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외도로 위기를 겪는 많은 이들이 회복을 바라면서도 그럴 수 없을 거라는 예감 때문에 회복의 기회를 놓치곤 한다. 외도에는 부부 관계의 회복을 막는 2중의 함정이 있다.
첫번째가 외도라는 배신 행위 자체라면, 두번째는 ‘이제 회복할 수 없다’는 절망이다. 상처 배우자는 ‘한번이 어렵지, 두번부터는 뭐가 어렵겠나?’ 또는 ‘이미 깨진 그릇을 어떻게 맞추겠나?’하는 부정적 신념과 자기 암시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한다.
외도 배우자 역시 ‘어떻게 해도 안될 거라면 굳이 애쓸 필요가 있나?’라는 의심과 자포자기에 빠진다. 사실 외도의 첫번째 함정보다 두번째 함정을 피하고 벗어나기가 훨씬 어렵다. 이렇게 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외도로 인한 비극적 결말은 잘 알지만, 성공적 회복은 좀처럼 보지도 듣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 외도 사건을 잘 극복하여 이전보다 더 좋은 관계를 갖게 된 경우도 결코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이들이 자신들에게도 그런 위험한 시기가 있었음을 타인에게 털어놓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런 점에서 (부도를 겪고도 재기에 성공한 사업가들처럼) 결혼의 위기를 잘 극복한 성공담들도 많이 알려졌으면 한다.
둘째, 적절한 상담과 훈련으로 변화가 가능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도대체 누가 만들어 퍼뜨렸을까? 조금만 찾아보면, 자신의 노력이나 우연한 계기로 소위 ‘인생 역전’을 이룬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확증 편향일 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사람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다만 그런 기회를 잡지 못하는 사람이 좀 더 많을 뿐이다.
셋째, 외도 이전에 이미 부부 관계가 파탄에 이를 정도의 균열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도 사건 자체보다 이전에 받은 상처들이 치유되지 않은 채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부들은 외도에서 회복하여 돌아갈 곳을 찾지 못한다. 설령 외도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으니 굳이 그런 노력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회복에 대한 동기 부여가 선행되어야 하며, 따라서 좀 더 오랜 시간과 상호 노력이 필요하다.
끝으로, 나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실패하여 결국 포기 상태에 이른 경우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노력이 과연 적절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열 번 찍으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식의 부적절한 노력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구나’라는 절망으로 끝나기 쉽다.
영화 ‘올드 보이’에서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답이 나올 리 없잖아?” 라는 대사가 나온다. 방법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효과가 없거나 심지어 더 악화되는 것이다. 이런 비극적 결론에 이르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회복의 의지를 지키면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여기서 말해 둘 점이 있는데, 상담으로 ‘외도로 인한 위기를 극복한다’는 것이 반드시 부부 관계를 다시 좋아지게 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상담의 목표는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사랑하며 살기’ 또는 ‘각자 독립적으로 살기’처럼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런 결론은 상담 부부 자신들의 몫이다.
상담은 부부가 각자 자신에게 (또 가능하면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외도로 드러난 불신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리고 부부 혹은 각자가 선택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혼인 관계의 회복을 목표로 한다면 당연히 부부 관계의 개선 방법을 찾을 것이다. 반대로 이혼을 선택한 경우라 해도 어느 정도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조성하여 이혼에 따르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게 돕는다.
결혼 생활에서 드러나는 사소한 문제들도 부부 각자의 선의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물며 외도로 빚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은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대응’으로 감당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외도 사례 경험이 많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