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동천 물길 따라 걷는 경복궁 서쪽 길 [문화지평 답사기]

문화지평l승인2021.07.19l수정2021.07.19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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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공익활동 지원사업 ‘물길 따라 점·선·면으로 잇는 서울 역사’ 1차 답사인 ‘백운동천 물길 따라 걷는 경복궁 서쪽 길’을 진행했다.

[미디어파인 칼럼=물길 따라 점·선·면으로 잇는 서울 역사] 지난 5월 1일 오전 10시 30분 백악산 창의문 입구서 ‘물길답사’가 시작됐다. 이번 물길답사는 도시인문콘텐츠·디지털 헤리티지 아카이빙 전문단체인 문화지평이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공익활동 지원사업으로 ‘물길 따라 점·선·면으로 잇는 서울 역사’란 프로그램 일환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문화지평은 청계천을 이루는 서울의 주요 5대 물길에 대한 답사와 함께 3D, 동영상, 텍스트 등 다양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진행한다. 답사 대상은 백운동천을 비롯해 삼청동천, 흥덕동천, 창동천, 남소문동천 등 청계천을 이루는 5개 지류 발원지부터 청계천 합수 지점까지다. 이번 답사는 5개 지류 중 첫 번째 코스인 백운동천 물길이다.

백운동천 발원지와 물길 흐름

▲ 백운동천은 종로구 청운동 창의문 기슭(최장 발원지)과 자하문터널 남단 일대(역사적 발원지)에서 물길이 시작해 경복궁역 사거리와 세종대로사거리를 지나 청계천으로 합수된다.

백운동천은 서울의 인왕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로 길이가 가장 길어 청계천 본류로 불린다. 백운동천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청계천 최상류 지명이 백운동이었고 물줄기가 백운동을 감싸고돌아 흘러 내려왔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전한다. 창의문 입구에는 ‘청계천 발원’를 나타내는 표석이 있다. 표석에는 ‘이 곳에서 북동쪽 북악산 정상 쪽으로 약 150m 지점에 항상 물이 흘러나오고 있는 약수터가 있으므로 이를 청계천 발원지(發源地)로 정하였다’고 적혀 있다.

한양의 북쪽 주산인 백악은 조선의 사상과 정기가 서린 곳이다. 면악, 공극산으로도 불렸으나 조선시대에는 주로 백악 또는 백악산으로 불렀다. 일부에서 북악이라고 불렸는데 현대에서는 ‘일부’가 대세가 됐다. 여담이지만 백악 이름 되찾기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백악이란 이름은 고려 명종(재위 1170~1197년) 때, 한양 백악에 새 궁궐을 조성했다는 기록에서 처음 나온다. 북악산을 백악으로 부르게 된 데 대해 사학자들은 풍수지리와 도참설에 입각해 조선을 건국하고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는 과정에서 연유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펴낸 ‘청계천지천연구’에 따르면 백운동천의 발원지는 종로구 청운동 산1-76 부근과 두 번째 지점은 종로구 청운동 7-18 부근 지점으로 추정된다. 각 지점은 백악산의 청와대 경비를 맡고 있는 군 시설 부근과 자하문터널 남단 일대다. 군 시설 부근을 ‘최장발원지’라 하고 자하문터널 남단 일대를 ‘역사적 발원지’라고 부른다. 역사적 발원지에는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는 듯 ‘白雲洞天’이란 바위 각자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최장 발원지는 접근하기 어렵지만 역사적 발원지인 ‘백운동천’ 각자는 열린 공간이라 언제든 가볼 수 있다. 위치는 청운동 자하문터널 입구 우측에 있는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교회역사센터 뒤쪽에 있다. 이곳은 조선말기 문신과 이후 독립운동가로 활동한 동농 김가진(1846~1922)의 별서 터가 있던 곳이다.

▲ 백운동천 최장발원지 창의문 앞에서 출발 전 단체사진.

