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픽사베이

[미디어파인 칼럼=한의사 홍무석의 일사일침(一事一針)] 가축의 젖을 가공하여 만드는 유(乳)제품은 서양에서 들어왔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삼국시대에 우유가 존재했다는 온라인 기사를 읽었다. 삼국유사에는 우유를 의미하는 소젖 락(酪)자가 등장하고, 왕실이나 귀족에 우유 공급을 위해 전용 목장인 유우소(乳牛所)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나온다는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3년 기록에는 수유치(酥油赤)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연유 수(酥) 기름 유(油)자를 써서 수유는 요즘 말하는 버터 혹은 치즈를 의미하고 치는 ‘벼슬아치’ ‘장사치’할 때 치이다. 수유치는 병역의무가 면제될 정도로 대우가 괜찮았다고 한다.

현대적인 낙농은 1960년대 이후 정부의 낙농 진흥정책이 추진되면서 시작됐고 우유는 신선도와 맛을 위해 처음에는 유리병이 사용됐다. 무겁고 잘 깨지는 우유병의 단점은 ‘종이 병’으로도 불리는 카톤 팩이 등장하면서 우유소비량도 크게 늘어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기술발전 트렌드에 따라 포장용기의 혁신이 우유 대중화에 기폭제로 작용했듯이 한약(韓藥)의 포장도 시대흐름에 맞춰 변모하고 있다. 우선 한약 달이는 방법부터 달라졌다. 요즘에는 집에서 한약을 달이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런데 1960~70년대만 해도 한약 달이는 게 하나의 의식(儀式)처럼 정성부터 중요했다. 한약 달이기 전에 목욕재계하는 분들이 계셨다. TV 사극 드라마를 보면 약탕관을 화롯불 위에 올리고 불을 정성스레 부채로 부치는 모습들이 나오기도 한다. 21세기로 접어든 2000년대 초반에도 한약 달이는 방법이 신문에 소개될 정도였다.

2003년 7월 중앙일보 기사에는 “밥도 금방 지어 먹어야 맛이 좋고 소화가 잘 되듯이 한번에 1백50~2백㎖쯤 탕액을 만들어 바로 온복(溫服)하는 것이 최상의 복용법입니다...약을 달이는 그릇(약탕기)은 곱돌 약탕관이 가장 좋고 그 다음으론 질그릇을 꼽습니다...약탕기에 넣는 물은 깨끗한 우물물이 좋으나, 정수한 수돗물을 사용해도 무방합니다...”라고 소개돼 있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요즘은 가정에서 한약을 거의 달이지 않고 한방병원이나 한의원에서 약탕기를 써서 직접 한약을 달여 제공하고 있다. 예전에는 첩지라고 해서 한약을 종이에 묶어서 집에 가져와 달이기도 했는데, 비닐 팩으로 만든 파우치가 나오면서 한약 붐을 일으켰다.

파우치 한약은 학생들의 책가방이나 직장 여성들의 핸드백에 넣고 다니며 먹을 수 있어 한때 보약 먹는 젊은이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한약 르네상스는 홍삼 오메가3 등 건강기능식품이 나오면서 주춤했다가 시대 변화에 따라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약이 보약 위주에서 비만 피부 성형관리 등 질환치료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약간 뚱뚱한 편인 태음인들의 비만처방으로 위를 조율해서 식육을 떨어뜨리는 태음조위탕이 한때 인기를 끌었던 것도 그런 배경이다.

이후 다이어트를 도와주는 처방으로 개인상황에 맞춰 노폐물을 빼주거나, 몸에 혈액이 제대로 돌지 못하여 한 곳에 정체되어 있는 증세인 어혈을 개선하거나, 식욕 감소를 위해 위의 열을 꺼주는 등의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질환처방의 경우 실손의료보험으로 처리될 정도다.

한약의 쓴 맛이 힘든 분이나 어린이를 위해 증류 한약을 처방하기도 했다. 또한 약재를 가루로 만들어 반죽하여 작고 둥글게 빚는 약인 환(丸)의 형태를 잡아주는 부형제(賦形劑)로 찹쌀이나 꿀을 넣어 빚었지만 요즘에는 탕약을 농축해서 태블릿이나 캡슐에 넣기도 한다.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노력들인 셈이다.

옛말에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 했다. “옛 것을 복습하여 새 것을 아는 이라면 남의 스승이 될 만하다<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면 가이위사의(可以爲師矣)>는 공자 말씀에서 나온 구절이다. 예로부터 그랬듯이 한의학을 현실에 맞게 적용하려는 노력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 한의사 홍무석

[홍무석 한의사]
원광대학교 한의과 대학 졸업
로담한의원 강남점 대표원장
대한한방피부 미용학과 정회원
대한약침학회 정회원
대한통증제형학회 정회원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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