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박병규 변호사의 법(法)이야기]

▲ 사진 출처=픽사베이

분묘기지권이라는 말을 들어보신적 있으신지요?

분묘기지권이란 분묘가 다른 사람의 토지 위에 설치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 분묘와 주변의 일정 면적의 땅에 대해서는 사용권을 인정해주는 관습법상의 물권입니다.

분묘기지권은 ① 토지 소유자의 승낙을 얻어 분묘를 설치한 경우, ② 토지 소유자의 승낙을 받지 않았더라도 분묘를 설치하고 20년 동안 평온·공연하게 점유함으로써 시효로 인하여 취득한 경우, ③ 자기 소유의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자가 분묘에 관해서는 별도의 특약이 없이 토지만을 타인에게 처분한 경우 가운데 한 가지 요건만 갖추면 성립합니다.

분묘기지권의 범위는 그 분묘의 기지뿐 아니라 분묘의 설치 목적인 분묘의 수호 및 제사에 필요한 범위 안에서 분묘기지 주변의 공지(空地)를 포함한 지역에까지 미치는 것으로 봅니다(대법원 판례 85다카2496).

분묘기지권의 존속기간은 민법의 지상권 규정을 따를 것이 아니라, 당사자 사이에 약정이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그에 따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에는 권리자가 분묘의 수호와 봉사를 계속하는 한 그 분묘가 존속하고 있는 동안은 분묘기지권이 존속한다고 봅니다(대법원 판례 81다1220).

특히 대법원은 남의 땅에 묘지를 설치하고 20년 동안 평온·공연하게 점유해 사용한 경우(소위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 토지 사용료를 낼 필요가 없다고 보아왔습니다.

서민들이 분묘를 설치할 땅을 소유하지 못한 경제상황과 장묘시설이 부족해 남의 땅에 매장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 등을 감안한 것이었지만, 화장 비율이 크게 높아지는 등 장묘 문화와 제사 등에 대한 국민 의식이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토지소유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분묘기지권을 계속 인정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져왔습니다. 특히 분묘기지권자에게 토지 사용료라도 청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했더라도 땅 주인이 지료(토지사용료)를 청구하면 청구한 날부터 이를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습니다.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한 경우에는 지료(地料)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기존 판례를 변경한 것입니다.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사안의 개요

A는 2014년 경기도의 한 임야를 매입하였습니다. 이 임야에는 1940년 사망한 B의 조부와 1961년 사망한 B 부친의 분묘가 있었는데 B는 이 분묘들을 계속해서 관리해왔습니다.

임야 소유자 A는 B를 상대로 "내가 토지 소유권을 취득한 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토지사용료를 내라"고 요구했으나, B는 자신에게 분묘기지권이 있으므로 낼 수 없다고 이를 거절하여, 결국 A가 B를 상대로 지료청구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1, 2심 법원의 판단

1심 법원은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하는 경우 지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대법원의 기존 태도에 따라 원고 패소판결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분묘기지권을 시효취득하는 경우에도 적어도 토지 소유자가 지료 지급을 청구한 때부터는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여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하였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A가 B를 상대로 낸 지료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2017다228007).

재판부는 "분묘기지권과 같이 관습법으로 인정된 권리의 내용을 확정함에 있어서는, 관습법상 권리의 법적 성질과 이를 인정한 취지, 당사자 사이의 이익형량과 전체 법질서와의 조화를 고려해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한 후,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성립한 분묘기지권으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토지 소유자로 하여금 일정한 범위에서 토지 사용의 대가를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당사자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어 "다만 분묘기지권자로 하여금 오래 전 분묘를 설치한 시점까지 소급해 그 이후의 지료를 모두 지급하도록 하면, 분묘기지권자는 장기간의 지료를 일시에 지급해야 하고 이를 지체하면 분묘기지권 자체가 소멸할 수 있다. 이는 관습법상 분묘기지권의 시효취득을 인정해 온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분묘기지권의 특수성, 조리와 신의성실의 원칙, 지료증감청구권 등 관련 규정의 근본적인 취지를 종합하면, 분묘기지권을 시효로 취득한 경우 토지 소유자가 토지 사용의 대가를 청구하면, 그때부터 지료 지급의무를 부담한다고 봐야 한다.

이와 달리, 분묘기지권자의 지료 지급의무가 분묘기지권이 성립함과 동시에 발생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1992. 6. 26. 선고 92다13936)과 분묘기지권자가 지료를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1995. 2. 28. 선고 94다37912) 등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이를 모두 변경한다"고 판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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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위 사건에서 기존 판례를 변경해 토지 소유자가 분묘기지권자에게 지료를 청구할 수 있지만, 청구할 수 있는 지료의 범위를 토지 소유자가 토지 사용료를 청구한 날로부터 계산하도록 제한해 이전의 사용료까지 무한정 소급해 청구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결국 대법원의 판례변경은, 장묘 문화와 제사 등에 대한 국민 의식이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토지소유자의 권리와 분묘기지권자의 권리의 충돌의 절충점을 찾은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번 판결에 따라 시효취득한 분묘기지권에 대하여 정리한다면,

① 분묘기지권자는 토지 소유자가 재판상 또는 재판 외에서 지료를 청구하면 그때부터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게 됩니다.

② 지료의 구체적 액수는 당사자의 협의로 정하거나 당사자의 청구에 따라 법원이 정할 수 있고(민법 제366조 단서), 정해진 지료가 지가 상승 등 경제사정의 변동으로 상당하지 않게 되면 당사자는 지료 증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286조).

③ 지료 채권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10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됩니다(민법 제162조 제1항).

④ 지료를 2년분 이상 지급하지 않으면 토지 소유자는 분묘기지권의 소멸을 청구할 수 있지만(민법 제287조), 당사자의 협의나 법원의 판결에 의해 분묘기지권에 관한 지료의 액수가 정해지지 않았다면 분묘기지권자가 지료를 지급하지 않았더라도 지료 지급을 지체한 것으로 볼 수는 없어 분묘기지권 소멸 청구는 허용되지 않습니다(대법원 93다52297 판결 등 참조).

▲ 박병규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박병규 변호사]
서울대학교 졸업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제37기 사법연수원 수료
굿옥션 고문변호사
현대해상화재보험 고문변호사
대한자산관리실무학회 부회장
대한행정사협회 고문변호사
서울법률학원 대표
현) 법무법인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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