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 600년 서울 속 청계천을 걷다 [최철호 칼럼]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l승인2021.06.22l수정2021.06.22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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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도성의 중심을 관통하여 흐르는 청계천(淸溪川)

[미디어파인 칼럼=최철호의 한양도성 옛길] 서울은 산이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산과 산 사이 성곽이 이어진 성곽의 도시다. 600여 년 전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고산자 김정호의 ‘수선전도(首善全圖)’를 보면 한양도성은 산으로 이어져 있다. 한양의 진산이 삼각산이다. 향로봉에서 비봉 그리고 보현봉까지 병풍을 둘러친 듯 이어져 있다. 한양도성에서 북쪽의 산이 주산인 백악산이다. 백악산에서 보이는 높고 넓은 산이 삼각산이다. 삼각산은 마치 세 개의 뿔처럼 생겼는데 백운대,만경대,인수봉이 서울의 랜드마크다. 인수봉 뒤로 도봉산 오봉이 수락산과 사패산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서울은 산의 도시다.

서울은 산이요, 산의 도시다

산속의 물은 어디로 흘러갈까? 산이 깊을수록 계곡도 깊다. 한양도성을 잇는 백악산과 인왕산은 바위산이다. 화강암 바위가 비를 머금고, 빗물을 내뿜었을 때 물줄기는 계곡물이 되어 흐른다. 도성 밖 백악산의 물은 백사실계곡으로 흘러 세검정천에 모였다. 또 다른 물은 홍제천으로 흘러 한강에 모였다. 도성 밖 인왕산과 안산에서 흘러 내려온 물은 무악재를 정점으로 독립문 앞 영천시장으로 흘러 만초천(蔓草川)이 되었다. 만초천의 물은 서소문 순교성지에서 서울역 뒤 청파동을 지나 원효대교 아래에 모여 용산강이 되니 곧 한강이다. 서울은 산으로 이어진 산의 도시이자, 물길이 만나는 물의 도시다.

한양도성 안 인왕산과 백악산의 물은 과연 어디로 흘러갔을까? 인왕산 정상에서 비가 오는 날 치마바위는 비를 머금고, 나무와 나무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려 수성동계곡에 모였다. 수성동계곡의 너럭바위와 너럭바위는 돌다리 두 개가 겸재 정선의 ‘수성동’ 그림 속에 뚜렷이 그려져 있다. 상상의 동물인 기린의 모습을 다리에 이름 붙였다. 도성 안 첫 돌다리가 인왕산 수성동계곡의 기린교(麒麟橋)다. 태평성대를 나타내는 기린은 수컷 기(麒)자에 암컷 린(麟)자로 통돌 두 개가 나란히 원앙새 부부처럼 함께 놓여있다. 인왕산 옥류동천은 청계천의 발원지로 인왕산 세 봉우리의 모든 물이 청계천을 향했다. 600여 년 전 한양에는 다리 또한 많았다. 서울은 산과 물의 도시답게 다리의 도시다.

서울은 산과 물이 많은 다리의 도시다

▲ 600년 전 한양도성 안에서 가장 큰 다리_광통교(廣通橋)

옛 서울 지도인 ‘수선총도(首善總圖)’를 보면 물길과 옛길이 만나는 곳에 다리가 그려져 있다. 수성동 계곡물은 경복궁 서쪽에 자수교에서 종침교를 지나 청계천의 가장 큰 광통교 앞까지 흐른다. 한양도성 안에 산이 있고, 천이 있고, 강이 있었다. 계곡물을 보면 깨끗하고 청량함을 느끼지만 또다른 교훈이 있다. 물은 낮은 곳을 찾아 흐르는 겸손, 막히면 돌아갈 줄 아는 지혜, 더러운 물도 받아주는 포용력과 어떤 그릇에도 담기는 융통성이 숨어 있다. 물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신기하고 오묘하다. 수성동 계곡물은 너럭바위도 서서히 뚫고 깨부수며 물소리만 고요히 내고 아래로 흘러간다. 청계천으로 흘러 중랑천에서 모인 후 다시 한강으로 간다. 한강은 노들섬을 지나 양화진에서 망망대해 서해로 끊임없이 흘러 또 다른 강물을 만난다.

