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19세기 청조 말의 혼란기. 명문 문파인 무당파의 마지막 제자로서 당대 최고의 실력을 갖춘 무사 무바이(저우룬파-주윤발)는 사부의 원수인 푸른 여우를 죽이지 못한 죄책감과 더불어 자신을 위해 희생한 친구의 정인인 쉬리안(앙쯔충-양자경)에게 연정을 품고 있는 데 죄악감 때문에 강호를 떠나려 한다.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400년 된 명검 청명검을 쉬리안에게 준 뒤 그들의 은인인 베이징의 타이 대인에게 전하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청명검을 전하자마자 도둑이 들어 훔쳐 가고, 쉬리안은 왕실 보안 책임자인 세도가 유 대인의 식솔 중 한 명을 의심한다. 뒤늦게 무바이도 타이의 집에 도착한다.

유 대인에겐 룽(장쯔이)이라는 미모의 딸이 있다. 예전에 룽은 엄마와 함께 아버지의 새 부임지로 이동하다 서쪽 사막에서 마적단 두목 후(장첸-장진)를 만나 불같은 사랑에 빠졌지만 아버지가 그녀를 찾기 위해 군사를 풂으로써 마적단의 생존이 위태로워지자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아버지가 강제로 정략결혼을 시키려 해 곧 마음에도 없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야 한다. 결혼식 전날 후가 찾아오지만 룽은 이별을 선언한다. 다음날 결혼식 행렬에 후가 나타나 행패를 부리다 위험에 처하자 무바이가 구해 준 뒤 무당산에 머물도록 돕는다. 그런데 룽도 사라진다.

사실 푸른 여우는 룽이 어렸을 때 신분을 숨기고 유모로 그 집에 들어온 후 룽에게 무공을 전수했다. 청명검을 훔친 도둑은 바로 룽. 룽이 청명검으로 특정 지역의 고수들을 단숨에 물리쳤다는 소문을 듣고 무바이와 쉬리안이 그곳으로 달려온 뒤 인근의 인연이 있는 수련장에서 그날 밤을 보내자고 하고 헤어진다.

그러자 룽이 그곳에 먼저 도착한 쉬리안을 방문한다. 쉬리안은 처음부터 룽의 내막을 알았다며 훈계를 하지만 룽은 그걸 받아들이려 하지도, 청명검을 돌려주려고 하지도 않는다. 청명검의 힘에 밀린 쉬리안이 위기에 처할 즈음 무바이가 나타나 달아나는 룽을 쫓자 드디어 푸른 여우가 등장하는데.

‘와호장룡’(앙 리-이안-감독, 2000)은 이듬해 미국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서 최우수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할 만큼 구미권에서 각광받았지만 중국과 우리나라에선 그만큼 인정받지 못했다. 권선징악, 해피엔딩이라는 기존의 무협 영화와는 구문법이 완전히 다른 비극적 결말을 통해 욕망의 허무함을 부각했기 때문이다.

리 감독은 평소 존경했던 중국 무협 영화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후진콴(호금전)을 오마주 했다고 대놓고 말했는데 저 유명한 무바이와 룽의 대나무 숲 대결 시퀀스다. 또한 룽과 후의 사막 시퀀스는 왕자웨이의 ‘동사서독’을 떠올리게 한다. 무협 영화로서의 액션 신들도 훌륭하지만 이 영화의 강점은 도가사상에 있다.

쉬리안은 대놓고 무바이가 도교에 심취했다고 말한다. 정확하게는 무위자연의 도가사상이다. 그는 검술 수련을 멈춘 채 내공 수행에 정진한다. 깨달음을 얻으면 얻을수록 자신의 존재의 미미함과 인간의 모든 욕망의 허무함을 깨우치게 됨으로써 인생 자체에서 허무함과 고독감만 느낄 따름이다.

이는 스승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비롯된 살생의 의지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친구의 연인에 대한 연정이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지, 양심이 허락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번뇌의 몸부림이다. 쉬리안도 옛 정인의 죽음 이후 무바이의 고매한 인품과 더불어 같은 무사로서의 그의 능력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어느덧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됐지만 부담스럽긴 마찬가지.

후는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사막에서 마적단에 의해 자란 무식쟁이지만 귀족이나 부자가 안 부럽다. 너르고 안락한 저택도, 화려한 비단옷도, 진수성찬도 죄다 거리가 멀지만 자유로우니 그 자체가 행복이다. 룽의 명령에 그는 “난 누구의 명령도 안 받는다”라고 말한다.

룽은 정체성이 애매모호한 인물이다. 남부러울 게 하나도 없이 금지옥엽으로 자랐지만 자기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그런데 유일하게 유모의 정체를 아는 그녀는 그 푸른 여우에게서 무공과 더불어 강호세계의 거칠고, 이율배반적인 권모술수 등을 간접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자유에의 갈망을 배웠다.

상처를 입긴 푸른 여우도 마찬가지. 원래부터 사악했던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그녀는 무바이의 사부인 무당파 장인의 사랑을 받는 줄 알고 동침했으나 이후 내쳐졌다. 그러자 복수심에 무당파의 비급인 무당심결을 훔쳐 룽과 함께 연마했는데 문맹인 그녀는 그림만 익혔고, 룽은 전부 익힌 뒤 그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데 룽 역시 무당심결을 완벽하게 깨우친 건 아니다. 그 비급의 행간에 담긴 내공의 비결을 간과한 것. 무바이가 룽에게 공격적이지 않고 우호적인 것은 무당파의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는데 그녀가 완벽한 제자의 자질을 갖췄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룽은 제자가 되기를 거부한다.

무바이와 쉬리안이 룽과의 검투에서 던지는 모든 잠언이 이 영화의 주제이자 도가사상이 설파하고자 하는 철학이다. “명검일지라도 주인을 잘 만나야 힘을 발휘하는 법”, “외유내강이 통치의 길”, “진정한 힘은 깃털처럼 가볍다” 등등. 결국 무바이는 푸른 여우의 독침을 맞고 서서히 죽어간다.

뒤늦게 뭔가 깨달은 룽은 해독제를 구해 오겠다며 혼신의 힘을 기울여 내달리고, 무바이는 쉬리안의 품 안에서 숨이 식어가며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자 쉬리안은 “당신의 숨을 내게 낭비하지 말고 영혼을 영원의 세계로 보내는 데 사용하라”라며 모든 미련과 회한 등 속세의 감정을 내려놓고 편히 쉬라고 달랜다.

“주먹을 쥐면 그 안엔 아무것도 없지만 주먹을 펴면 그 위엔 모든 게 있다”라는 대사는 바로 무위자연의 사상이다. “포기해야 얻는다”라는 대사도 같은 맥락. 대나무 시퀀스는 균형을 의미한다. 과욕은 균형을 깨뜨린다는. 무당산으로 달려간 룽은 다음날 안갯속으로 자아를 던진다. “자신에게 진실하라”는 쉬리안의 말을 깨달은 것이다. 이 걸작은 타이완 출신 미국 영주권자 리 감독의 정체성이자 영원한 시그니처가 될 듯하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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