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드림걸즈’(2006)는 엠마 왓슨 주연의 ‘미녀와 야수’(2017)를 연출한 빌 콘돈 감독의 뮤지컬로 흥행과 수상 등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1960년대. 가수 지망생 디나(비욘세), 에피(제니퍼 허드슨), 로렐은 디트로이트 극장의 오디션에 참여해 눈도장을 찍지만 커티스(제이미 폭스)의 농간으로 우승을 놓친다.

쇼 비즈니스계 입성을 노리는 자동차 판매원인 커티스는 그녀들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직접 관리하고자 했던 것. 그는 세 명에게 스타 지미 얼리(에디 머피)의 백 보컬리스트 자리를 제안하고 셋은 드림 메츠라는 팀명으로 합류한다. 얼리의 투어는 성공하고 드림 메츠의 지명도도 높아져가자 아예 ‘지미 얼리와 드림 메츠’로 개명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얼리의 매니저 마티와 커티스의 갈등이 심해지고 결국 마티는 떠난다. 레코드사를 차린 커티스의 사업은 번창하고 얼리의 매니저를 하면서 드림 메츠를 드림즈로 독립시킨다. 그러나 메인 보컬리스트를 에피에서 디나로 바꾸는 게 조건. 에피는 반발하지만 커티스의 예상은 적중해 드림즈는 스타덤에 오른다.

드림즈에게 곡을 써주는 에피의 동생 씨씨와 프로듀싱과 비즈니스를 하는 커티스가 일등 공신이었다. 하지만 커티스와 연인 사이인 에피의 불만은 점점 커져만 가고 결국 그녀는 씨씨와도 연을 끊은 채 팀을 떠난다. 커티스는 새 멤버 미셸을 에피의 빈자리에 채우고 드림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승승장구한다.

자유분방한 얼리는 자신의 고집대로 음악을 선택하려 하고,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계산하는 커티스와 갈등한다. 결국 얼리가 생방송 공연 중 바지를 내리는 사고를 치는 바람에 커티스는 얼리에게 계약 해지를 선언한다. 그리고 얼마 후 얼리의 연인인 로렐은 뉴스에서 그의 자살 소식을 접한다.

철저하게 계산적이고 타협을 모르는 커티스에게 진저리를 친 씨씨는 에피를 찾아가 아껴뒀던 ‘One night only’란 R&B 발라드를 주고, 이 곡은 흑인 방송사를 통해 히트되기 시작한다. 그러자 커티스는 재빨리 이 곡을 디스코로 편곡해 드림즈에게 취입하게 함으로써 에피의 인기를 잠재우고 돈을 챙기는데.

다이애나 로스, 플로렌스 볼라드, 메리 윌슨으로 이뤄진 흑인 여성 3인조 슈프림스가 1967년부터 70년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한 바 있다. 이후 로스는 탈퇴해 솔로로서도 성공했지만 팀은 지지부진하다가 7년 만에 해체했다. 영화는 이들에게서 모티프를 얻었다. 누가 봐도 마이클 잭슨의 잭슨 파이브를 연상케 하는 무대가 있는 것도 다 그에 근거한다.

일단 이 영화는 소울 혹은 R&B를 소재로 한 뮤지컬 영화 중에서 단연 손에 꼽을 만한 감흥과 재미를 준다. 귀는 호강하고 눈은 호사를 누린다. 스타인 비욘세의 매력은 당연히 명불허전이고, 수많은 오디션을 통해 엄청난 가창력을 보여준 뮤지컬 배우 허드슨의 뛰어난 노래는 내내 귓가에 남는다.

특히 디나를 메인 보컬로 교체한 후 미셸을 보강해 펼치는 리허설 무대에 에피가 나타나고 커티스와 씨씨까지 가세해 6명이 펼치는 R&B 배틀 같은 시퀀스는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장면이다. 주제는 간단하다. 쇼 비즈니스계의 더럽고 추악한 이면을 까발리는 데 집중한다.

원래 직업이 자동차 외판원이었던 커티스는 이익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다. 그는 드림 메츠를 이용해 쇼 비즈니스계에 입문한 뒤 특유의 사업 수완을 발휘해 거대 레코드사를 설립한다. 그의 실력은 음악성이 아니라 상업적 센스다. 당시만 해도 지금보단 인종차별이 훨씬 심할 때다. 그래서 그는 정통 블루스에서 벗어나 백인의 입맛에 맞는 음악을 판매한다.

얼리가 초기에 리듬 앤드 블루스 히트곡을 내면 백인 가수가 잽싸게 발라드로 편곡해 다시 히트를 시키던 풍조가 만연했기 때문. ‘Hound dog’이라고 하면 거의 모든 이들은 엘비스 프레슬리를 말한다. 흑인 여가수 빅 마마 손튼이 가장 먼저 취입해 빌보드 R&B 차트에서 7주간 1위를 했던 건 기억 못하고.

그게 미국의 현실이었다. 물론 커티스도 처음부터 그렇게까지 비열하진 않았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을 음반으로 출판함으로써 에피가 홀딱 반하게 만들 정도로 의식이 있었다. 하지만 성공한 후의 그는 인터뷰에서 “사운드는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것과 같다"라고 태연하게 떠들 정도로 천박한 장사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중음악 창작자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 문학, 철학 분야의 ‘작가’들은 깊이냐, 상업성이냐의 선택지를 놓고 갈등하기 마련이다. 하다못해 트렌드 드라마를 쓰는 작가 중에도 철학과 예술을 녹여내려는 이들이 꽤 된다. 작곡가의 곡을 받는 가수든, 자신이 직접 쓰는 싱어 송 라이터든 개성과 깊이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있다.

평생 병약하게 살다 말년에 미친 채 숨을 거둔 니체는 생전에 작곡을 했을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고, 나름대로 비평가의 자질도 보였다. 그는 음악을 훌륭한 독자적 예술로 봤고, 거기서 실존주의도 발견했다. 정말 훌륭한-인기 순위를 떠나-가수라면 자신만의 색깔, 즉 개성적 음악성을 갖춰야 마땅하지 않을까?

실력파 프로듀서나 제작자들이 가수의 목소리 톤을 가창력 못지않게 중요시하는 이유다. 얼리는 로렐과 듀엣으로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메시지송을 불렀다 커티스에게 핀잔을 듣고 크게 낙담한다. 니체가 음악에서 실존주의를 본 건 진정한 뮤지션이라면 자신의 감성뿐만 아니라 사상까지도 음악에 담아내기 때문이다.

드림즈의 멤버들은 아티스트나 뮤지션이 아니라 앵무새고 꼭두각시였다. 에피와의 갈등 때 배경에 거울이 많았던 건 바로 드림즈는 자신의 노래를 부른 게 아니라 커티스의 상품을 홍보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린다. 거울 속에 비친 형상은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 시뮬라크르에 불과하니까. 적지 않은 가수와 대중음악 관계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수작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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