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픽사베이

[미디어파인 칼럼=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당신 부부가 외도라는 홍역(紅疫)을 치른 후 이전 글에서 소개한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이르렀다면, 당신들은 이제 충분한 면역력을 갖추고 있을 테니 굳이 여기에서 더 배울 것이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당신들이 시도한 것들 중 도움이 되는 것은 계속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하지 말라’는 말 외에는 더 이상 당부할 것이 없다. 그래서 이 마지막 시리즈는 짧게 끝낼 것이다. 그조차도 매일 거울을 보며 자신을 가다듬는 정도로만 여기면 된다.

그러나 이는 오랜 노력의 고통을 통하여 '그럴 만한 조건'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는 축복이다. 자신이나 상대 중 어느 한 편이 충분히 호응하지 않으면 사실상 어려울 수도 있다. 이들은 아직은 더 노력해야 하는 경우도 있겠고, 아예 다른 목표를 세우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아직 회복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라면, ‘우리도 또는 나도 이렇게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으로 힘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 또 외도라는 사건을 치르지 않은 사람에게는, 외도라는 함정을 피해갈 수 있는 나침반으로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본 시리즈의 초반에 외도로부터의 회복 과정을 퀴블러-로스(Kübler-Ross)의 임종(臨終) 5단계에 비교하여 소개한 적이 있다. 이제 당신들은 그 마지막 단계인 ‘수용(受容)’에 이르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죽음을 수용한다는 것은 죽음을 피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말이다.

외도로부터의 회복도 마찬가지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는 점, 그리고 각자에게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사람이나 배우자의 배신을 용서한 사람 모두, 그런 사실을 (할 수만 있다면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음을 인정한다. 오히려 이를 기억함으로써 또다시 불행해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또한 외도 사건을 잘 극복하였다고 해서 다른 문제들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잘못을 반성하는 것으로 더 이상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빨랫감을 빨래통에 넣지 않던 사람은 여전히 그럴 것이고, 화장실 전깃불 끄기를 잊는 사람 역시 그럴 것이다. 잔소리도 계속 하고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도 계속할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나아지는 것일까?​

▲ 사진 출처=픽사베이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상대를 대하는 자신의 감정과 태도가 달라진다. 자신의 불만 사항은 충분히 이야기하되, 상대를 비난하지 않으며 자신의 불행으로 여기지도 않게 된다. 이런 변화는 일상적인 대화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아, 미안. 내가 또 잘못했네!”라는 말을 진심으로 한다. 그런 상대에 대해서 “당신 때문에 내가 미쳐! 도대체 내 말을 뭘로 알아듣는 거야!”처럼 말하지 않는다. 누구나 결코 완벽해질 수 없음을 받아들이게 되고, 상대의 문제를 고치려는 시도보다 평안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때로는 훨씬 유익하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좋지만, 과연 그것이 (외도까지 벌어진) 현실에서 가능한 것인가?” 되물을 사람들이 있을 줄 안다. 당연한 의문이다. 그러나 누구의 잘못 때문이라는 '문제 지향적' 관점에서 벗어나, 바라는 목표를 위한 '해결 지향적' 관점을 갖게 되면 가능하다. 외도에서 회복된 1/4의 사람들은 실제로 이렇게 한다. 이들이 바라는 목표는 ‘진정한 부부 관계의 수립’이고, 그 계기는 ‘외도에 대한 반성과 용서’로 만들어 진다. 그 실천 방법은 ‘새로 하나가 되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외도는 당신들이 결혼하여 함께 살면 당연히 ‘하나’가 되는 줄 알았던 것이 환상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둘’이 된 당신들은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이전 글에서, 외도 배우자에게는 자신을 ‘외도를 저지른 자신’과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자신’으로, 그리고 상처 배우자에게는 자신을 ‘상처받아 분노하는 자신’과 ‘스스로를 치유하는 자신’으로 분리하라고 했다.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은 외도 배우자의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부분’과 상처 배우자의 ‘스스로를 치유하는 부분’이다.

