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정분임 작가의 아무튼 영화&글쟁이 엿보기] 로라와 가스통의 엄마 비르지니는 식용메뚜기를 사육한다. 풀을 직접 캐어 주고 오래 들여다보아도 메뚜기의 성장과 번식은 시원찮다. 메뚜기 판매 유통망이 좁고 사육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비르지니는 메뚜기 온실에서 집기를 내던지며 분노를 표출하다가 미끄러져서 다친다. 그녀는 피를 흘렸다. 메뚜기들은 그 피를 빨아먹는다. 이후 메뚜기들은 몸집이 커지고 많은 알을 낳았다. 메뚜기들의 번식력이 증가했다.

▲ 영화 ‘더 스웜’ 스틸 이미지

비르지니는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어서라도 자신의 피로 메뚜기를 먹인다. 피맛을 알아버린 메뚜기가 잘 자라주니 돈이 생기고 좋았다. 초식곤충이 육식곤충으로 돌변해버린 생장비밀로 돈을 벌기에만 바빴다.

아들의 반려동물 염소가 메뚜기에게 잡아먹힌 이상 징후에도 전혀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끼지 않고 욕심만 늘려간다. 염소를 찾아 헤매는 아들의 슬픔과 고통은 뒷전이다. 학교 친구에게 따돌림과 놀림을 당하는 딸의 괴로움을 알지만 바이크를 사 주며 견디라고 한다.

그녀는 점점 욕심을 부린다. 메뚜기 온실을 늘리고 메뚜기에게 먹일 피의 양을 늘려간다. 피의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자 옆집의 개를 몰래 데려와 메뚜기에게 갖다 바친다. 남의 농장 소까지 몰래 도둑질하여 잡는다. 그녀는 이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온실은 불에 타고 메뚜기떼는 날아간다. 메뚜기떼는 친구인 아랍 남자를 잡아먹고 로라에게 달려든다. 비르지니의 이기심과 욕망이 결국 재앙으로 돌아왔다.

▲ 영화 ‘더 스웜’(the swarm, LA NUEE) 포스터

메뚜기떼가 온 하늘을 뒤덮고 돌진해가는 영상을 보았다. 현실에서는 몸이 빨갛고 큰 메뚜기가 농작물을 뒤덮고 나무를 에워싸고 있었다. 바로 사막메뚜기였다. 아프리카 5개국 에디오피아, 케냐, 소말리아, 수단 예멘 등은 3500만명이 식량 부족을 겪고 있는데 사막 메뚜기의 습격으로 더 굶주림에 시달릴 것이라 했다(경향신문 2020년 12월20일 이정호 기자). 이상 기후로 인해 북극의 얼음이 줄고, 사막 메뚜기 수억 마리가 습격하여 농작물을 초토화하였다.

영화에서는 하늘을 뒤덮은 메뚜기가 피냄새를 맡고 날아간다. 인간과 동물에게 떼지어 날아간다. 수십 일간 굶주린 북극곰이 동족 북극곰을 잡아먹기까지 하는 이상한 지구 환경에서 메뚜기가 육식으로 돌변할지도 모를 일이다. 공상과 상상으로만 있어야 했던 장면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으니 이제 우리는 머리 속 생각들을 표출하기가 겁이 난다.

요즘 지하철을 탈 적마다 이상한 느낌이 든다. 여기가 지구가 맞을까? 모든 승객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10년 전에, 5년 전에 이런 생각을 했던가? 1년 열두 달 마스크를 쓴 채 길거리를 다녀야 하고, 투명 칸막이를 두고 내 아이가 학교 급식을 먹는 현실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영화의 장면으로만 여겼던 것들이 실제로 드러나고 일상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어쩌면 5년 후에 방독면을 쓰고 살아가지 않을까? 이러한 걱정이 현실이 될까 두렵다.

벌과 개미의 집을 아무렇지도 않게 약탈하는 놈은 천하의 큰 도둑이 아닐 수 없고 내키는 대로 메뚜기와 누에의 살림을 빼앗아 훔쳐 가는 놈은 인의를 해치는 큰 도적이 아닐 수 없다.(박지원의 호질 중)

▲ 사진 출처=픽사베이

18세기 실학자 박지원은 짐승보다 악하고 욕심 많고 허세 심한 양반 계층을 이렇게 꾸짖었다. 미물인 메뚜기와 누에에게서까지 약탈해가는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자연은 점점 망가지고 생태계는 교란되었다. 자연을 도적질하고 상해를 입힌 인간은 이제 도리어 자연으로부터 보복을 당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한 짓이 있으니 기꺼이 앙갚음을 당해야 마땅하다. 사막메뚜기가 순식간에 농작물을 탈취하여 먹어버리는 일쯤은 받아들여야 한다. 플라스틱 입자를 삼킨 괭이갈매기와 바다거북이 죽어가면서 우리에게 발암물질을 확산시키는 일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 새로이 태어나는 생명이 있다. 새싹, 새잎, 알에서 깨어난 아기새, 그리고 우리의 아기들. 그 어린 생명까지 모두 복수를 주고받게 할 수는 없다. 우리 세대에서 복수혈전을 막고 끊어내야 한다. 식량 부족으로 아기가 죽어가게 내버려 둘 수 없으며, 환경오염으로 인한 유전자 변이 때문에 기형아가 태어나게 해서도 안 된다.

비르지니가 딸 로라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손목을 그어 피를 흘려서 메뚜기떼를 받아내듯이 자승자박(自繩自縛), 결자해지(結者解之)의 결단으로 우리 세대에서 끝내야 한다. 자연의 복수를 감내하여 그 회복까지 우리가 기필코 책임져야 한다.

▲ 정분임 작가

[정분임 작가]
극동방송 ‘주님의 시간에’ 작가(2014~19)
시립강북노인복지관 인문학 글쓰기 강사
구립서초중앙복지관 자서전 쓰기 강사
저서 ‘영화로 보는 신앙’, ‘꿈꾸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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