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픽사베이

[미디어파인 칼럼=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겉잡을 수 없는 분노의 파도가 잠시 밀려가면, 기다렸다는 듯 지독한 우울이 찾아온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 폭발과 바닥도 모를 우울이 교차하기 때문에, 잠시도 편히 쉬지 못한다. 지금껏 지켜왔던 신앙과 가치관에 속은 듯 느껴지고, 사소한 일상 활동조차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에 빠지고, 하늘과 땅이 무너져 세상이 끝난 것 같은 허무감에 빠진다.

먹고 자는 것조차 할 수 없게 되고,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몰라 점차 모든 만남을 피하게 된다. 상당 기간 끊었던 담배나 술을 다시 시작하기도 하고, 차라리 죽어버리면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이 단계를 잘 넘기기 위해서는 시간에 맞춰 자고 깨고, 때에 따라 잘 먹는 등의 기본 생활 리듬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 상처 배우자가 말한 것처럼 ‘그런 자신이 짐승처럼’ 느껴지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돌봐야 할 자녀가 있거나 매일 지켜야 할 직업 활동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잠시라도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 집중할 다른 일이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책임과 의무로 했던 일들이, 지금은 내가 버텨내야만 하는 이유가 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이 또한 지나 가리라’ 같은 말들은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당신만큼 또는 더한 절망을 견뎌낸 사람들이 한 말이다. 우울 단계는 외도의 상처에서 회복으로 가는 치유 과정 중 ‘아급성기’(subacute period)에 해당한다. 아직 많이 힘들겠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서 서서히 회복기에 들어서게 될 것이니 조금만 더 참고 버티라.

지금까지 설명한 기간은, 상담과 약물을 포함한 최선의 치료를 받는다 해도, 최소 3개월 내지 6개월 정도 소요된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나마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훨씬 길어지거나 평생 못 헤어날 수도 있다. 받을 수 있는 도움은 받고, 피할 수 있는 위험은 피하라! 도움이 되는 것은 계속 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다른 것으로 바꾸라.

과도한 음주를 피하고, 전문의의 처방에 따른 약물을 복용하라. 신앙이나 취미 등 도움이 되는 활동을 찾아 일상을 유지하라. ‘강한 자가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는 등의 말을 되새기며 이겨내라.

이 시기가 지나면 당신은 미처 몰랐던 자신의 잠재력을 찾게 될 것이다. 외도 배우자 역시 당신의 그런 모습을 보고 함부로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 후에야 당신은 배우자의 외도에 대해서 당신이 알아야 할 점들, 배우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자신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서 검토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 그러니 그럴 능력을 회복할 때까지는 당신의 안전과 회복에만 집중하라.

▲ 사진 출처=픽사베이

드물기는 하지만, 모든 상처 배우자들이 위에서 설명하는 것과 같은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외도 배우자조차 놀랄 정도로 (지독한 독감에 걸렸다가 며칠만에 회복된 듯) 빠르게 제 자리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심각한 장애가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감정 반응을 보일 수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은 논외로 하겠다.)

이들은 대단히 강한 자제력과 자아 강도(ego strength)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능력은 그 본인은 물론, 그 배우자에게도 대단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를 감사할 줄 아는 부부들은 남들보다 빠르게 회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외도 배우자는 단순히 ‘휴, 다행이다. 십년 감수했네’ 라거나 심지어는 ‘정말 지독한 사람이군, 이러니 내가 좋아할 수가 없지’처럼 자신에게 편리한 대로 해석한다. 그래서 행운처럼 주어진 기회를 또 다른 외도로 날려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들은 상처 배우자의 처음과는 전혀 다른 단호함을 마주하고 나서야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후회하게 될 것이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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