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라도 군 성폭력은 은폐가 최선? [김주혁 칼럼]

장군의 딸, 1999년, 미국, 사이먼 웨스트 감독, 존 트라볼타 주연, 116분 미디어파인 김주혁 주필l승인2021.06.30l수정2021.06.3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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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장군의 딸> 포스터

[미디어파인 칼럼=김주혁 주필의 가족남녀M&B] 이 영화에서 장군의 딸이 성폭행을 당했으나 아버지가 은폐하려다 결국 딸이 죽으면서 과거의 문제들이 밝혀진다. 성추행 당한 공군 부사관이 가해자 등 상관의 은폐 강요를 비롯한 2차 가해에 시달리다 자살한 최근의 국내 사건과 닮은 꼴이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차기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유력한 부통령 후보로 주목받는 조 캠벨(제임스 크롬웰 분) 중장. 전역을 며칠 앞두고 휘하에 있던 그의 딸 엘리자베스 캠벨(레슬리 스테판슨 분) 대위가 부대 안에서 벌거벗긴 채 살해당한다. 특별범죄수사단 요원 브레너(존 트라볼타 분) 준위 등이 파견돼 수사에 나선다. 심리전 장교인 엘리자베스는 겉으로는 우수한 장교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아버지의 측근 장교 대부분과 변태적인 성행위를 하는 등 사생활이 문란했다.

사건의 열쇠는 그녀의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학년 때 야간 군사 훈련을 하던 중 동기들에게 사지를 말뚝에 묶인 채 밤새도록 집단 성폭행을 당한다. 피해자의 아버지인 캠벨이 불려와서 더 상급자인 군 관계자와 면담한다.

“나는 내 딸을 위해 정의가 실현되길 원합니다.” “하지만 이미 사건은 벌어졌고 우리는 절대 범인들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강간은 보고하지 않고 죄를 묻지 않는 게 낫다. 그렇지 않으면 웨스트포인트의 기반을 모조리 흔들어 놓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자네 딸을 설득시키는 것이다. 그녀가 모든 걸 잊어만 준다면 그녀와 학교, 군대와 양성평등에 대한 요구가 모두 지켜질 수 있다.”

설득 당한 아버지는 병상에 누운 딸을 찾아가 말한다. “이 일에 대해 다시는 생각하려고 하지 말아라. 끔찍한 일이지만 생각해봤자 아무 도움도 안 된다. 이것은 없었던 일이다.” 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믿고 따랐던 아버지로부터 철저하게 배신당했기 때문이다. ‘없었던 일’이 아니고 ‘있었던 일’이라는 말을 아버지로부터 듣고 싶었다.

▲ 캠벨 장군 부녀. 영화 <장군의 딸> 스틸 이미지.

이후 딸은 아버지를 상대로 심리전을 편다. 마구잡이 섹스 등 아버지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동으로 압박한다. 그러나 오히려 전역이나 치료를 요구당한다. 마침내 아버지의 전역을 앞두고 최후 담판을 위해 육사 시절 성폭행 장면을 재연하며 아버지를 부른다. 하지만 장군은 외면하고, 딸은 절규하다 다른 장교에 의해 살해 당한다.

수사관은 장군의 성폭행 은닉 사실을 밝혀내고, 딸의 웨스트포인트 강간에 대해 말해 달라고 한다. 장군은 “그건 웨스트포인트의 명예를 위해 비밀에 부쳐졌다. 또 군대를 위해 엘리자베스에게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난 해야 할 일을 했다. 모든 사람들을 위한 최선의 일을 다르게 처리할 수 없었고 그들을 찾을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답한다. 그러나 수사관은 성폭행범 5명의 명단을 손쉽게 입수한다. “강간보다 더 끔찍한 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배신입니다. 7년 전 당신이 침묵하고 은폐하자고 한 날, 당신은 그녀를 죽인 겁니다. 딸의 믿음을 출세와 맞바꾸신 거죠.” 캠벨 장군은 강간 은닉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공직을 사퇴한다. 성폭행범 5명도 처벌받는다. 이런 내용이 자막에 뜨면서 영화가 마무리되기 때문에 실화로 착각할 수 있으나 픽션이다.

장군의 부관 파울러 대령은 “군대에서 일하는 방식은 3가지가 있다. 옳은 방식과 틀린 방식, 군대 방식이다. 누군가를 체포하기 전에 내게 먼저 알려달라.”고 수사관에게 ‘군대 방식’을 당부한다. 성폭력에 관한 한 이 ‘군대 방식’이 바로 군의 안보 특수성과 폐쇄성을 악용한 잘못된 업무처리 방식이다. 군대 방식이 아니라 옳은 방식으로 처리해야 한다. 은폐는 피해자의 침묵과 성폭력 재발이란 악순환을 낳는다. 성범죄 은폐는 군의 명예를 위하는 길이 아니라 내부 균열을 통해 군을 파멸시키는 이적행위다.

