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600년 서울을 만나다 [최철호 칼럼]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l승인2021.05.26l수정2021.05.2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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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악산에서 바라 본 인왕산 정상과 기차바위

[미디어파인 칼럼=최철호의 한양도성 옛길] 비 그친 백악산은 구름이 춤을 춘다. 삼각산과 인왕산 기차바위에서 성곽길 따라 불어오는 바람이 구름과 구름 사이로 휘감겨 도성 안 궁과 궐로 내려간다. 경복궁으로 갈 것인가.. 창덕궁으로 갈 것인가.. 구름이 잠시 바람을 타고 내려갈 즈음 풍경 속 그림을 사진에 담아 본다. 이제 청운대에서 숨을 돌렸다면 다시 내려가 보자. 어디로 갈 것인가? 도성 안으로 걸어도, 도성 밖으로 걸어도 백악 곡장(曲墻)을 만날 수 있다.

백악 곡장을 가는 길,어디로 갈 것인가...

▲ 백악산 성곽에서 바라 본 도성 밖 삼각산

도성 안을 걷는다면 성벽에 쓰여진 글자를 볼 수 있다. 도성을 쌓은 지역, 도성을 쌓은 사람과 감독관까지 우리의 조상이었다. 옛 조상을 만나듯, 그 숨결을 느끼며 걸을 수 있다. 각자성석(刻字成石)에 성곽을 쌓은 날 그 역사의 순간이 적혀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더듬어 그들의 거친 숨소리도 들어 볼 수 있다. 백악산을 기준으로 한양도성 97구간 곳곳에 각자성석이 남아 있다. 현재까지 274개 이상이 발견되었다. 각자의 시기별 특징과 구간별 축성 시기를 확인할 수 있으니 한양도성은 살아 있는 박물관이 틀림없다.

밖을 걷는다면 높은 성벽과 성곽을 쌓은 시기에 따라 성벽의 성돌도 볼 수 있다.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 쌓은 성벽과 울퉁불퉁 다듬어지지 않은 옥수수 같은 성돌 그리고 정방형 화강암을 사용한 흔적이 도성 밖 성벽에 남아 있다. 정확한 크기로 깍고, 정으로 잘 다듬어 정교한 성벽까지 시간의 흐름과 과학기술이 축적된 토목기법도 백악산 도성 밖 성벽에 남아 있다. 도성 안과 도성 밖으로 걸어도 백악 곡장에 다다르는 방법은 같다. 백악 곡장에 우뚝 서는 순간 탄성이 울려 퍼지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이곳은 한양도성에서 가장 소실된 부분이 적고, 오래된 성곽을 유지한 한양도성 순성길 백악(白嶽)구간이다.

▲ 백악산 성곽에서 바라 본 도성 밖 삼각산 보현봉

한양도성 600여 년 이야기는 세월이 흘러도 백악 곡장 아래 성벽에 그대로 남아 있다. 45도 직벽의 힘든 성곽을 쌓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곤소곤 들린다. 저 멀리 함경도와 강원도에서 와 성곽을 쌓으며 고향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 숙정문에 앉아 북쪽을 바라본다. 바위와 바위틈에 핀 노란 민들레처럼, 성돌과 성돌 사이에 이끼가 말을 건네듯 구슬픈 이야기도 전해온다. 찔레꽃 향기가 전해오는 백악산 성곽길 함께 걸어가 볼까요. 한양도성을 걸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곳에 있다. 누구랑 함께 걸어갈 것인가?

도심 한복판 산딸기가 손짓하는 성문, 숙정문(肅靖門)

▲ 백악산에서 바라 본 병풍같이 펼쳐진 삼각산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등지고자 하랴마는/ 세월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청음 김상헌의 처절한 시조 한 수를 백악산 성벽이 이어진 숙정문에서 노래하니 서울이 발아래요, 저 멀리 숭례문 너머 한강물이 출렁이는 듯하다. 이 시조의 주인은 82년을 이곳에서 살며 왜란과 호란을 겪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절개와 지조의 상징으로 조선 후기 대표적인 세도 가문인 장동 김씨의 출발점이 청음 김상헌이다. 인왕산 아래 장동팔경에 나오는 장동(壯洞)은 어디이고, 백악산 아래 궁정동(宮井洞)은 또 어디인가? 경복궁과 창덕궁 뒤에 있는 산이 백악이요, 방향이 북쪽이니 북악이다.

