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뚝섬수원지] 서울에서 시민들이 수돗물을 먹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구한말, 함경남도 북청 출신을 중심으로 생겨나 서울 골목길을 누비며 우물물을 길어다 판매하고 방대한 조직으로 성장했던 물장수.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맡에 찬 물을 솨아 퍼붓고는
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 사라지는
북청 물장수
물에 젖은 꿈이
북청 물장수를 부르면
그는 삐걱삐걱 소리를 치며
온 자취도 없이 다시 사라진다
날마다 아침마다 기다려지는
북청 물장수
- 북청 물장수(김동환 1924년)

구한말과 개항을 거치면서 근대 한양엔 급속하게 인구가 증가하였고, 작은 하천이며 우물물은 대부분 오염돼 전염병의 온상이 되었다. 이렇듯 개항 이후 들어온 많은 외국인은 조선에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자 맑은 물을 돈을 주고 사서 마시는 과정에서 물장수가 하나의 상시적 직업으로 생겨나게 되었다.

한일합방 무렵 서울엔 만여 개의 우물이 있었지만 먹을 수 있는 건 500개 정도. 한창 근대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던 고종은 강물을 인위적으로 정수해 식수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에 고종은 당시 대한제국에서 처음으로 전기사업을 시작한 미국인 콜브란과 보스트윅에게 상수도 부설권을 허가하여, 한양에 처음으로 상수도물을 보급하도록 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상수도 시설인 뚝섬수원지가 준공된 것이다.

상수도 기술은 전기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전기가 도입되면서 상수도 기술도 같이 도입되게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정수장이 뚝섬에 설립된 배경은 한강에서 맑은 물을 유입하기 용이하였으며, 수돗물을 멀리까지 보내기 위한 증기터빈을 돌릴 수 있는 땔감이 뚝섬 지역에 풍부했기 때문이다.

자갈과 모래를 이용해 1일 4m 정도의 매우 느린 속도로 물 속 불순물을 걸러냈던 상수도물은 서울 사대문과 일본군 기지가 있던 용산 일대 12만 5천 명에게 수돗물을 공급하였다.

뚝섬수원지 건물은 붉은 벽돌과 기와를 쌓아올린 조적식 구조와 화강암 소재의 아치형 문틀, 좌우의 창은 유럽식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서울 유형문화재 72호로 지정되었다.

처음부터 서울시민 모두에게 공급될 수 없었던 수돗물은 등장과 함께 특권적 식수가 됐다. 일제 강점기, 문패 옆의 '수도사용가' 라는 표지는 전화번호와 더불어 부잣집 인증 마크 구실을 했다.

수돗물이 보편적인 생활용수가 된 건 겨우 한 세대 전.
뚝섬수원지가 영원히 생명수의 효시로 남아있는 이유이다.  

<뚝섬수원지 편> 프로그램 다시보기 : http://tvcast.naver.com/v/114295

tbs TV에서는 서울 일대에 남았거나 변형된 근현대문화유산을 주제로 서울의 역사․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제작하고 있으며, 프로그램은 네이버 TV(http://tv.naver.com/seoultime), 유튜브(검색어: 영상기록 시간을 품다) 또는 tbs 홈페이지에서 다시 볼 수 있다.

▲ tbs 백남우 영상콘텐츠부장

[수상 약력]
2013 미디어어워드 유료방송콘텐츠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 수상
2014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PP작품상 수상
2015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상 지역부문 우수작품상 수상
2016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기획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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