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에게’, 낯설지 않은 자유와 민주 위한 투쟁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21.02.24l수정2021.02.25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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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사마에게’(와드 알-카팁 감독 , 2020)는 그렇잖아도 복잡한 중동지역에서 가장 처참한 시리아의 한 여대생이 카메라를 잡기 시작해 완성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하페즈 알 아사드가 1971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시리아는 내내 아사드 집안이 다스렸다. 바샤르는 2000년 집권 이후 현재까지 대통령이다.

2010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운동은 아프리카 북부에서 중동 지역으로 옮겨가 ‘아랍의 봄’이 됐는데 시리아 역시 2011년부터 민주화 운동이 시작됐다. 이 작품을 이해하고 충분한 감동을 느끼기 위해선 시리아의 정치적 상황을 숙지하는 게 중요하다. 바샤르의 독재에 맞서 남서부 도시 다라에서 대학생 주도로 반정부 지위가 시작됐다.

국제사회는 2012년 6월 시리아 사태를 내전으로 인정했는데 주변국들이 개입함으로써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시리아는 인구 2200만여 명 중 4분의 3이 수니파다. 하지만 바샤르 정부 요직은 시아파계 분파인 알라위파가 모두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시아파 맹주국인 이란과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아사드 정권을 지원한다.

여기에 지중해에서 석유 기지를 구축하려는 러시아가 합세했다.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미국은 당연히 반정부군을 지원한다. 친미 성향의 터키와 이스라엘도 가담했다. 터키는 국경 지역의 쿠르드족 견제 목적이 크다. 또한 이란과 적대 관계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인근 수니파 국가들 역시 반군에게 무기와 물자를 지원한다.

여기에 더해 세력을 키운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북부를 점령하면서 3개 세력이 복잡하게 뒤얽혔다. 반정부군의 거점지인 알레포의 알레포 대학교에서 경제를 전공하던 여대생 와드는 카메라를 들고 현지의 참상을 찍기 시작한다. 의대 출신 함자는 부상자 치료를 위해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그들의 부모는 진작 터키로 피신했지만 두 사람은 고향을,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신념을 고수하며 현지 주민들과 반군들을 돕고 있다. 함자는 의사 활동과 더불어 전 세계의 언론과 접촉하며 현지의 참상을 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와드는 언론사 소속은 아니지만 부지런히 촬영하고 있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와드는 함자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기적 같은 임신을 해 딸 사마를 낳는다. 이후 와드의 카메라는 오로지 사마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 왜 부모가 이곳을 떠나지 않고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부상자를 치료하고, 현지인의 생존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지 설명한다.

매일 300여 명의 환자가 병원에 실려 오고, 코앞에서 채 10살도 안 된 아이들의 주검을 본다. 자식을 잃고 넋이 나간 부모, 부모를 잃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기에 채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아이. 동네는 폐허가 됐고, 병원 바닥과 침상은 피투성이다. 이런 지옥도가 없다.

아비규환. 도저히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도저히 사람처럼 사는 것이라고 볼 수가 없는 저주받은 도시. 그게 다가 아니다. 러시아 폭격기가 나는 소리를 들으며 온몸이 찢기는 듯한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그 공포는 찰나에 현실로 다가온다. 병원까지 폭격하는 이 참상은 러시아군에겐 신무기 실험에 불과하다.

와드는 알레포에 머문 자신을 부모가 ‘고집 세고 무모하다’고 힐난할 때는 몰랐는데 사마를 낳고 나니 알 것 같다. 자신보다 자식의 안위가 더 걱정되는 부모의 마음을 깨닫게 된 것.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시작된 이 독재를 끝내고 싶었다. 사마에겐 이런 세상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왜? 사마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니까. 그녀는 사마에게 영상 편지를 쓴다. “네가 선택한 것도 아닌데 이런 삶을 살게 하다니(정말 미안해)”라고. 그러나 “존엄한 삶이 아니면 죽음을”이라고 잇는다. 마치 ‘죽은 자는 편히 쉴지니. 그러나 산 자여 따르라’라고 장엄하게 노래 부르는 듯하다.

“널 본 순간 사람들과 사별하던 고통이 떠올랐지만 동시에 새로운 희망을 봤다”는 그녀는 “자기 아이를 묻기 전에 죽은 저 아이의 부모가 부럽다”고 자식과 동시에 폭사당한 부모를 가리킨다. 어떤 엄마는 공습에 놀라 딸이 침대에 오줌 싼 얘기를 웃으면서 털어놓는다. 그녀는 매일 매일이 폭탄 연속극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그들은 공포와 죽음이 일상화됨에 따라 둔감해지고 있는 걸까? 영화라고 하기엔 기초적인 영상미와 연출과 카메라 워킹 등이 허술하다. 어떤 다큐멘터리이건 약간의 연출이 개입되기 마련인데 여기엔 그런 게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림이 아니라 모든 게 실제 상황인 이 필름 속의 내용이다. 등장인물들의 절실함이다.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영화나 드라마 속의 가짜 피가 아니라 진짜 인간의 피가 철철 넘친다. 그런 무참한 상황 속의 피눈물도 연기가 아닌 실제 감정의 산물이다. 와드는 둘째를 임신한다. 보급품이 떨어져 애들한테 줄 식량조차 없는데 둘째가 제대로 태어날 수 있을지 미래가 불투명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카메라는 종군기자의 그것처럼 움직인다.

고맙게도 둘째가 무사히 태어나고 또 다행스럽게도(?) 러시아의 폭격을 피해 그들은 난민 대열에 합류할 수 있게 된다. 자식의 생존이 지상 최고의 의지인 그들은 “우리의 미래는 더 이상 우리 손에 있지 않다”며 목숨 걸고 지키고자 했던 고향, 대의명분, 신념, 자존감, 그리고 자유 등을 포기한다.

그럼에도 와드는 “다시 알레포로 돌아간다 해도 난 똑같이 행동할 것. 너희들(자식들)이 우리 같은 고통을 받지 않도록”이라고 말한다. 엄격하고 보수적이어서 여성의 지위가 낮아 어린아이 취급을 받았고, 계급이 엄연했던 빅토리아 시대에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으로 국민의 자유와 여성의 독립을 외쳤다.

정신적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는 “죽음이 있다면 우리가 없을 것이고, 우리가 있다면 죽음이 없을 것”이라고 부르댔다. 와드와 함자는 현대 중동의 에피쿠로스고, 밀이다. 우리는 현세에 집착하고 사후세계를 모르기에 죽음에 대해 극도의 두려움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에페쿠로스의 말대로 존재자와 죽음은 절대 공존할 수 없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의 죽음과 절대 마주칠 리 없으니 두려워할 일도 없다. 불과 4~5년 전 시리아의 이 현실은 1970~80년대 군사독재정권 치하의 우리나라를 연상케 해 결코 낯설지 않다. 그림 곳곳에서 이한열과 전태일이, 1980년 광주가 보인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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