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픽사베이

[미디어파인 칼럼=한의사 홍무석의 일사일침(一事一針)]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란 시를 통해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라고 했다. 왜냐 하면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이어서라는 것이다.

시에서처럼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일생을 보게 되듯이, 우리가 자연에서 얻는 무엇을 먹고 마시면 그것의 일생을 몸에 담는 건 아닐까. 환경, 토양, 미생물, 일조량, 장마나 서리 등 그것이 겪은 총칭을 음미하며 활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산지(産地)와 와이너리를 강조하며 포도주에 떼루아(terroir)라는 용어가 사용되는데, 자연환경과 경작인의 노고가 어찌 포도주에만 한정되겠는가. 굳이 용어를 붙이지는 않아도 커피에도 떼루아가 있기 마련일 테고, 한방에서 권하는 차(茶)도 떼루아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계절상 따뜻한 차 한 잔이 몸을 데워주는 때가 됐다. 크고 작은 더위(소서小暑, 대서大暑)를 보내고 가을의 문턱(입추,立秋)을 지나니 더위가 가시며(처서,處暑) 맑은 이슬이 내리는(백로,白露) 절기로 접어들면서다.

여름에 마시는 차는 생맥산(生脈散)정도에 그친다. 생맥산은 맥문동, 인삼, 오미자를 물에 달여서 여름에 물 대신 마시는 음료로, 동의보감에 의하면 사람의 기(氣,에너지)를 도우며 심장의 열을 내리게 하고 폐를 깨끗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날이 추워지면 마시는 차들이 많아진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경락을 말초까지 뚫어주는 효능을 내는 것들인데, 계지(桂枝)차가 먼저 떠오른다. 계피와는 구별된다. 계피는 나무 아래쪽의 두꺼운 줄기 껍질이며, 계지는 나무 끝부분의 어린 가지다.

계지는 특이한 향기에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계지의 효능도 혈관을 확장시켜 혈액을 잘 흐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알려져 있다. 겨울에 손발이 차고 저린 증상이 있는 분들은 계지차를 마시면 효과를 볼 수 있다.

쌈 채소로도 먹는 당귀는 봄에 파종하여 가을에 잎이 마르기 시작하면 모두 캐서 차로 이용한다. 말린 당귀를 물에 넣고 끓여서 차로 마신다. 독이 없고 따뜻한 성질의 당귀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항산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랫배가 차가운 분들이 당귀차를 마시면 효능을 볼 수 있다.

음식에도 많이 사용되는 생강은 정녕 양념인가, 약재인가. 한방에서는 건강(乾薑)이라 해서 뿌리줄기를 말려 약재로 사용한다. 특히 몸을 데우데 가장 많이 쓰이는 약재다. 소화기를 진정시키고 헛구역질 나오는 것을 잡아주며 으슬으슬 한기를 느끼는 감기에 생강을 우려내서 마시면 효과적이다. 생강은 대추와 함께 첩약에 빠지지 않는 약재이기도 하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날씨가 추워지면 대기가 건조해져서 목이 칼칼해지기 쉽다. 기침이 날 때 모과차를 마시면 엉킨 기관지를 풀어주고 신경통 근육통에도 효과적이다. 또 한방에서 목감기에는 도라지를 기본 처방에 둘 정도여서 도라지차는 목 염증에 효능을 볼 수 있다.

이밖에도 국화 산수유 결명자 등 몸을 데워주고 근육을 풀어주는데 도움이 되는 차들은 그야말로 부지기수다. 차가운 성분의 차와는 달리 따뜻한 차는 장기간 복용할 수도 있다. 차 한 잔이 사람의 몸을 데운다니, 실로 어마어마한 일 아닌가.

한 때 유행한 일본 만화에서 포도주를 ‘신의 물방울’로 비유했는데, 한방에서 권하는 차는 ‘치유의 물방울’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예로부터 차는 약이 아니어서 한두 번에 효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는 것처럼 매일 꾸준히 마셔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한자로 매일 삼시 세끼를 챙겨 먹는 일을 반사(飯事). 차 마시는 일을 차사(茶事)라고 하는데, 차나 식사를 하는 것처럼 습관적으로 하는 흔한 일을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라 하는 이유가 다 있는 셈이다.

▲ 한의사 홍무석

[홍무석 한의사]
원광대학교 한의과 대학 졸업
로담한의원 강남점 대표원장
대한한방피부 미용학과 정회원
대한약침학회 정회원
대한통증제형학회 정회원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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