인왕산과 백악산 그리고 낙타산과 목멱산에서 흘러 내려온 물은 청계천에 모였다. ‘수선총도’에는 대략 190여 개의 다리가 그려져 있다. 서울은 산의 도시,성곽의 도시 그리고 물의 도시이자 다리의 도시다. 한양도성 안 다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경복궁 광화문을 지나 육조거리를 나서면 운종가인 종로가 나온다. 그 옛날에는 왕의 행차와 시전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야 했다. 1760년 도성 안 하수도 역할을 한 개천을 준설하는 관청도 있었다. 광통교에서부터 도성을 동서로 관통해 오간수문 지나 중랑천까지 만나는 10.84km에는 24개의 다리를 관리하고 도성 안과 밖 나무와 숲을 관장했다. 개천은 일제강점기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뀌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도성 안 물은 청계천으로 흐른다

▲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貞陵) 신장석으로 만든 광통교 교각

청계천 본류에는 모전교, 광통교, 장통교, 수표교, 하랑교, 효경교, 마전교, 오간수문, 영도교등 9개의 큰 다리가 있었다. 도성 안 개천의 다리는 단순히 물을 건너는 수단만이 아니다. 그 옛날 다리는 만남의 장소요, 모임의 장소가 다리다. 또한 오고가는 사람들의 쉼터가 청계천 다리다. 아마도 다리밑에서 땀을 씻고, 요기를 했을 것이다. 4계절 속 5대 명절에는 다리밟기, 연날리기, 연등놀이에 돌싸움과 택견까지 다리에서 이루어졌다. 청계천을 걷다 보면 광통교에서 걸음이 저절로 멈춘다.

다리의 교각 크기와 광통교 신장석을 보면 600여 년 전 이야기가 전해진다. 태종 이방원과 정적 관계인 신덕왕후 강씨 능인 정릉의 돌들이 광통교의 교각이 되었다. 신장석의 일부는 거꾸로 놓여있지만 세련된 당초문양과 구름문양은 600여 년 전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한 눈에 보여준다. 청계천을 복개하면서 광통교는 일부가 남아 청계천 복원시 새롭게 다리를 축조했다. 광통교는 청계천에서 지금도 다리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청계천에 수표교는 보이지 않는다.

수표교는 수표동에 없다

수표교(水標橋)는 어디에 있을까? 광통교와 함께 한양도성 안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가 수표교다. 수표교 건너 왕의 영정을 모셔 놓았던 영희전(永禧殿)까지 왕의 행차가 있었던 중요한 다리다. 600여 년 전 수표교는 청계천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수표까지 세워 홍수에 임금께 보고하는 중요한 다리였다. 1420년 축조된 수표교는 백성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다리다. 수표교는 27.5m 길이, 8.3m 폭, 45개 교각이 있다. 개천은 건천이나 비가 조금만 와도 인왕산과 백악산 그리고 목멱산의 물이 개천으로 모여 범람할 정도였다. 유량의 변화도 심하고 유속도 강해 교각을 마름모꼴로 만들어 물의 저항을 최소화한 당대 최고의 다리다. 과학기술이 한곳에 모였던 수표교는 이제 청계천에 없다. 수표교가 있어 수표동이었는데, 수표동에는 이제 수표교가 없다.

▲ 경진지평_1760년(영조36) 청계천 준설 후 광통교에 새겨 수위를 측정

수표교는 장충동에 있다. 수표교는 청계천 복개공사로 세검정천이 있는 신영동에 이전되었다가 다시 장충단으로 왔다. 목멱산 아래 남소문동천이 흐르는 벽천(碧川)에 수표교가 있다. 장충단비와 신라호텔 정문 사이에 수표교가 숨어 있어 아무도 교각을 살펴보지 않는다. 그곳에 큰 다리가 있는 줄도 있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가슴 아픈 현실이다. 수표교를 바라보면 긴 한숨만 나온다. 수표교가 청계천를 떠나 장충단 남소문동천 개울에 쓸쓸하게 서 있다.

서울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비가 내리면 도성 안 빗물은 청계천으로 모인다. 청계천 광통교의 물이 오간수문을 지나듯, 남소문동천 수표교 물은 이간수문을 지나 청계천으로 모인다. 물은 겉모습이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 신의가 있다. 청계천 물의 양을 측정하는 수표교도 제자리에 돌아가 광통교처럼 역사 속에 있기를 기대해 본다. 보신각의 종소리가 수표교에 울려 퍼지는 그날 그 장면을 상상해 본다. 장충단을 지키는 수표교보다 청계천 물의 수위를 측정하는 수표교가 어울리는 그날을 기다려 본다. 청계천 물은 오늘도 흐른다.

▲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저서)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소장]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지리산관광아카데미 지도교수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외래교수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최철호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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