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전설의 시작’, 무작정의 신념에 대한 인식론을 묻다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21.06.14l수정2021.06.14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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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게리 쇼어 감독, 2014)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를 연상케 하지만 결코 그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한창 세력을 넓혀 가는 오스만제국이 번성하던 1442년. 술탄은 속국 트란실바니아의 소년 1000명을 끌고 와 제국에 반항하는 자를 죽이는 킬러로 양성했다.

그중의 한 명은 특히 무시무시한 전사로 악명이 높았는데 바로 블러드(루크 에반스). 잔혹한 전투에 염증을 느끼던 중 귀국할 기회를 잡은 그는 대공이라는 호칭 속에 지배자의 자리에 앉아 평화 유지에 힘쓰며 살고 있다. 어느 날 순찰을 하던 군인들은 오스만 척후병의 투구를 발견하고 동굴을 수색하다 정체불명의 괴물(찰스 댄스)에게 몰살된다.

아내 미레나(사라 가돈), 외아들 인제라스와 평화롭게 살던 블러드의 앞에 오스만의 칙사가 나타나더니 인제라스를 포함한 소년 1000명을 보내라고 일방적인 통첩을 한다. 술탄 2세(도미닉 쿠퍼)는 블러드와 어린 시절을 함께한 사이이다. 그래서 블러드는 오스만에 가서 그를 설득하지만 먹히지 않는다.

드디어 오스만의 군인들이 인제라스를 직접 데려가려고 나타나지만 순간 자존심이 상한 블러드는 칼을 휘둘러 홀로 그들을 물리쳐 아들을 구해 준다. 그리고 그는 힘을 갖추기 위해 전설을 좇아 브로큰투스산에 오른다. 그 동굴 속에 살고 있는 괴물은 어둠의 힘을 얻고자 악마를 불러냈던 뱀파이어이다.

뱀파이어는 블러드에게 게임을 제안한다. 자신의 피를 마시면 초능력을 갖추고 영생할 수 있는데 3일 동안 인간의 피를 안 마시면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지만 마시면 영원한 뱀파이어가 되어 자신을 구원해 준다는 내용이다. 뱀파이어의 피를 마신 블러드는 1000명의 오스만 군대를 혼자 힘으로 물리친다.

양국에는 블러드가 괴물이 되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심지어 아국의 수도사가 은과 햇빛을 통해 블러드를 제거하려 들기까지 한다. 위기에서 벗어난 블러드는 백성들을 산꼭대기의 수도원으로 피신시키고 자신은 밤을 이용해 오스만 추격대를 꾸준히 공격한다. 그러나 수많은 오스만 군대는 결국 인제라스를 생포하고 미레나를 죽이는데.

현대로 시점이 바뀌는 마지막 시퀀스를 보면 이 영화가 시리즈를 의도하고 제작된 것임을 손쉽게 느낄 수 있지만 아직 아무런 후속 얘기가 없는 게 어느 정도 이해는 될 듯하다. 그럼에도 브람 스토커가 창조한 드라큘라가 향후 각종 영화에서 얼마나 왜곡됐는가를 알리고자 하는, 루마니아의 입장을 대변하고자 하는 저의는 썩 봐 줄 만하다.

감독은 ‘데드풀’이나 ‘수어사이드 스쿼드’ 같은 안티 히어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듯하다. 이는 세상을 지배하는 이원론과 이항대립 혹은 이분법적 논리에 대한 반기이다. 블러드는 “세상에는 영웅만 필요한 게 아냐.”, “인간이 두려워하는 건 괴물.”이라며 자신의 백성을 구하려는 의도만 올바르다면 악마와의 악수도 때론 필요하다고 설파한다.

뱀파이어는 그런 이분법적 사고의 틀을 깨는 아주 대표적인 장치이다. 그는 블러드에게 던진 제안을 게임이라고 명명한다. 그러면서 “희망과 절망, 어둠과 빛이 동시에 들리고 보이는 능력을 주겠다.”라고 선언한다. 오스만의 침공 소식에 기도를 올리는 수도사에게 블러드는 “기도가 살려 주냐?”라고 일침을 날린다.

이 영화는 세상에 완벽한 존재는 없다고 외친다. 뱀파이어와 블러드를 통해 신에게도 약점이 있다고 명토 박는다. 블러드에게 "회개하라."라며 죽이려는 수도사의 의도는 정의라기보다는 그저 종교적 신념일 따름이다. 여기에서 이 영화의 인식론이 분명해진다. 조국을 구하기 위해 악마의 도움을 받은 블러드의 행위는 선이냐, 악이냐?

또 다른 시퀀스. 블러드는 오스만의 대군을 상대하기 위해 죽어 가는 백성 몇 명을 뱀파이어로 만든다. 그러나 마성을 통제하지 못한 뱀파이어 무리는 오스만 군대를 물리친 뒤 자국 백성마저 공격하려 한다. 자아도취는 만족의 발판과 자만의 스승은 될 수 있지만 결국 아침의 숙취와 같은 고통의 원천일 수밖에 없다!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자들은 금욕과 절제를 금과옥조로 살았다. 그건 곧 겸손함과 소박함을 추구하고 사랑하라는 언명이다. 에피쿠로스학파의 쾌락주의자들은 정신적인 쾌락을 지고의 가치관으로 상정하고, 검소한 생활을 영위함으로써 아타락시아(영혼의 평정 상태)에 이르라는 인생관을 설파했다. 다소 어설프고, 지나치게 상업성을 추구함에 따라 메시지를 간과한 작품이긴 하지만 나름의 표제는 갖췄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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