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간도 2’, 돌고 도는 흥망성쇠의 인생사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21.07.16l수정2021.07.1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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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홍콩 누아르의 마지막 정수라는 평가를 받는 ‘무간도’ 트릴로지의 시간상의 배열만 놓고 보면 ‘무간도 2-혼돈의 시대’(리우웨이창, 마아지우후이 감독, 2003)가 제일 먼저이다. 1991년. 삼합회 중간 보스 한침(쩡즈웨이)은 경찰 황 국장(황치우셩)과 친구 사이이다. 침은 메리(류자링)와 결혼했다.

메리는 사실 황 국장과도 묘한 관계이다. 황 국장의 사주를 받은 그녀는 가족의 이민으로 홀로 남은 청년 건명(천관시)에게 삼합회 보스 예곤을 암살하도록 지시한다. 침은 건명을 경찰 내부에 스파이로 심기 위해 경찰대학에 입학시킨다. 곤이 죽자 삼합회 중간 보스들은 한때 흔들리지만 이내 고인의 둘째 아들인 영효(우전위)의 회장 승계를 인정한다.

그중 침은 각별한 충성을 맹세한다. 영효의 이복동생 영인(위원러)은 자수성가해 경찰대학에 입학, 수석을 내달리지만 집안 내력이 드러나자 퇴학당한다. 그러자 황 국장이 그를 은밀히 불러 경찰 신분을 줄 테니 영효에게 접근해 조직에 들어가 스파이 노릇을 하라고 제안하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영인은 받아들인다.

그렇게 감옥에 간 영인은 경찰학교 재학 중 잡아넣었던 삼합회 조무래기 아강을 만나서 우정을 쌓는다. 출소 이후 영인은 맹활약을 펼친 끝에 드디어 영효의 눈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는 마피아 세계에서 그나마 절반이라도 피가 섞인 영인에게 영효가 신뢰심을 품게 된 것.

1995년. 영효는 조직을 잘 운영해 사업에서 승승장구하고, 영인의 조직 내 입지도 탄탄해진다. 건명 또한 촉망 받는 경찰로 성장해 간다. 딸의 생일에 중간 보스들을 초대한 영효는 2년 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니 자신은 사업을 정리하고 가족들과 외국으로 떠나겠다며 지분을 나눠 주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침을 따로 불러 앞으로는 코카인 사업이 제일 유망한데 그걸 맡으면 일인자가 될 것이라며 자신이 태국 쪽에 손써 놨으니 출장을 다녀오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그건 영효의 계략. 침이 홍콩을 비운 사이 그는 4인방을 제거한다. 태국에 도착한 침은 메리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뒤 잠적한다.

황 국장의 동기이지만 지금은 승진한 육 국장은 황 국장의 업무에 사사건건 참견을 한다. 그러나 육 국장은 의문의 승용차 폭발 사건으로 죽는다. 영효가 범인이라 확신한 황 국장은 영인의 도움을 받아 영효의 마약 거래 현장을 덮쳐 검거한다. 하지만 영효의 가방에 든 건 마약이 아니라 비디오테이프.

그 속에는 황 국장이 메리에게 곤의 암살을 지시했다는 증거가 담겨 있었다. 1997년. 황 국장에 대한 살인 청부 청문회가 열리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다. 영효는 메리를 살해한 뒤 가족들을 하와이로 피신시킨다. 침이 태국 시골에서 재혼해 아이까지 낳았다는 정보를 입수한 그는 킬러를 보내는데.

‘경찰에 침투한 마피아, 마피아 조직에 잠입한 경찰’이란 ‘무간도’(2002)의 소재는 이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디파티드’(2006)와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2012)에 영향을 끼쳤을 만큼 관객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리우 감독은 한때의 전성기를 뒤로하고 침체 중이던 홍콩 누아르를 부활시키는 위업을 달성했다.

전편이 정체성의 혼란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 작품은 프리퀄인 만큼 그 주제를 유지하면서도 시간을 전면에 부각시켰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 연상되는데 중간에 ‘시간’이라는 자막을 삽입하지만 하이데거의 시간과는 개념이 많이 다르다. 여기서는 1990년대 홍콩의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감초처럼 사용했던 ‘홍콩 반환’이라는 고뇌를 말한다.

시작하자마자 건명이 고급 시계에 집착하는 그림이 자주 등장한다. 인간은 자연의 힘 앞에 너무나도 나약한 존재인데 시간이라는 거대한 힘에 대해서는 아예 무기력하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강점은 있지만 결국 모두 나약하다. 메리는 “침은 내게 잘했지만 자신에게는 못했다. 지난 4년간 예 회장 밑에서 하루도 편히 못 잤다.”라고 건명에게 말한다.

메리는 나름대로 행복해 보였지만 결국 침을 보호하기 위해 황 국장의 끄나풀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고뇌가 있었다. 그녀가 오디오에 집착하는 건 자신이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건명과 영인은 전편의 주인공에서 이번에는 조연으로 물러났지만 정체성의 고뇌만큼은 더욱 강렬하게 표출해 낸다. 아직 어리기에 선택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건명은 미래가 보장된 경찰로, 영인은 영효의 뒤를 이은 삼합회의 회장으로 탄탄대로를 달릴 수도 있다. 각각 침과 황 국장의 지배를 받고 있긴 하지만 찰나의 선택으로 다른 진로로 바꿀 수 있는 것. 육 국장이 “넌 영효의 동생.”이라고 말하자 영인이 “난 경찰.”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건 그런 유혹을 다잡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그는 “정의롭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홍콩의 정체성을 은유한다. 거대한 삼합회와 경찰 조직은 중국 본토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결권이 없는 건명과 영인은 홍콩이다. 영인은 “스파이 노릇 신물 난다.”라며 황 국장에게 빨리 작전을 종결시키고 경찰에 복귀시켜 달라고 애원한다.

침이 영효에 의해 암살됐다고 판단한 건명은 메리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메리의 죽음으로 그는 침의 스파이보다는 경찰이란 정체성 쪽으로 기운다. 홍콩 주민들은 중국으로의 반환이 두렵지만 결국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환유이다. 어차피 그동안의 영국 할양이 그들의 뜻은 아니었지 않은가?

예곤의 생전의 철학은 ‘인생은 돌고 돈다’였다. 영효와 침은 그걸 금과옥조로 알고 살아간다. 아무리 아등바등 몸부림쳐 봐야 흥망성쇠와 영욕은 돌고 돈다는, 어쩌면 운명론에 가까운 철학을 설파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시간 속에 갇힌 폐쇄의 자아 아닌가? 하나 더, 태국에서 침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대반전을 이룬 비결은 평소의 친구 관리에 있다. 매우 현사실적인 교훈이다. 전편에 못지않은, 분위기만큼은 더 진한 수작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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