라 마즈다의 전쟁이었다. 전쟁의 목적이 정복이 아니라 화합을, 전 세계의 일원화를 꾀한다는 일원론은 세상에 신은 하나여야 한다는 풍유를 담고 있다. ‘이집트 등 다른 나라의 신은 동물의 머리를 하고 있지만 우리 신은 사람의 형상’, ‘가장 경이로운 건 인간’ 등의 대사에서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가 읽힌다. 대형 전투의 몹신 등이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당시의 제작 환경에 비춰 볼 때 엄청난 블록버스터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