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운수 좋은 날 [정분임 작가 칼럼]

오징어게임, 2021, 황동혁 연출, 이정재 주연, 9부작 드라마 정분임 작가l승인2021.10.02l수정2021.10.03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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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 칼럼=정분임 작가의 아무튼 영화&글쟁이 엿보기] 455명이 죽고 혼자 살아남아 456억원을 받아 집에 왔는데 어머니가 방에 쓰러져 있다. 아들을 기다리다 병든 어머니는 운명하였다. 「운수좋은 날」을 쓴 현진건이 이 드라마를 보면, 인력거꾼 김첨지가 이 드라마를 보면 뭐라 할까? 그날따라 운수가 좋아서 병든 아내에게 먹일 설렁탕을 사들고 왔지만 빈 젖만 빨던 아기의 울음을 듣던 김첨지가 말이다.

▲ 드라마 ‘오징어 게임’ 포스터

우리나라 전통 민속놀이와 구세대가 즐겼던 놀이를 통해 승자를 가려내는 게임. 승자에게는 456억원의 상금이 기다리고 있다. 게임에서 진 자, 죽어간 패자들의 목숨값이 거대 저금통에 매일 쌓인다. 가볍고도 무거운 목숨값이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친 후 움직이면 총살이다. ‘달고나’에 찍힌 그림을 모양대로 분리하지 못 하면 총살이다. ‘줄다리기’에서 패하면 모두 추락하여 죽음을 맞는다. 이토록 잔혹한 놀이를 하는 이유는 상류층의 재미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 게임에 베팅하던 VIP들은 로마 시대 원형경기장에서 전차 경주를 지시했던, 검투사끼리 피 터지게 싸우게 하라 했던 네로 황제와 다름없었다.

오징어 게임을 만들고 실제 참가를 했던 호스트는 21세기 히틀러가 아닐까? 게르만 민족만이 우월하고 유태인을 개 돼지로 취급했던 학살자. 유태인의 씨를 말리고 오직 그들만이 세계의 주인이어야 했던, 어쩌면 전쟁을 놀이처럼 취급했던 정신 파탄자. 그 독재자를 호스트가 흉내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게임에 지면 바로 총질을 해대는 관리자들, 그들이 왜 그 섬으로 왔는지는 모른다. 히틀러 같은 호스트의 명령에 동조하여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호스트가 시키는 대로 하면 집이 생기고 가족이 부유해지니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잔혹한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것일까? 특히 관리자들의 리더인 프론트(이병헌 역)는 이전 게임의 우승자였고, 상금 수백억원도 획득했는데 왜 그 일을 하는 것일까? 온통 궁금증을 남긴 채 이 드라마는 영화와 시즌2 드라마를 기획 중이라고 한다.

이 드라마가 초흥행으로 지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카페에서 원고를 정리하는데 옆 테이블의 20대 남녀가 이 드라마를 이야기했다. 초등학생들도 이 드라마가 보고 싶다고 난리다. 기업에서 드라마 게임을 적용하여 달고나를 판매하고 있단다. 뉴스에서는 드라마가 BTS와 함께 한류 붐을 일으키고 영화 ‘기생충’에 맞먹는 작품이라며 연일 보도 중이다. 우리나라 드라마가 유명해지고 우리나라 문화가 한껏 높아지는 기분에 젖어 마냥 좋아해야만 할까?

게임에 져서 검붉은 피가 터져 죽어가던 모습에 처음에는 몹시 경악하다가 차츰 익숙해져서 죽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어쩌면 심장이 쫄깃쫄깃해지는 극도의 긴장과 카타르시스를 맞보며 다음 장면을 기대하는 나를 발견한다. 잔인하고 혐오스런 장면도 익숙해져 가는 단계, 그 선을 넘으면 생명의 존엄함도 생과 사에 대한 경외심도 어쩌면 깃털처럼 가벼워질 수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참 주의해서 보아야 한다. 마지막 9화 운수 좋은 날에서 작가이자 연출가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고 있다. 8화까지 이끌어오던 긴장감이 풀어진다. 게임의 이유를 설명하고 456억원을 벌어들였으나 행복하지 않은 주인공을 보여준다. 왜 그렇게 살아? 네 인생을 즐겨! 빌딩을 사고 리무진을 사! 집에 하인을 들여서 호화롭게 살아! 우리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지경이다. 그 게임을 만들고 진행하는 자를 비난하기보다는 바보 같은 주인공을 나무라고 힐책하는 순간, 우리도 잔혹한 게임에 동요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는지.

▲ 드라마 ‘오징어 게임’ 스틸 이미지

로또 1등에 당첨되고도 이전보다 더 추락하는 인생들을 우리는 보아왔다. 운수 좋은 날은 운수 나쁜 날로 돌아왔다. 주식이 올라서 운수 좋은 날, 주식이 내려서 운수 나쁜 날, 중간고사를 잘 봐서 운수 좋은 날, 기말고사를 못 봐서 운수 나쁜 날 등을 헤아려왔다. 주어진 환경에서 승자였다가 패자였다가 일희일비하며 자신의 팔자와 운명까지 싸잡아 평가하지 않았던가? 햇살 좋은 날, 비 와서 좋은 날, 나오자마자 버스가 와서 좋은 날, 옆집 청년이 취업해서 좋은 날, 전세 보증금 안 올린 채로 계약 연장이 되어서 너무 좋은 날, 코로나19 검사 결과 음성이 나와서 너무너무 좋은 날, 승자와 패자 구분 없이 그렇게 운수 좋은 날들을 헤아려 보면 어떨까?

▲ 정분임 작가

[정분임 작가]
극동방송 ‘주님의 시간에’ 작가(2014~19)
인문학 글쓰기 및 자서전 쓰기 강사
저서 ‘영화로 보는 신앙’, ‘꿈꾸는 글쓰기’

정분임 작가  polag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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