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는 가족과 그리움에 관한 신동민 감독의 자전적 영화이다. 혜정(김혜정, 노윤정)은 바람난 철부지 남편과 헤어진 뒤 큰아들 동민(신정웅)과 둘째 동휘마저 독립하자 홀로 노래방을 운영하며 산다. 보일러가 고장 났다며 동민을 부르자 그는 한걸음에 달려온다.

재미있는 얘기를 해 주겠다며 “얼마 전 아빠가 술 한잔하자며 찾아왔는데 새 여자와 결혼식을 올린다.”라고 얘기했다고 말한다. 자신과는 결혼식을 안 올렸다고, 그 여자에게는 동민만한 딸도 있다고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혜정은 유방암을 이겨 냈는데 투병 중일 때 장기 기증을 알아보기도 했다.

혜정의 남동생 상돈은 러시아 여자와 결혼해 그녀와 두 딸을 러시아에 보낸 기러기 아버지이다. 카센터를 운영하며 생활비를 보내 주고 있는데 헤어진 지 몇 년이 되었는지 기억도 못 할 만큼 생활에 찌들어 있다. 혜정은 술과 담배를 입에 달고 산다. 동민은 그게 못마땅하지만 엄마는 엄마이다.

제작사가 하이퍼 리얼리티라고 장르를 규정했듯 다큐멘터리인지, 드라마인지 헷갈릴 만큼 잔잔하게 진행된다. 감독이 실제 제 가족의 얘기로 시나리오를 썼고, 그의 엄마인 김혜정이 연기 경력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배역을, 연극배우 노윤정과 함께 2인 1역으로 소화해 냈는데 자연스럽다.

구성은 감독이 연출한 단편 ‘군산행’, ‘태평 산부인과’, ‘희망을 찾아서’ 등이 연결된 옴니버스이다. 형식적으로는 철저하게 아날로그 정서를 지향한다. 화면 비율부터 디지털 세대에 익숙한 1.85 대 1이나 2.39 대 1이 아닌, 4 대 3이다. 몽타주 기법 이후 빨라진 장면 전환이나 짧은 쇼트 편집도 지양한다.

카메라는 자전거 라이딩 시퀀스를 제외하면 거의 고정되어 있다. 심지어 혜정이 의사와 대화를 나눌 때는 지극히 당연해야 할 숄더 샷이 아니라 대화 방향의 스크린 끝에 걸친 혜정의 원 샷으로 처리된다. 내용은 특별할 게 없이 동민과 혜정의 대화, 혜정과 전 남편과의 대화, 혜정이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 쇼트 등이 전부이다.

그런데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할 만한 신예 감독의 탄생을 알렸다. ‘보편적인 정서를 상투성을 벗어난 표현으로 담은 예술 영화’라는 표현대로 아주 일상적인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느리지만 마치 감독이 자신의 속으로, 그리고 보편적인 관객의 생각 속으로 들어간 듯 내면화와 외면화의 동시성을 추구하는 감동을 주는 게 강점이다.

혜정은 동민에게 “만약 아빠가 그 여자와 헤어지면 데려오고 싶어.”라고 말한다. 전 남편은 나약하고 우유부단하며 무능력하기까지 했었다. 게다가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혜정을 버렸다. 배신감과 원한에 사무칠 만도 한데 다시 합치고 싶단다. 그건 소외에서 오는 외로움과 그리움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 베르트랑 베르줄리는 “소외는 자신에게서 낯설게 되는 현상.”이라고 했다. 철석같이 믿었던 남편이 믿을 수 없는 배신을 했다. 두 아들은 자연스레 독립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도, 식구라는 기댈 곳도 사라져 버렸다. 남은 건 고독과 불안뿐이다.

생전에 덴마크 국교회를 맹렬하게 비판했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기러기’로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를 비난했다. 한 마리의 기러기는 거위들이 날 수 있도록 온 정성을 다 바쳐 노력하지만 조롱만 당한다. 결국 기러기는 날지 못하는 거위가 되어 버린다. 혜정이, 우리의 어머니들이 기러기가 아닐까?

혜정은 빠듯한 살림 속에서도 남편에게 한 여자로서 모든 것을 바쳤고, 두 아들에게 엄마로서 모든 걸 희생했다. 그러나 그 모든 의무감과 책임감 뒤에 남는 건 허무뿐이었다. 아무리 부모는 자식이 독립할 때까지 뒷바라지하는 게 당연하다지만 자식이 떠난 후의 빈 둥지 증후군이나 심지어 블랭킷 증후군은 어떻게 할까?

실존주의자인 키에르케고르의 가장 대표적인 키워드는 실존과 불안이다. 실존은 그의 저작 제목대로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택에 의한 자아의 실현을 말한다. 그 실존적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관념론(생각)과 경험론(감각적 경험) 외에도 제3의 길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불안이라고 그는 썼다.

이 불안은 마음이 불편하다는 일반적 개념을 넘어선 ‘내가 잘못될 줄 알면서도 선택할 자유를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혜정은 여러 가지 불안한 감정 탓에 술과 담배를 입에 달고, 보일러가 고장 났다고 먼 곳에 있는 아들을 부른다. 상식적으로 너무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녀가 부른 이유는 보일러를 고쳐 달라는 게 아니라 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달라는, 최소한 하소연이라도 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아들이 불편할 줄 알면서도 제멋대로 내키는 대로 함으로써 자아를 완성해 가는 것이다. 왜? 그게 가족이니까. 베르줄리는 불안과 절망은 오히려 희망과 안정을 줄 수 있다는 역설을 펼친다. 희망을 품는다면 ‘만약 그렇게 안 된다면?’이라는 불안감이 들고, 진짜 안 되었을 경우 절망감에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지만 반대의 경우 환희는 배가되기 때문이다.

동민은 혜정이 짝짝이 양말을 신은 것을 본다. 어느 날 자신도 그렇게 된다. 혜정의 양말은 괴리감이었다. 남편으로부터 유리되었고, 자식으로부터 분리된 그녀가 느낄 감정은 소외된 고립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떠도는 섬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동민의 양말은 정반대의 의미가 된다.

그건 균형의 파괴로 인한 관습과 고정 관념의 타파이다. 엄마와의 소통이자 화합이다. 자전거를 못 타던 그가 잘 타게 되는 건 그런 균형을 깨뜨림으로 인한 새로운 조화이다. 이 영화는 정훈희의 ‘안개’와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라는 두 명곡을 화두로 던진다. 바람은 세 가지 뜻이고, 안개는 불안과 고독이다. 가족과 그리움에 관한, 코가 시린 에세이. 28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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