▲ 백악산과 낙타산 따라 이어진 도성 안과 밖 _ 성북동과 혜화동의 경계

백악산은 600여 년 한양의 주산이다. 백악마루에서 백악신사를 짓고, 기우제와 산신제를 지냈던 영험한 산이다. 한양도성에서 가장 높은 342m 산이자, 내사산 중 주산이니 예사롭지 않다. 백악산에서 앞을 보니 목멱산이요, 뒤를 보니 서울의 진산 삼각산이다. 삼각산과 백악산이 이어져 있고, 백악산과 인왕산이 한 몸처럼 되어있다. 저 멀리 백운대와 인수봉은 도봉산 오봉까지 이어져 수락산과 연결되어 있다. 서울에서 의정부까지 산과 산으로 이어져 있으니 서울은 산이요, 도성이 이어진 성곽의 도시다. 백악산에서 낙타산으로 내려가는 길 북쪽의 대문인 숙정문(肅靖門)이 보인다.

▲ 백악산 청운대에서 바라 본 도성 안 궁과 궐

창의문에서 힘들게 올라온 백악마루에서 성벽을 따라 다시 내려가니 크지 않은 성문이 있다. 홍예문과 성벽이 맞붙어 있어 문루에 앉아 시원한 바람에 땀을 말린다. 한양도성 성문 중 좌우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유일한 문은 숙정문이다. 한양도성 안 다른 성문들과는 달리 천정에 그림도 없이 화강암 홍예로 되어있다. 사대문 중 숙정문은 대문 역할을 못하고 항상 굳게 닫혀 있었다. 험준한 산악지역에 소나무까지 심어 실질적인 성문 기능을 하지 않았다. 높은 산 중턱에 있어 길은 험하고, 인적은 드물다. 성문을 나서면 삼각산이요, 동쪽으로 내려와야 성북천 지나 혜화문이다. 그 옛날 누가 숙정문을 지났을까?

숙정문은 음양오행 중 물을 상징하여 가뭄이 들 때 열고, 불을 상징하는 숭례문이 닫혔다. 기우제를 위해 열고, 비가 많이 오면 기청제를 위해 또 닫았던 성문이다. 숙정문은 시간이 흐르며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렵게 되었다. 숙정문보다는 동소문인 혜화문으로, 북소문인 창의문을 통해 도성 안으로 출입하였다. 따라서 숙정문을 폐쇄하여도 아무런 지장이 없어 항상 닫았던 대문이다. 지혜로움을 환하게 밝히는 문, 소지문(昭智門)이 ‘정숙하고 고요한 기운을 일으키는’ 숙정문(肅靖門)으로 되어버렸다.

지혜로움을 밝히는 문, 소지문(昭智門)에 가고 싶다

▲ 한양도성의 북대문_숙정문 밖 탐스러운 산딸기

한양도성 사대문과 사소문 중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성문이 되었다. 이제는 오가는 사람이 없고, 산딸기만 깊은 산속 성곽 주변에 고요하게 군락지처럼 남아 있다. 서울 한복판에 산딸기라니 믿어지지 않는 풍경이다. 차로도 갈 수 없고, 지하철로도 갈 수 없는 유일한 대문이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할 수 없는 성문, 서울 안 오지가 바로 이곳이다. 백악산을 넘어야 갈 수 있는 숙정문, 삼청공원에서 말바위까지 걸어야 볼 수 있는 성문이다. 그래서 깊은 서울 안 산속에 산딸기밭이 있다. 산딸기가 백악산 기슭에 넘실대듯, 뽕나무 열매인 오디도 주인을 기다리며 성북동과 성북천 주변에 주렁주렁 열려있다.

선잠단(先蠶壇)에 나서던 왕의 걸음처럼, 숙정문에서 느릿느릿 소의 걸음같이 산딸기를 찾아 한양도성 뚜벅뚜벅 걸어보면 어떨까? 그곳을 걷고 싶다.

▲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저서)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소장]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지리산관광아카데미 지도교수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외래교수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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