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싱크로닉’(아론 무어헤드, 저스틴 벤슨 감독)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매우 독특한 미스터리 스릴러로 특히 내내 무겁고 어두운 음향 효과가 긴장감을 더욱 북돋운다. 구급 대원 파트너인 스티브(앤써니 마키)와 데니스(제이미 도넌)는 죽마고우다. 데니스는 아내 타라와의 사이에 18살 딸 브리아나를 두고 있다.

독신인 스티브는 알코올과 약물에 의지해 살아가는데 어느 날 뇌 송과선에서 종양이 발견된다. 6개월을 살지, 6년을 살지 모른다. 둘은 끔찍한 사망 사건의 현장에 잇달아 출동하고, 그 사고의 배경엔 모두 싱크로닉이란 약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분노한 스티브는 매장에 몇 개 안 남은 싱크로닉을 모두 사들인다.

여대생들이 싱크로닉을 복용한 사건 현장에 출동한 두 사람은 브리아나가 실종된 사실을 알게 된다. 데니스와 타라는 미친 듯이 딸을 찾지만 단서조차 발견하지 못하면서 점점 관계가 악화돼 이혼 직전까지 간다. 스티브는 거실 소파에 앉아 싱크로닉 한 알을 먹어 본다. 그러가 그는 과거의 늪지대 한가운데에 놓이게 된다.

그의 집터가 오래전엔 늪지대였던 것. 그렇게 틈만 나면 싱크로닉을 먹으며 과거를 경험하는 가운데 이 약물의 규칙을 알게 된다. 어떤 장소에서 복용하느냐에 따라 그 장소의 과거로 가고 7분 뒤 현재의 약을 복용한 장소로 되돌아온다는 것. 그러자 그는 브리아나를 찾고자 계속 약을 먹게 되는데.

‘어벤져스’의 팔콘 역의 마키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로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도넌이 주인공이라는 게 일단 눈길을 끈다. 단, 스티브는 초인적 능력 대신 고독에 짓눌리고 있고, 데니스는 왠지 무기력감에 시달리기에 섹시한 매력은 가려져있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므두셀라 증후군이고 그래서 외치는 건 ‘오늘을 열심히 살라’다.

흔한 타임슬립 영화들과 다소 달리 사회적인 메시지까지 담아 독특하게 누아르적 미스터리 스릴러로 변주한 게 가장 큰 강점. 무대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며 재즈의 발상지인 뉴올리언스. 남부는 인종차별이 심했던 곳이다. 아직도 그런 잔재가 남아있다는 걸 노골적으로 비판한다.

사람들의 과거는 좋은 것만 떠오르는 므두셀라 증후군과 나쁜 것만 연상되는 순교자 증후군으로 현전한다. 전자는 현실에 대한 부정이고, 후자는 자포자기를 배후에 숨기고 있다. ‘시간은 거짓’, ‘산다는 건 늘 모순’이란 대사가 직언한다. 그래서 ‘과거에 좋았던 건 음악뿐’이라고 뉴올리언스의 재즈에 대한 향수를 드러낸다.

우리는 왜 타임머신이란 걸 창작했을까? 현재가 어렵기 때문이다. 혹은 미래가 궁금하거나 불안하기 때문일 수도. 그럼에도 전자의 이유가 더 크지 않을까? 정통 종교인부터 사이비 종교인까지 유신론자가 그토록 많다는 건 지금까지 힘들었고, 미래는 더 두렵기 때문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그렇다면 실제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낙관주의자보다는 회의주의자가 더 많을 것이다.

제목의 뜻은 ‘공시적’이다. 언어학자 소시르는 언어를 랑그(언어 체계)와 파롤(개인의 언어 사용)로 분류하고 공시태인 랑그를 우위에 뒀다. 통시태는 전체적인 관점에서의 ‘체계와 그 요소들의 변화’를 바라보지만 공시태는 정해진 시점에서 작동하는 ‘동시적 요소들 사이의 관계’에 집중한다.

즉,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미련을 두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데다 어떻게 될지도 모를 미래를 걱정하는 건 이 짧은 생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 삶과 행복의 본질은 오늘을 소중하게 여김으로써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란 에피쿠로스의 (정신적)쾌락주의와 마키아벨리의 순화된 현실주의라는 것.

그래서 대사는 대놓고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건 현재가 아름답다는 것’이라고 부르댄다. 염세주의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는 의외로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긴 건 행복이었고, 그래서 행복을 건강과 등가성으로 봤다. ‘행복은 쾌활함에 비례해 커지고, 쾌활함은 육체와 정신적인 건강에 좌우된다’, ‘행복의 90%는 건강에 달려 있다’라며.

사르트르는 매우 난해한 대표 저서 ‘존재와 무’를 통해 한 인간이란 존재자에겐 절대 하나가 될 수 없는 즉자존재(현상의 존재자)와 대자존재(無)가 있는데 이의 합일을 시도하는 존재론을 설파하며 오늘을 열심히 살 것을 외쳤다. 즉, 우리는 아무 근거 없이 우연히 태어난 존재이니 의식과 의지로 자유롭게 살자는 것.

스티브는 왜 제 딸도 아닌 친구의 딸을 찾고자 계속 위험천만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날까? 그에겐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있을 뿐만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의 흑인 노예 역사의 상처를 대변해 주는 역할도 주어졌기 때문이다. 뉴올리언스 늪지대에서 흑인들의 재즈가 탄생된 배경은 그들의 고통의 몸부림이 잉태한 상상력의 해방, 즉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가 아니었을까?

하이데거에 의하면 현존재는 ‘으스스한 떨림’의 불안을 느끼는 존재자다. 사르트르는 아예 좌절하는 존재라고 명토 박았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죽음을 삶의 완성으로 보고, 사르트르는 좌절 자체가 자유의 인식론에 있음을 들어 현재의 ‘불안’을 제거하고, 밝은 미래를 향할 지평을 제시한다.

스티브가 자꾸 과거로 가는 이유는 과거를 바꾸겠다는 게 아니라 현실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미국에는 마약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 현재가 무기력해 쇠락하고 퇴락한 인간이 늚에 따라 현실은 더욱 힘들어지고, 자본가들, 지식과 잔꾀를 공유한 위선자들이 그들에게 일시적 도피의 쾌락을 판매함으로써 기득권자들만 행복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었던 것이다. 내달 1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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