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클루니의 표적’, 부조리한 세상의 누아르 멜로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21.02.22l수정2021.02.2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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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조지 클루니의 표적’(1998)은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의 작품성과 ‘오션스’ 시리즈의 재미를 동시에 지녔거나 혹은 그 두 가지의 장점이 약간씩 결여된 스티븐 소더버그의 문제작이다. 평단은 호평을 했지만 적지 않은 관객은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두 주연배우의 매력만큼은 보증수표다.

200여 개의 은행을 털고 교도소에 복역 중인 잭(조지 클루니)은 사기죄로 들어온 증권가의 거물 리플리의 저택에 5000만 달러 상당의 다이아몬드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땅굴을 파 탈옥한다. 연방 보안관 캐런(제니퍼 로페즈)은 우연히 교도소 앞에 있다가 죄수들이 탈출하는 걸 보고 산탄총을 쏜다.

그 과정에서 잭을 픽업하러 온 버디에게 붙잡혀 승용차 트렁크에 잭과 함께 눕는다. 이동하는 동안 두 사람은 의외로 말이 잘 통한다는 점에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캐런은 잭과 버디를 도우러 온 어리숙한 범죄자 글렌의 차에 타자 그를 협박해 탈출하는 데 성공한 뒤 탈주범 검거에 앞장선다.

탈주범 중 가장 악독한 모리스(돈 치들)는 원래 잭과 함께 리플리의 집을 터는 걸 공모했지만 배신할 마음을 품고 있었고 잭은 그걸 간파한다. 그들이 함께 모여 리플리의 집에 들어서자 그 큰 집에 가정부 밋지 혼자 있다. 일행들이 각자 흩어져 다이아몬드를 찾던 중 잭은 숨어있던 리플리를 발견하는데.

이 영화는 굉장히 세련된 코미디이자 멜로다. 집중하지 않으면 그 재미를 충분히 만끽하기 쉽지 않다. 인트로에서 번듯한 정장을 입은 잭이 웬일인지 분노해 넥타이를 풀어 집어던진다. 그리고 그의 눈에 띈 건물은 은행. 창구에 간 그는 태연한 거짓말로 직원을 협박해 현금을 털어 자동차에 타지만 시동이 안 걸려 경찰에 잡힌다.

후반 클라이맥스 시퀀스에서 잭과 모리스 일행은 본색을 드러내고 적대 관계에 선다. 모리스의 심복인 ‘백인놈’이 2층에 있는 잭을 먼저 겨냥해 무장해제 시킨 뒤 계단을 오르다 발을 헛디뎌 제 권총 오발로 죽고 만다. 모리스는 리플리의 집에서 드디어 금고를 찾아내고 총을 쏴대지만 금고는 열릴 줄 모른다.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밋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비밀번호를 가르쳐 준다. 그렇게 의외로 쉽게 금고를 열지만 거기서 나오는 건 여러 개의 고급 가발. 리플리는 대머리였고 밋지와는 불륜 관계. 리플리를 사랑하는 밋지는 그의 집이 난장판이 되는 게 안쓰러워 비밀번호를 가르쳐 줬던 것이다.

차 트렁크 안에 잭과 함께 갇힌 캐런은 일종의 스톡홀름 신드롬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아니다. 그녀는 연방 보안관인 데다 FBI로 옮겨 더 큰일을 도모하는 야심을 갖고 있다. 역시 연방 보안관인 아버지가 자신의 밑에서 편하게 수사관으로 일하라고 제안하는 걸 거절하고 ‘큰물’에서 놀고 싶어 한다.

그런 그녀가 나약한 스톡홀름 신드롬의 심리에 휘말릴 리 없다. 이를 증명하듯 트렁크 안에서 잭과 대화를 나누는 그녀는 매우 침착하다. 더 나아가 영화를 소재로 삼으며 ‘보니 앤드 클라이드’를 거론한다. 잭은 호텔 바에서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그녀를 찾아내고 두 사람은 객실로 올라가 사랑을 나눈다.

잭은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항상 지포를 갖고 다니며 만지작거린다. 캐런은 대놓고 FBI 신분을 자랑하는 유부남 레이(마이클 키튼)와 사귀고 있었고, 아버지는 그걸 못마땅하게 여겼다. 감옥에서 잭은 여동생 아델에게 전화해 자신의 처지를 토로하지만 실직한 마술사인 그녀는 “밖이라고 뭐 좋은지 알아?”라고 역공한다.

아버지는 캐런의 생일 선물로 권총을 사 준다. 버디는 아무 생각 없이 범행을 여동생에게 털어놨고, 여동생이 경찰에 신고해 잭이 검거됐다. 버디는 잭에게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여동생을 미워하지 않는다. 잭 역시 버디 남매에 대해 악감정이 없다. 외려 버디를 여전히 제일 신뢰한다.

이 영화의 주제는 그래서 부조리다.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은 없다. 상식과 보편 수준에서 사람의 심리와 사회적 현상을 예단해선 곤란하다. 복잡다단한 이 세상에 변수는 곳곳에 산재해있고, 사람의 마음은 여기저기 편재돼있다. 캐런이 잭에게 이끌리는 건 그가 전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가 진하게 배어 나온다. 리플리는 수감 시절 큰 도움을 받은 보답으로 일을 주겠다며 잭을 자신의 회사로 부른다. 그런데 보직이 기껏 경비다. 인트로의 화를 내는 시퀀스는 경비직 제안에 분통이 터진 직후의 모습. 잭은 ‘시지프의 신화’의 시시포스라기보다는 ‘이방인’의 뫼르소다.

마지막에 그는 다이아몬드를 버디에게 준 뒤 공항으로 가라 하고 리플리의 집으로 다시 들어간다. 모리스 일행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경찰에 검거될 확률이 매우 높은 걸 알면서도. 극악무도한 모리스가 리플리나 밋지를 죽일 것을 우려해 도우려는 것. 그런데 정작 그에게 가장 위협적인 인물은 총을 겨눈 캐런.

캐런이 자신을 잡으러 온 것을 아는 그는 탄창의 총알을 비운 뒤 마스크를 쓰고 그녀 앞에 나타난다. 자신의 얼굴을 보면 그녀가 발사하지 못할 걸 알기에 마스크를 쓴 것이고, 탄창을 비운 건 죽음을 겸허하게 맞이하겠다는 것. 뫼르소다. 그가 탄 호송차에 함께 수감될 헤지라 헨리(새뮤얼 L. 잭슨)가 동승한다.

10번 탈옥했다는 그는 탈옥을 출애굽기에 비유한다. 헤지라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박해를 피해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긴 이주, 이탈, 성천을 말한다. 출애굽기는 포수된 유대인들의 이집트 탈출기를 의미한다. 온갖 형식과 가식으로 가득 찬 차안에서 피안으로 탈출하고픈 ‘순수지속인’들의 염원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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