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2002년 ‘본 아이덴티티’로 시작된 본 시리즈는 ‘007’ 시리즈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이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첩보 영화로서 발상의 전환이 돋보였다. 이후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으로 이어지다 뜬금없이 맷 데이먼이 아닌 제레미 레너를 내세운 ‘본 레거시’로 살짝 실망을 주기도 했다.

‘제이슨 본’(2016)은 데이먼은 물론 폴 그린그래스 감독까지 복귀해 시리즈를 제대로 매조진다는 점에서 이 시리즈에 열광한 관객들에겐 추억의 소환이자 아쉬운 종착지다. 제이슨의 움직임을 포착한 CIA 듀이(토미 리 존스) 국장은 전직 CIA 요원이지만 지금은 자신의 용병으로 일하는 작전요원(뱅상 카셀)을 호출한다.

듀이는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 작전요원은 듀이의 비밀 작전을 폭로해 자신으로 하여금 시리아 테러세력에 2년간 붙잡히게끔 만든 데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본을 죽이려는 공통의 목표가 있는 것. 전직 요원 파슨스(줄리아 스타일스)는 본을 돕기 위해 그리스 아테네에 나타나 그에게 뭔가 알려 주려다 작전요원에게 사살된다.

본은 그녀에게 CIA 해킹을 지시했던 전직 요원 다소를 찾아가 과거의 자료를 통해 트레드스톤 작전의 진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는 한편 아이언 핸드라는 새 작전명을 듣고 궁금증을 품게 된다. 본이 다소의 컴퓨터로 자료를 뒤지는 동안 CIA의 멀웨어가 가동돼 CIA 본부에 본의 위치가 드러나고 본은 독일 베를린을 거쳐 영국 런던으로 도주한다.

런던에서 그는 전직 요원 스미스를 만나 트레드스톤의 진실을 묻고, 추격해온 작전요원의 정체를 알게 된다. 새로운 사이버팀장 리(알리시아 비칸데르)는 본을 죽이기만 하려는 듀이의 태도에 의심을 품게 된다. 작전요원 역시 본을 아는 듯한 눈치다. 리는 더 윗선인 정보국장에게 본을 제거할 게 아니라 설득해 복귀시키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작전요원의 방해로 실패하고 지휘권은 듀이가 다시 빼앗는다. 듀이는 자신의 도움으로 창업해 지금은 소셜 미디어 업계의 큰손이 된 딥 드림사의 회장 칼루어를 만나 딥 드림의 시스템을 이용한 범죄를 제안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러자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학술회에 참여하는 칼루어에게 자신도 함께 참여하겠다며 법무부를 통해 압박한다.

본은 런던에서 스미스를 통해 트레드스톤의 진실을 알아내고 은밀하게 리의 차에 침입한 뒤 아이언 핸드 작전의 진실과 의외의 그녀의 의중을 알게 된 후 라스베이거스로 향하는데. 과거의 시리즈 본편처럼 핸드헬드 카메라와 빠른 컷 전환, 그리고 시종일관 긴장감을 고조, 유지시키는 BGM이 반가울 듯하다.

그동안 오리무중이었던 본의 본명은 물론 그와 아버지의 관계, 그리고 왜 CIA가 그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는지 속 시원히 다 드러난다. 드리고 트레드스톤과 그의 연관성까지. 본은 CIA에 의해 살인 병기로 길들여져 CIA로부터 버림받기 전까지 32명의 사람들을 죽였다. 듀이 등 CIA 간부들은 애국 운운하지만 과연 그럴까?

설령 그게 일부 고위층의 안위와 출세를 위한 게 아니라 정녕 순수한 애국심의 발로였다고 할지라도 법과 도덕, 그리고 인도주의적 신념에 어긋난다면 그걸 정당화할 수 있을까? 이 시리즈는 ‘007’이나 ‘미션 임파서블’과는 달리 첨단 전쟁 무기 등을 적극 활용하기보다는 청룽(성룡)식 맨몸 액션이 트레이드마크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날것 그대로의 아날로그적 액션과 더불어 ‘다크 나이트’가 생각날 만큼의 카 체이싱 액션이 펼쳐져 보는 재미를 극대화한다. 더불어 첨단 디지털 시대에 과연 프라이버시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걸 비뚤어진 권력이 얼마나 철저하게 짓밟을 가능성이 농후한지 명징한 메시지를 던진다.

칼루어는 전 세계의 그 어느 기관이나 개인이라도 감시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기에 절대 그 시스템을 가동하려 하지도, 타인에게 팔려고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의 아킬레스건을 잡고 있는 듀이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그를 겁박해 그 시스템으로 전 세계의 정보망을 지배하려 든다.

물론 듀이의 야욕은 실현되지 못한다. 듀이는 본에게 그가 CIA에서 받은 훈련과 작전 수행 능력을 통해 보여 준 야수성을 거론하며 복귀할 것을 제안하지만 본은 “난 다른 삶을 살 거야”라고 거부한다. 그러자 듀이는 “진짜 자네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라고 응수한다.

주제는 국익이냐, 인도주의냐의 인식론이다. CIA가 하고자 하는 목적의 끝은 분명 미국의 이익이긴 할 것이다. 하지만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드러났듯 그 결과의 수혜자는 지도층과 자본가를 포함한 소수였지 다수의 서민들은 거리가 좀 있었다. 중동의 테러 세력을 일망타진한다고 미국 서민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질까? 승용차 유지비가 조금 덜 나가긴 하겠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경제와 문화의 강국이지만 ‘N포세대’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게다가 현대는 글로벌을 지향한다. 민족이나 국가 단위로 뭉치던 국수주의는 점점 희미해져가는 대신 지방자치단체의 집단이기주의가, 그리고 가족 단위가, 더 나아가서 개인의 행복과 만족이 더 중시되는 추세다.

물론 민족과 국가의 체제와 전통을 지키는 건 중요하다. 그러면서도 전 세계적인 추세는 타국의 빈민이나 난민에게도 관심을 갖는 인도주의적 성향이 날로 강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미국은 인종차별과 빈부격차가 영원한 숙제이긴 하지만 이 영화처럼 자국의 국가주의를 상업영화로 조롱할 수 있다는 자유만큼은 부럽다. 그래서 열린 결말은 참으로 간담이 서늘하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