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네고시에이터’(1998)는 ‘모범 시민’, ‘분노의 질주: 더 익스트림’ 등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F. 게리 그레이 감독의 초기 미스터리 스릴러로 꽤 팽팽한 긴장감을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니 로먼(새뮤얼 잭슨)은 12년간 인질범 협상가로 맹활약해왔고 캐런과의 신혼의 단꿈에 젖은 시카고 경찰이다.

파트너 네이트에게 경찰 상해보험과 관련해 내부에서 횡령 사건이 벌어지고 있고, 내사과 니바움이 연루됐다는 정보를 듣는다. 한밤에 메시지를 보낸 네이트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에 간 대니는 총살당한 그를 발견한다. 내사과 등은 재빠르게 수사를 펼친 끝에 대니의 집에서 증거물을 확보, 대니를 살인범으로 지목한다.

그러자 대니는 시청사 내사과 사무실로 쳐들어가 니바움, 그의 조수 매기, 조사받던 사기꾼 루디, 그리고 자신을 설득하러 온 상사 프로스트를 인질로 붙잡고 경찰과 대치한다. 그는 경찰에게 서부 지역 협상가 크리스 세이비언(케빈 스페이시)을 불러달라고 요구하고 두 일류 협상가의 치열한 심리전이 시작되는데.

다혈질이고 공격적인 대니에 비해 크리스는 지적이고 치밀하다. 크리스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오로지 그의 목적은 인질을 무사히 구출하고 인질범의 생명까지도 해치지 않는 것. 하지만 지휘관을 맡은 대니의 동료 애덤(데이빗 모스)은 왠지 공격적으로 쳐들어가 대니를 사살하려 해 크리스와 갈등한다.

시청사 한 층이 대니에게 점거된 이 사건을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자 FBI는 사건을 인수하려 든다. SWAT가 상공에 헬기를 띠우고, 각 건물에 스나이퍼를 배치해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진다. 크리스가 대니와의 단독 첫 대면에서 별 소득을 못 건진 사이 애덤은 대니 사살을 위해 스캇과 마커스를 투입하지만 외려 인질로 잡힌다.

대니는 연금 횡령 비리에 니바움을 주축으로 많은 경찰들이 연루돼있다고 확신하고 있는데 스캇도 그중 한 명이라고 여겨 그에게 총을 쏜다. 경찰은 흔들리고 지휘권을 달라는 크리스의 말에 복종한다. 대니는 사람들의 스톡홀름 신드롬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해 자신의 피격을 방지하고 언론에 얼굴을 내밀며 경찰 내부의 비리를 주장한다.

혀를 내두를 만한 액션은 없지만 보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스릴은 정말 대단하다. 관객은 대니가 결백하다는 건 알고 출발한다. 하지만 과연 네이트를 죽인 범인 등 비리에 연루돼 대니를 죽이려 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보는 내내 궁금증이 증폭될 것이다. 더불어 대니와 크리스의 첨예한 심리전도 큰 흥미를 유발한다.

대니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감옥에는 가기 싫다. 10여 년 경찰에 몸담았으니 그건 지극히 당연하겠지만 무모하리만치 모험을 마다않는 성격이기에 더욱 그렇다. 매기와 루디는 대니의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스톡홀름 신드롬이 기저에 깔린 건 맞지만 어느 정도 대니가 믿음을 줬기 때문이다.

특히 매기는 니바움의 컴퓨터의 비밀번호를 알려주며 대니가 매우 유리한 증거를 잡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한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FBI는 주도권을 빼앗고, 애덤은 독단적인 행동으로 부하들을 침입시키려 한다. 게다가 크리스는 대니를 무장 해제시키기 위해 연극까지 꾸민다. 이제 대니는 사면초가다.

대니와 크리스의 대치 국면은 역지사지(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라는 사자성어를 생각게 한다. 각각 동부와 서부에서 협상가로서 유명세를 떨쳐온 대니와 크리스가 동료도 라이벌도 아닌 인질범과 협상가로 만났다. 크리스는 인질을 구출해야 하고 대니는 어떻게든 자신의 결백을 입증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 최고의 협상가 자리를 놓고 다투는 묘한 자존심 대결이 펼쳐지는 게 이 작품의 감상의 묘미다. 더군다나 잭슨과 스페이시는 연기 솜씨라고 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베테랑 아닌가! “니체가 ‘가장 강한 자도 피로할 때가 있다’고 했다”라는 대사가 두 협상가의 대결 혹은 협력을 한 마디로 합축한다.

이 작품 속 구도는 넓게는 대니, 크리스, 비리 경찰, FBI 등으로 펼쳐진다. 좁게는 대니 Vs 크리스다. 물론 둘은 결국 공조를 택하지만 그 이전에도 그렇고 협력 후에도 그렇고 이 협상에서 누가 승리할지의 승부는 여전히 남는다. 비리의 최고 윗선의 정체와 대니와 크리스의 대결의 결과를 보는 재미다.

가장 강한 자는 물론 대니와 크리스다. 하지만 그들은 니체가 웅변한 ‘권력에의 의지’를 펼치는 자는 아니다. 외려 승진에 눈이 먼 FBI와 애덤 등 다수의 경찰이 바로 니체주의자다. 어제까지 대니의 친구였던 애덤 등 시카고 경찰들은 그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라는 아이러니가 니체주의다.

대니는 진실을 밝힘으로써 자신의 무고를 입증하고 경찰 내부를 바로잡자는 게 목적이고, 크리스는 아주 단순한 협상가로서의 임무를 완수하는 게 최고선이다. 그런데 크리스는 아내나 딸과의 협상에선 절대 이기지 못한다. 강한 자의 피로다. 작품의 결론이 실천주의적이라는 데서 아날로그 정서가 짙게 흐른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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