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한때 예술가로 손꼽혔지만 이젠 블록버스터 감독 이미지가 굳은 장이머우의 ‘황후화’(2006)는 모든 걸 떠나 웅대한 스케일과 화려한 미술 하나만큼은 정말 볼 만한 사극이다. 당나라 말기. 한낱 무신이었던 황제(저우룬파)는 양나라의 도움을 받아 정권을 잡은 뒤 양의 공주를 황후(공리) 자리에 앉혔다.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원상(류예)을 둔 황제는 황후와의 사이에서 원걸(저우제룬)과 원성 두 왕자를 낳았다. 황후와 원상은 수년간 불륜 관계인데 최근 소원해졌다. 원상이 황실 주치의 장역유의 딸 소선(리만)에게 푹 빠졌기 때문. 그런데 소선은 황제의 명령을 받은 아버지의 처방에 따라 황후의 탕약에 독약을 섞고 있다.

10년간 한증이란 병을 앓아온 황후는 차도가 보이지 않는 데다 열흘 전 황제가 특별 처방했다는 약이 외려 발작을 유발하는 데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은밀하게 역유의 처를 불러 약재의 정체가 서역의 독초 부자임을 확인한다. 궁을 빠져나가려던 역유의 처는 그만 원상의 눈에 띄는 바람에 체포된다.

하지만 황제는 주변 사람들을 물리친 뒤 그녀를 풀어준다. 황제와 황후는 정책적으로 부부일 뿐 사이는 오래전에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진 상황. 황후는 원상마저 자신을 떠나려 하자 원걸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 중양절을 거사의 기점으로 삼아 반역을 모의하고 이 사실을 안 원상은 자살 소동을 벌이는데.

이 영화의 충격은 황후와 원상의 불륜과 원상과 소선의 관계의 진실이다. 황제는 무신 시절 원상의 생모와 결혼했다. 하지만 황제가 되기 위해선 양나라의 도움이 절실했기에 전처를 버리고 지금의 황후와 정략결혼을 했다. 원상의 생모는 불륜이란 누명을 쓰고 얼굴에 낙인이 찍힌 채 추방됐지만 역유가 거둬줬다.

그녀는 역유와의 사이에서 소선을 낳았다. 그러니 원상과 역유는 이부 남매다. 이 두 가지의 근친상간은 노골적인 그리스 신화다. 황후와 원상은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동양적 도덕 관점에선 어엿한 모자 관계다. 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다. 황제는 둘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었다.

황제가 황후를 죽이려 한 이유 중 하나다. 정략결혼을 했지만 황후에 대한 애정은 없었다. 그런 데다 전처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따라서 세 아들 중 원상을 제일 아꼈다. 후계자로는 원걸이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보다 황후와 더 가까운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한때 그를 변방으로 내보낸 이유다.

일찍이 원상을 황태자로 지명했지만 원상은 자신은 황제 그릇이 안 된다며 수차례 황제에게 퇴위를 요청했다. 그럴 때마다 황제는 가타부타 답변이 없었다. 아직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내심 권력을 내려놓을 때가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거나 혹은 영원히 내려놓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태초의 신 가이아(대지의 여신)는 처녀생식으로 하늘의 신 우라노스를 낳고 그와 혼인해 크로노스를 낳는다. 크로노스는 아버지를 거세해 제거한 뒤 우주 최고의 자리에 앉는다. 누이 레아와 결혼해 낳은 자식들을 모두 잡아먹지만 레아의 기지로 살아난 제우스에 의해 삼킨 자식들을 모두 토해내고 죽는다.

제우스 역시 누이 헤라와 결혼한다. 고대 이집트의 주신 오시리스는 여동생 이시스와 결혼했다. 실제 고대 이집트의 왕들은 근친결혼을 했다. 왕족의 혈통을 잇는 동시에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현대적 시각에서 보면 매우 불편할 수 있지만 1만 5000년 이상 전승된 신화와 수천 년 전의 역사를 부정할 순 없다.

그리스 신화와 더불어 중국이 동양에 퍼뜨린 중양절 풍습이 이 작품의 양대 기둥이다. 음력 9월 9일은 이씨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추석이나 설에 못지않은 명절이었다. 양수가 겹치는 날 중 제일 큰 숫자인 9가 겹친다고 해서 풍성한 한 해의 수확을 완성하는 날이자 경로의 날로 경축했다.

이날의 상징은 수유 주머니를 차고 국화주를 마시는 것. 실제 영화 속에서 황제는 산수유 열매를 몸에 장식한다. 이에 비교해 황후가 선택한 건 국화다. 몸이 불편함에도 국화 수를 놓는 일을 반복하는가 하면 반역에 참여한 중신들과 함께 단합과 성공의 기원의 상징으로 국화 장식과 국화꽃을 내세운다.

국화꽃은 색깔에 따라 그 꽃말이 달라진다. 황후가 선택한 건 노란색. 반란군의 갑옷도 노란색. 그건 실망과 짝사랑이다. 그녀는 원걸에게 왕위를 주겠노라고 반역에 동참할 이유를 설득하면서도 원상을 위해 국화 수가 새겨진 용포를 만들어준다. 자신을 떠나 천한 신분인 데다 사실은 누이인 여자와 사랑에 빠진 원상에 대한 실망.

하지만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 어린 나이에 정략결혼에 희생돼 황실의 체통과 규율을 지킬 것을 강요당한 채 360도 감시의 눈초리가 빛나는 쇼윈도 안에 갇혀 살아온 그녀에게 원상은 과거와 현재의 전부이자 미래였던 것이다. 짝사랑. 외롭고 괴롭긴 황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쟁터를 누빈 끝에 왕좌에 앉았지만 주변에 친구가 없었다.

만 백성의 모범이 돼야 하는 황제이자 황실의 가장이기에 빈틈을 보일 수도 나태해질 수도 없었다. 한때 반항적 작가였던 장 감독은 홍콩 반환 이후 국가주의, 국수주의적으로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는데 맞는 듯하다. 황제는 ‘짐이 곧 국가’라며 사랑하는 여인은 물론 자식에게까지 냉소적이다.

반역의 하이라이트인 치열하면서도 아름다운 접전의 몹신을 지나 충격적인 결말을 맞을 즈음엔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상극으로 점철되기 마련이고, 사람과 사회의 계통은 모순투성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국가라는 구조주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일상적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크로노스(시간)의 자식이므로.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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