백운동천 각자 옆으로는 노출된 바위틈으로 역사적 발원을 증명하듯 졸졸 거리며 흘러내리는 물길이 보였다. 이곳에는 김가진의 별서 이후에 콘크리트와 타일을 사용해 지었던 현대식 주택 바닥 흔적이 남아 있다. 또 물길을 복개한 흔적과 유래를 알 수 없는 이름 모를 돌탑과 예 주택 흔적이 여럿 보인다. 과거엔 숲이 깊어 무속인들이 모여 살았음직한 추측이 가능한 몇몇 부재도 눈에 띈다.

백악산 양 갈래서 발원된 백석동천 물길은 경기상고 앞에서 합수돼 자하문로를 따라 경복궁역 사거리까지 거침없이 흐른다. 물론 지금은 완전히 복개돼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발밑으로는 쉬지 않고 흘러가고 있다. 물길이 살아 있을 때에는 몇 개의 다리가 놓여있었을 테고 또 몇 개의 지류들이 합수됐을 것이다. 지금은 모두 덮여있지만 다리가 있던 자리에는 표지판을 설치해 두었고 관련된 이름의 건축물이 남아있다. 경복궁사거리에서 물길은 왼쪽 11시 방향으로 살짝 꺾여 한국생산성본부와 종교교회 앞으로 지나 세종문화회관 뒤편으로 흐르다 세종대로사거리 동아일보사 앞에서 청계천과 합수하면서 그 이름을 다한다.

백운동천 지류

▲ 옥류동천 물길이 시작하는 수성동계곡.

백운동천을 이루는 지류에는 옥류동천, 대은암천, 사직동천, 경복궁내수, 경희궁내수 등이 있다. 행정동 경계에 의해 크게 분류하면 백운동천·옥류동천과 사직동천·경복궁내수·경희궁내수 두 분류로 구분된다. 백운동천은 백악산과 인왕산 자락 일대에서 물길이 시작해 청운동, 신교동, 궁정동, 효자동, 창성동, 통인동, 세종로 일부, 옥인동 일부로부터 물이 모여 하계가 형성된다.

옥류동천의 경우 옥인동과 누상동에서 물길이 시작한다. 옥인동, 누상동, 누하동으로부터 물이 모여 하계가 형성된다. 수성동 계곡에서부터 내려오는 옥인동천은 현재의 우리은행 효자동지점 남쪽에서 백운동천과 합수된다. 조선시대에는 옥류동천 본류 일대(수성동계곡서 박노수미술관으로 내려오는 길)를 인왕동, 현 옥인동 47번지 일대(GS남촌 리더십센터 인근)를 옥류동이라 했고 이 둘을 합친 것이 오늘날의 옥인동이 됐다.

사직동천의 경우 사직동 일대에서 물길이 시작해 사직동, 필운동, 체부동, 내자동, 내수동, 적선동, 도렴동, 당주동, 신문로1가로부터 물이 모여 하계가 형성된다. 경희궁내수는 신문로2가에서 하계가 형성되고 경복궁내수는 위치상으로는 적선동, 도렴동 일부로부터 물길이 만들어진다.

백운동천 공간 이야기

▲ 동농 김가진 별서 터 바위에 새겨진 백운동천 각자 앞에서 배건욱 해설사가 설명하고 있다.

백운동천이 흐르는 경복궁의 서측마을인 서촌지역은 경복궁과 인왕 사이에 위치한 지역이다. 조선 초기인 15세기 기록에 따르면 인왕 자락의 인왕동과 백운동, 그리고 백악 서편의 쌍계동이 경관이 좋은 명소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 초기에는 이러한 유상지(노닐며 관상하는 곳)에 거주공간을 두는 데 제약이 많았다.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백악이나 인왕 자락에는 민가가 들어설 수 없었다. 관료들도 출퇴근의 편리성(?) 때문에 인근에 많이 살았지만 궁궐이 보이지 않는 골짜기에 집터를 잡았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폐허로 변하면서 서촌은 양반과 이서(중인, 하급관리와 서출) 계층의 거주지로 급부상했다. 주요 사대부 가문의 양반들은 경치 좋고 도성이 내려다보이는 인왕 쪽에, 이서 계층은 경복궁주변의 관공서와 인접한 인왕 아래쪽의 비교적 고도가 낮은 곳에 거주했다. 북촌도 높은 곳은 양반, 낮은 쪽은 서민들이 자리 잡는 등 같은 패턴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높은 곳을 점한다는 것은 권력과 비례한다.

