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입시 명문고 웰튼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아이비리그로 진학하기 위해 마치 공부가 인생의 전부인 양 책과 씨름하며 살아간다. 교장은 졸업생의 75% 이상이 명문대에 진학했음을 자랑하며 전통, 명예, 규율, 우수라는 학교의 4대 교훈을 지킬 것을 외친다. 그의 좌우명은 원칙에 입각해 헌신적으로 교육한다는 것.

키팅(로빈 윌리엄스)은 기존 영어 선생의 퇴직으로 새로 부임한 이곳 출신 영어 교사이다. 그는 자신을 선생이 아닌 ‘오, 캡틴 나의 캡틴’으로 불러 달라며 첫 수업부터 파격적인 교수법을 펼친다. 그는 에번스 박사가 쓴 도식적인 교과서의 머리말을 찢어 버리라고 한 뒤 ‘카르페 디엠’이라는 라틴어를 강조한다.

즉 현재를 즐기며 살라는 것. 한 반이 된 닐(로버트 숀 레오나드), 토드(에단 호크), 녹스(조쉬 찰스), 찰리, 캐머런 등은 키팅이 재학 시절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시작 모임을 만들어 교사들에게 반발하며 자신들만의 자유로운 세계를 추구했다는 것을 알고는 키팅이 그랬듯 밤에 몰래 나가 인디언 동굴에 모여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키팅의 영향으로 공부가 인생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친구들은 각자의 일탈을 시도한다. 녹스는 선배인 쳇이 사귀는 다른 학교 여학생 크리스 때문에 상사병을 앓고, 닐은 의사가 되라는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아버지에게 반발해 평소 꿈꾸었던 연극배우가 되기 위해 극단에 입단한다.

타고난 실력을 인정받은 닐은 ‘한여름 밤의 꿈’의 주인공에 캐스팅돼 열심히 연습한 끝에 드디어 공연을 앞두고 주변 사람들은 물론 아버지까지 초대한다. 녹스는 쳇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구애한 끝에 크리스와 함께 연극을 관람한다. 연극이 끝난 후 모든 사람들이 닐에게 열광하지만 그의 아버지만큼은 그를 강제로 집에 끌고 온다. 그리고 한밤에 닐은 제 머리에 권총을 쏘는데.

개봉 당시 관객과 평단 모두의 극찬을 받은 걸작 ‘죽은 시인의 사회’(피터 위어 감독, 1989)이다. 그런데 지금 봐도 당시에 못지않은 감동을 줄 것으로 보인다. 세상은 많이 변했고 그만큼 사람들의 의식 역시 매우 달라졌지만 자본주의의 독과점으로 인해 출세주의, 금전만능주의는 더욱더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스로 계급주의의 틀 안에 자신을 가두며 과거의 악습을 고집하는 기성세대와 함께 차별화의 공범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봐도 키팅은 진정한 자유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이다. 자기애의 아리스토텔레스 혹은 운명애의 니체였다. 게다가 그는 무조건적이거나 무분별한 반항은 지양하라고 가르쳤다. 그게 방종의 위험에서 벗어난 진정한 자유이므로.

그렇기 때문에 특히 키팅의 대사 자체가 어록이자 철학이다. “스스로 사고하는 법을, 언어를 음미하는 법을 배워라. 언어와 사상이 세상을 움직인다. 미와 낭만과 사랑은 삶의 이유이다. 너의 인생은 계속되는 극 속의 시가 된다.”라는 대사는 왜 언어를, 시를 배워야 하는지 적확하게 짚어 낸 명제들이다.

우연히 키팅의 교수법을 보고 못마땅하게 여긴 한 동료 교수는 “현실을 직시하라.”라고 충고하지만 키팅은 개의치 않고 “난 자유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응수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언어가 발전한 이유는 여자를 유혹하려다 보니.”라고 해석해 준 뒤 교탁 위에 올라선다. 그러고 나선 다른 학생들에게도 올라갈 것을 청한다.

그 이유는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보기 위해서.”이다. “독서할 땐 작가 생각뿐만 아니라 내 생각도 중요하다.”, “사고의 전환으로 새것을 개척하라.”, “인생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기 위해 살아야 한다.”, “소신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각자의 걸음걸이를 찾아서, 각자의 방향을 찾아 걸어라. 억지로 꾸밀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당당히 세상에 맞서라.” 등이다.

친구들이 검열을 피해 ‘죽시사’ 이름으로 학교 신문에 여학생을 회원으로 받는다는 광고를 싣자 이를 보고 흥분한 교장이 학생들을 모아 놓고 범인을 색출하려 한다. 이에 찰리는 대놓고 교장을 희롱하는 도발을 한다. 그러자 교장은 찰리에게 체벌을 가하며 ‘죽시사’ 회원 명단을 내놓으라고 퇴학 면제를 조건으로 압박한다.

키팅이 영어와는 상관없는 행진을 학생들에게 시킨 이유는 획일화라는 전통과 규율만 우선시할 뿐 개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타성에 젖은 교육법과 사회적 규약에 대한 반항에 있다. 그건 개개인의 인격과 자유를 향한 개혁이었다. 그러나 이런 용기 있는 도전은 기득권 세력에겐 반역일 따름이었다. 그래서 교장은 유족의 요청에 따라 닐의 자살 배경을 파헤치겠다고 선언한다.

결국 교장은 퇴학을 빌미로 모든 귀책사유를 키팅에게 돌리는 서류에 학생들로 하여금 서명하게 만들어 그를 몰아낸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가 짐을 싸서 등을 돌리는 마지막 시퀀스에서 관객들의 눈물과 콧물을 죄다 쥐어짠다. 토드는 키팅의 등을 향해 억지로 서명했다고 외친 후 책상 위에 올라간다.

그러자 일부 ‘변절자’들을 제외한 다수의 용기 있는 학생들이 교장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례로 자신의 책상 위에 당당하게 올라선다. 이는 기존의 권위와 관습을 짓밟는 자유를 향한 도약이자 도전이다. 키팅이 언명했던 “사고하는 법을 배워라. 너희들은 부모의 부속품이 아니다.”와 “자신의 의지와 어긋나는 삶은 의미가 없다.”라는 가르침과 합일하는 클라이맥스이다.

자유주의 철학자는 장 자크 루소나 존 로크부터 힐렐 스타이너, 피터 발렌타인, 필립 판 파레이스 등 좌파 자유지상주의자까지 이루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굳이 철학자나 사상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감옥만 봐도 인간의 본성 중에 자유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을지 짐작이 어렵지 않다.

그래서 ‘죽시사’ 회원들은 예나 지금이나 헨리 소로와 월트 휘트먼을 금과옥조로 여긴다. 소로는 자연과 자유를 희구한 네오오리엔털리즘의 선두 주자이고, 휘트먼은 과거를 모방, 답습하는 전통을 거부한 채 혁신적인 작품들을 통해 민주주의 정신을 고취한 혁명적 시인이다. 그는 “시인의 자아는 시, 우주, 독자와 하나.”라는 극단적 낭만주의를 설파했다. 그 둘은 바로 키팅의 모델인 것이다.

오늘을 자신의 취향대로 향유하는 카르페 디엠에서 비롯되는 환희는 대부분 관습과 규준에 항거한다. 그게 금기라면 이 세상의 모든 변화와 변혁은 불법이다. 영화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실존과 자아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꼭 관람해야 할 ‘필독서’일 만큼 걸작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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