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상징_목멱산 N타워의 여름날 풍경

[미디어파인 칼럼=최철호의 한양도성 옛길] 숭례문에서 소월길 따라 걸으면 목멱산 성곽길이 이어진다. 목멱산은 한양도성의 남쪽에 있는 산으로 남산이라 불리며 우리곁에 가까이 있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애국가에도 친근하게 누구나 부르는 산이 남산이다. 한강에서 경복궁을 가려면 남산터널을 지나야 곧장 갈 수 있다. 남산 1호터널을 탈까, 3호터널로 갈까 고민하는 사이에 목멱산은 안중에도 없다. 언제부터 목멱산은 남산이 되어버렸을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목멱산에서 가장 유명한 남산 원조 돈까스로 식사 후 백범광장을 향해 걷는다.

목멱산(木覓山)은 한반도 봉수제도의 종점 역할

목멱산은 600여 년 전 한양도성을 설계하며 삼각산과 한강 사이에 위치한 전략적인 곳이었다. 정면에 백악산, 좌측에 인왕산과 안산 봉수대가 보이는 군사적인 요충지다. 또한 우측에 낙타산이 있고, 저 멀리 아차산 봉수대가 낮과 밤으로 소식을 전해오는 통신수단의 집결지였다. 비가 올 때나 바람이 불고 안개가 낄 때는 천림산과 개화산에서 나팔소리로 목멱산 동봉과 서봉에 소식을 전하였다. 다시 말해 목멱산은 봉수제도의 종점 역할을 하는 목멱산 경봉수로 한양도성 안 궁과 궐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다.

▲ 목멱산 경봉수_한반도 봉수제도의 종점

목멱산은 목멱대왕(木覓大王)이라 봉하며 목멱산신을 모시는 국사당이 정상에 있었다. 무학대사의 상과 나옹선사 상을 모시며 호국의 신으로 삼고 목멱신사를 지어 국사당으로 하였다. 목멱신사는 경복궁에서 보았을 때 한양도성 남쪽에 지었다. 그리고 백악신사는 한양도성 북쪽에 지어 백악산 정상에 진국백이라는 여신을 모셨다. 또한 사직단과 마찬가지로 기우제와 기청제 그리고 기곡제등 봄 가을 초제를 이곳에서 모셨다. 국사당은 국가의 중요한 가치와 행사가 목멱산 정상에서 치러졌다.

목멱산은 동봉과 서봉이 펼쳐진 넓은 명산

그렇다면 일본은 언제부터 목멱산 주변에 관심을 가졌던 걸까? 아마도 임진왜란 때 한양도성에 진입하여, 도성 안 궁과 궐을 불태운 후 목멱산 아래에 진을 치기 시작하였다. 왜성대(倭城臺)라 불리는 곳이 지금의 숭의대학교와 리라초등학교 그리고 애니메이션센터까지 넓은 땅과 계곡이 목멱산이다. 목멱산은 동봉과 서봉으로 병풍처럼 펼쳐있고, 도성 밖 둔지산 일대에서 한강까지 군병영지 역할을 하였던 명산이자 영산이다. 이후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을 거치며 목멱산 주변은 일본 거류민단이 서서히 자리를 차지하였다. 1897년 왜성대공원으로 문을 연 한양공원은 남산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어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 한양도성의 관문 숭례문 나서면 목멱산

일제강점기 일본은 민족의 모산이자 영산인 목멱산 자락에 신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도성 안 소파길에 노기신사와 경성신사를 짓고, 도성 밖 소월길에 경성호국신사등 전국에 1,141개 신사를 지으며 신사참배를 강요하였다. 목멱산은 남산으로 격하되며, 최초의 국립현충원인 장충단(奬忠壇)은 장충단공원으로 되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무예훈련장은 예장동으로 일제강점기 통감부와 통감 관저 그리고 초기 총독부와 총독 관저를 지으며 일본의 정치적,군사적,정신적 중심지가 남산이 되었다. 또한 일본은 600년의 정기가 가득한 목멱산 중심에 조선신궁을 1925년 지으며 신사의 격을 최상으로 올려 신궁화하였다. 목멱대왕으로 봉한 국사당이 목멱산에서 인왕산 선바위 아래로 옮겨지는 가슴 아픈 사연도 전해온다.

목멱대왕 국사당(國師堂)을 다시 목멱산에 옮겨야

더욱이 목멱산의 슬픈 이야기는 해방 후 조선신궁이 일본인들에 의해 승신식을 거행 한 후 해체식과 함께 소각하였다. 하지만 조선신궁 터는 남산식물원과 남산도서관으로 목멱산의 이름이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아직껏 600년 전 목멱산이 남산으로 불리고 있으니 가슴 아프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언제 다시 목멱산으로 될 것인가? 다행히 조선신궁이 있었던 남산식물원 터는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으로 복원하여 지붕 없는 박물관이 지붕 있는 유적전시관으로 탈바꿈하였다. 또한 조선신궁이 있던 참배길에는 안중근의사기념관과 안중근의사 상 그리고 안중근의사의 유묵이 세워지며 안중근의사 공원으로 되었다. 기쁜 일이다.

▲ 조선신궁 터 목멱산 한양도성유적전시관

일본이 사랑(?)한 남산을 목멱산으로 이름을 되돌려 놓으면 좋겠다. 남산공원은 ‘한양공원’으로, 남산타워는 ‘목멱 N타워’로, 남산도서관은 ‘목멱산 도서관’으로 이제는 바꾸어 주어야 할 시간이다. 전국적으로 ‘남산(南山)’은 없는 곳이 없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에 나오는 남산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일 뿐이다. 경주 남산, 창원 남산, 부산 남산, 대구 남산, 청주 남산, 강릉 남산 그리고 강화 남산까지 도시가 있는 곳에 산이 있고, 방위가 있는 곳에 남쪽의 산 앞산이 바로 남산이다. 600여 년 전 한양도성의 남쪽의 산이 목멱산이요, 북쪽의 산은 북악산이 아니라 백악산이다.

한반도의 허브,목멱산에서 한강까지

목멱산은 봉우리가 3개인 넓고 깊은 영산(靈山)이다. 동봉과 서봉 그리고 잠두봉이 펼쳐져 한강까지 산줄기가 연결되어 있다. 목멱산은 265m로 나무을 많이 볼 수 있는 편안한 산으로 마뫼라 하였다. 한양도성 18.627km 성곽이 이어진 남쪽 산으로 둔지산에서 한강까지 이어져 있다. 서울에서 가장 넓은 공원이 있는 산이 목멱산이다. 또한 한반도의 배꼽인 용산공원이 새롭게 바뀌면, 서울의 중심이자 한반도의 허브가 목멱산을 품은 용산이 될 것이다. 목멱산에서 둔지산 지나 한강 사이 새로운 미래도시가 펼쳐지고 있다. 이제 목멱산을 우리가 품어야 할 시간이다.

▲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저서)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소장]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사단법인)서울아리랑보존회 이사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외래교수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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