▲ 파울러 대령(왼쪽)과 브레너 요원. 영화 <장군의 딸> 스틸 이미지.

공군 부사관이 성폭력과 2차 피해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계기로 군 성폭력 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2013년과 17년 성폭력을 당한 육군과 해군의 여군 대위가 자살한 데 이어 또 다시 4년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번에는 군 수사기관의 문제점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군사법원법 개정이 가속화하고 있다. 국방부는 국가인권위의 개선 권고를 토대로 전시 관련 규정을 추가해 지난해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고등군법회의는 서울고등법원으로 넘기고, 보통군법회의는 유지하되 군 판사와 군 검찰의 독립성을 강화해 일선 지휘관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19년 제출된 국방부 개정안을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의결하려다 평시 외에도 전시법을 함께 넣자는 취지로 21대 국회로 처리를 미루는 바람에 이번에 화를 자초했다. 이 사건이 터지자 여당은 군범죄근절TF를 구성, 나름대로 진일보한 국방부 개정안에서 더 나가기로 했다. 결국 전시가 아닌 평시에, 성범죄 등의 수사와 재판을 군과 민간 중 어디에 맡길지가 관건이다. 미국은 세계 곳곳에 미군이 주둔하기에 군사법원을 운영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또다른 전쟁’은 미군 성폭력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반면 프랑스 대만 등은 군사법원을 운영하지 않는다. 독일 등은 혼합 운영한다. 권은희 의원안은 군사법원을 평시에는 모두 폐지하고 전시에만 운영하는 내용이다. 박주민 의원안은 피해자가 민간인이거나 사망한 경우 또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그에 준하는 사건 등의 성범죄에 한해 민간 기관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두 개정안 사이에 군 검찰과 1심 군사법원이 군사 관련 범죄만 다루거나, 성범죄를 제외한 범죄만 다루도록 하는 안이 있을 수 있다. 17년 이후 군형사사건 처리현황에 따르면 군형사사건 중 군사관련범죄 비율은 10.7~14.2% 수준밖에 안 된다.

성범죄는 피해자들이 마음 놓고 신고할 수 있어야 근절된다. 그러려면 2차 가해 예방 및 처벌 등 피해자 보호와 함께,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거쳐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리라는 기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군 성범죄에 관한 한 그런 기대는 바닥 수준이다. 예하 부대가 아닌 공군본부의 군사경찰단장이 이 중사 사망 보고서에서 성추행 피해자라는 사실을 삭제하라고 실무자에게 지시했다는 의혹을 사는 현실이 말해준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의 군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헌병대, 군 검찰, 군 재판, 군 징계위 등에 대한 불신도는 각각 92%, 85%, 81%, 92%나 된다. 이렇게 군 내부 성범죄 수사와 재판이 철저히 불신당하는 상황에서 모양새만 갖춰서는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최소한 군사 관련 범죄가 아닌 성범죄나 기타 범죄만이라도 민간 수사와 재판으로 넘겨야 한다. 군대 방식이 아니라 옳은 방식으로 처리해서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성폭력 사건 발생 건수가 아니라 사건 처리를 규정대로 잘 했는지 여부를 지휘관의 인사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개선하는 것도 은폐 방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

▲ 영화 <장군의 딸> 스틸 이미지.

성폭력과 관련한 군의 총체적 난국은 군의 과도한 위계문화, 집단문화, 폐쇄성, 남성중심주의, 여성의 성적 대상화, 피해자 책임론, 방관주의 등 잘못된 조직문화 때문이다. 제도 개선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관행이자 조직문화를 혁신하는 일이다.

어느 조직에서나 조직원들이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생명줄과 안전망이 갖춰져 작동해야 한다. 군에서는 국방 헬프콜이 피해자가 붙잡을 수 있는 생명줄이다. 피해를 당해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게 보호하고 받쳐주는 안전망이 바로 조직문화다. 그러나 모두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국방 헬프콜의 성폭력 신고 건수는 일개 민간기구인 군인권센터 성폭력상담소보다도 적다. 군의 조직문화는 은폐 압박과 비난 등 2차 가해로 오히려 피해자를 사지로 내모는 역기능을 하는 실정이다. 군 성폭력을 근절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그에 걸맞은 선택과 노력이 필요하다.

▲ 김주혁 미디어파인 주필

[김주혁 미디어파인 주필]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전 서울신문 선임기자, 국장

미디어파인 김주혁 주필  myhappyhome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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