외도 배우자의 ‘외도를 저지른 부분’과 상처 배우자의 ‘상처받아 분노하는 부분’은 각자가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몫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애써 벗어난 ‘함정’에 또다시 빠지지 않으려면, 자신과 상대의 취약점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이런 취약점은 (개인적인 반성이나 용서는 물론이고, 심지어 최선의 상담이나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간단히 사라지거나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이길 수 없는 상대라면 현명하게 피하는 게 상책이다. 외도 배우자는 상처 배우자보다 더 스스로를 경계해야 하고, 상처 배우자는 가벼운 농담 속에 ‘분노의 조각’이 섞여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런 스스로의 각성과 노력을 잠시도 내려놓지 말아야만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어렵게 얻어낸) 회복의 평안을 지킬 수 있다.

​당신들은 이미 수많은 사과와 용서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진정성과 효과에 대해서는 이제껏 서로 반신반의하며 지내왔을 수 있다. 외도 배우자의 진정한 사과는 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완성된다. 이제 사과는 상대의 양해를 얻으려는 수단이 아니라, 자발적인 참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상처 배우자의 용서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의 용서가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였다면, 이 단계에서의 용서는 ‘당신의 허물은 곧 나의 것임’을 받아들이겠다는 스스로의 결단이다. 이렇게 불완전한 존재인 두 사람이 미래의 하나됨을 위하여 함께 노력하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 진정한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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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회복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과거처럼 ‘무조건적인 하나’로 생각하던 데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무조건적’이라는 말은 ‘유아적’으로 바꾸어도 된다. 유아는 그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호자에게 의존한다. 심지어 자신의 감정까지도 보호자가 알아서 챙겨주어야 한다. 그러나 성인은 유아와 다르다. 자신과 상대를 구분하고, 상황에 맞게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며,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상대에게 분명히 전달할 수 있다. 즉,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것과 상대와 함께 해결해야 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진정한 성인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외도 후 회복의 상황에 적용해보자. 상처 배우자는 자신의 분노를 (외도 배우자가 잘 달래주면 더 좋지만) 스스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에게 과중한 책임을 지우려는 복수심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을 경험한다. 외도 배우자는 (상처 배우자의 용서와 무관하게)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바로잡으려 하기 때문에, 벌(罰)을 받는 죄인이 더 이상 아니다.

이들은 그런 노력이 (상대에게 맞추기 위한 억지 노력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점, 그리고 상대 역시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도대체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나?’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까지 지나치게 의존적이었던 사람은 자립심을 키워가고, 지나치게 독립적이었던 사람은 유대감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한다. 독립과 유대는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함께 행복해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쌍방의 노력은 일상 생활의 다음과 같은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함께 있는 시간에는 서로에게 집중하여 편하고 즐겁게 느껴지도록 노력한다.
-협력할 일에는 성의를 다하되 잘 되지 않는 점들에 대해서는 개선 방법을 의논한다.
-자신이 할 일에 집중하는 한편 운동이나 명상 등으로 건강과 평정심의 유지에 힘쓴다.
-때때로 떠오르는 불쾌한 생각과 감정으로 힘들어도 상대를 원망하는 것으로 풀지 않는다.
-상대가 노력하지만 부족한 점에 대해서 몰아세우거나 포기하는 대신 도와줄 방법을 찾는다.
-솔직한 대화에 힘쓰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면 전문가에게 도움 받기를 적극적으로 찾는다.

이런 변화는 당신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은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지속되고 더더욱 확장될 것이다. 이런 당신들 두 사람은 외도의 충격에서 벗어난 정도가 아니라, 이전보다 훨씬 더 좋은 관계를 이미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Survivor로 다시 하나가 된 당신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와 존경을 보낸다!

다음 글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실천하면 좋을 사항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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