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컬트에 가까운 코믹 호러 영화 ‘터스크’(케빈 스미스 감독, 2014)는 일단 전면에 내걸린 조니 뎁이라는 이름을 기대하지만 않는다면 마니아용으로는 나쁘지 않다. 뎁은 주인공이 아닌, 막판에 재미를 주는 전직 형사 역의 조연인 데다 분장까지 했기 때문에 특유의 유머러스한 연기가 아니면 알아보기 힘들다.

월러스(저스틴 롱)는 친구 테디(할리 오엘 오스먼트)와 함께 팟캐스트를 운영한다. ‘킬 빌 키드’라는 별명을 가진 캐나다의 한 누리꾼이 닌자 검을 휘두르다 어처구니없이 자신의 다리를 베는 사고를 내자 월러스는 그를 인터뷰하러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러나 그는 이미 자살한 직후이다.

낙담해 한 바에서 한잔하던 그는 화장실에서 구미가 당기는 전단지를 발견한다. 오랫동안 바다에서 살아온 하워드 하우(마이클 팍스)라는 한 노인이 자신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것. 한밤중에 렌터카를 달려 하워드를 만난 월러스는 그가 건넨 차를 마신 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사흘 만에 깨어난다.

정신을 차리니 두 팔에 감각이 없는 데다 한쪽 다리가 잘렸다. 알고 보니 하워드는 엽기적인 연쇄 살인범. 바다에 표류해 죽을 뻔했지만 한 바다코끼리에 의해 목숨을 구하자 터스크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가족처럼 지냈다. 그러나 구조를 기다리던 중 너무 배가 고파 어쩔 수 없이 그를 잡아먹은 죄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 23명의 사람을 납치해 바다코끼리로 개조하려 했으나 모두 죽는 바람에 실패했고, 이제 월러스가 24번째 실험 대상이다. 하워드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자신의 휴대 전화를 발견한 월러스는 테디와 연인 앨리슨(제네시스 로드리게스)에게 전화를 걸지만 안 받는다. 그 시각 둘은 불륜 행각을 벌이고 있었던 것.

일단 설정 자체가 그로테스크해 보편적 정서와 거리가 멀다. 바다코끼리로 변신‘당한’ 월러스의 비주얼도 보기 흉하다. 그런데 할리우드에서 다양한 예술가로서 활동 중인 스미스인지라 이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유머러스하면서도 묵직하다. 우선 미국의 캐나다에 대한 편견이다.

월러스는 캐나다 공항 입국 심사 때 담당 직원에게 하키를 싫어한다고 말했다가 진땀을 흘린다. 직원은 슬픔은 미국이 만든 것이라며 캐나다 국기에는 없는 우울한 파란색이 성조기에는 있다는 게 그 증거라고 말한다. 하워드는 오랜 바다 생활을 청산하고 미국으로 갔지만 문명을 못 참고 캐나다의 시골로 이사했다.

영화 속에서는 비프로스트(미국식은 바이프로스트)가 자주 언급된다. 북유럽 신화의 인간계인 미드가르드와 신계인 아스가르드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비록 혹한의 추위라는 악조건이긴 하지만 청정한 환경에 대한 캐나다인의 긍지를 의미한다. 캐나다는 프랑스인과 영국인이 중심이 돼 건국한 나라이다.

그래서 미국에 대한 반감만큼이나 나치에 대한 경계심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월러스가 운영하는 채널 이름이 낫씨(Not see)라고 하자 캐나다인이 “나치이냐?”라고 물을 정도. 하워드는 외형상 빌런이다. 아무 죄 없는 사람을 감금한 뒤 신체를 훼손하고 결국에는 죽게 만드는 시리얼킬러이다.

행위 자체는 중대 범죄이지만 그에게는 그만의 신념이 있었다. 어린 시절 그는 강도에게 부모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걸 목도했다. 이후 고아원에서 자랐다. 국가는 정신병원에 막대한 지원을 했는데 유력 정치인이 후원금을 타 내기 위해 고아원장과 결탁해 고아원을 정신병원으로 바꿔 아이들을 학대했다.

하워드는 정치인과 성직자 등에게 강간과 폭행을 당하며 자라 15살 때 캐나다를 탈출했다. 그리고 바다 위를 전전하며 살았는데 그 때 헤밍웨이를 만났다고 주장한다. 이 정신병자는 그러나 인간이 문명과 과학이라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을 훼손하고 동물을 희생시키는 것만큼은 잘못됐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그는 바다코끼리 수컷 성기의 뼈를 집에 진열해 두고 있다. 포유류에서 인간만 성기에 뼈가 없다는 그의 말 속에는 인류가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인간만이 지구상에서 유일한 별종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는 거미가 월러스의 다리를 무는 바람에 절단했다고 궁색한 변명을 하는데 그건 인간의 삶이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은유이다.

그에게 바다코끼리는 생명의 은인이자 은혜로운 자연이다. 그런데 저 살겠다고 그 성스러운 존재자를 잡아먹었다. 그런 잘못을 알기에 그는 터스크를 부활시켜 자신에게 단죄를 하게끔 만드는 게 삶의 목표이자 죽고자 하는 이유인 것이다. 이는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에서 비롯된 자가당착이 조화로운 자연을 파괴한다는 명석판명(데카르트)이다.

화면 속에는 다양한 알레고리들이 포진되어 있는데 월러스가 손에 달고 다니는 일회용 컵이 대표적이다. 인류는 제 편하고자 세상을 온통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어 놓았다. 바다에서는 심심찮게 ‘뉴락’(플라스틱 돌)이 발견되는가 하면 인류가 버린 쓰레기에 옥죄어지고 있는 바다 생물 역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악당의 입에서 “착한 인간은 TV로 얼이 빠져 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 말의 행간에는 ‘나머지의 악한 인간은 자연 파괴에 혈안이 되어 있다’라는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잠재되어 있다. 그래서 세계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가 일군 밀레투스학파는 자연철학파로 불린다. 유력한 철학자와 종교일수록 자연친화적인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프로타고라스가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건방진 명제를 던진 이래 2400여 년 동안 이기적인 인본주의가 인간의 인식론을 지배하는 가운데 자연법은 잔인무도하게 도륙 당해 왔다. 이 영화는 그 처절한 절규를 ‘웃픈’ 컬트식 블랙코미디로 비교적 심도 있게 그려 낸다. 앨리슨이 바다코끼리가 된 월러스에게 “사랑한다.”라고 외치는 마지막 장면은 인류에 대한 마지막 경고장이자 희미한 희망인 듯하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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