경복궁 서북의 청운동에 위치한 청풍계는 병자호란 때의 충신으로 강화도에서 순절한 김상용이 이곳에 청풍각, 와유담, 태고정 등을 짓고 거주하던 명승지였다. 상류는 청풍계천, 중하류는 개천이었다. 그것이 일제가 ‘청계천’으로 이름을 바꿨고 지금도 우리가 부르고 있는 이름이 됐다.

대한제국기에는 법부대신를 지낸 동농 김가진은 별서 백운장(白雲莊)에서 1910년 국권 상실 후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살았다. 백운장은 김가진 일가의 중국망명 이후 일제강점기 동안 고급 요리집(요정)으로 사용되었던 기록과 사진이 확인되고 있다. 이날 함께 답사를 했던 일행 중 한분도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일대가 큰 요정이 있었다고 했다.

수성동 계곡으로 불리는 옥류동천 본류 상류 역시 조선시대에 명승지로 유명했다. 접근도가 좋아서 청풍계보다 훨씬 규모가 큰 명승지였다.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 중 ‘수성동’에 등장하기도 했다. 또 옥류동 계곡으로 불리는 지류 일대에는 우암 송시열의 글씨로 전해지는 ‘玉流洞’(옥류동)이 새겨진 바위가 있었으며 1950년대 이후 사라졌다가 2019년에 재발견됐다. ] 그 일대에서 조선 중기에 중인들이 모여 결성한 시사의 이름도 옥류동천의 이름을 따 옥계시사, 이들의 문학을 여항문학이라고 했다.

백운동천 물길 주변에는 겸재 정선 집터와 외가, 송강 정철 집터, 김상헌 집터, 육상궁, 선희궁지, 이중섭 가옥, 박노수 가옥, 신익희 선생 옛집, 세종대왕 사가, 이상범 가옥, 배화여고 캠벨기념관, 필운대, 김정희 옛집, 홍종문 가옥, 사직단, 청송당 유지 등 역사 문화자원이 다수 분포돼 있다.

백운동천 물길 답사코스

창의문(백운동천 최장발원지)-동농 김가진 집터(역사적 발원지, 백운동천 각자)-경기상고(청송당유지)-백세청풍 각자-선희궁 터-벽수산장 부재-송석원 각자 터-옥류동천 본류(수성동계곡)-박노수 미술관-이상의집-이상범가옥과 화실-세종문화회관 뒤편-종교교회(종침교)-동아일보 일민기념관-청계천 합류지점

■ 일시 : 2021. 5. 1(토) 10:30~13:00
■ 주관 : 문화지평
■ 후원 : 서울시청(건축기획과)
■ 해설 : 배건욱 역사문화해설사

[문화지평]

서울시비영리민간단체(도시문화콘텐츠연구·답사‧아카이브 전문단체)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2016), 역사도시 서울답사(2017), 서울 구석구석 톺아보기(2018), 2천년 역사도시 서울 진피답사(2019), 서울미래유산 시장 관광자원화 아카이빙(2019), 서울 첫 종교건축물과 주변 근대 건축물 답사‧아카이빙(2020), 물길 따라 점·선·면으로 잇는 서울 역사(2021), 김중업과 김수근, 현대건축 1세대 궤적을 쫓아서(2021)

지자체‧기업‧단체 인문역사답사‧강연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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