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 허슬’, 주성치라는 재미의 집대성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21.11.01l수정2021.11.0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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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쿵푸 허슬’(저우싱츠 감독, 2005)은 저우(주성치)가 연출은 물론 각색과 제작에 참여하고,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콜럼비아트라이스타가 투자, 배급한 블록버스터이다. 중국 B급 코미디의 대명사로서 엄청난 ‘팬덤’을 거느린 저우의 작품 중 가장 상업적인 만큼 많은 재미를 담고 있는 버라이어티 쇼이다.

조직폭력배 도끼파가 경찰까지 쥐락펴락하는 1940년대 상하이. 도심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중년의 한 부부는 빈민이 사는 돼지촌을 만들어 운영하며 살고 있다. 고아로 자란 부랑아 싱(저우)은 공갈로 술값을 뜯으러 돼지촌에 왔다가 된통 당하자 자신이 도끼파랍시고 허세를 부리는데 진짜 도끼파가 나타난다.

도끼파 두목은 돼지촌에 은둔해 살던 3명의 고수들에게 호되게 당하자 고쟁(한국의 가야금 같은 중국의 전통 현악기)을 이용한 가공할 만한 무공을 펼치는 절세 고수 형제를 고용해 그들을 물리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주인 부부가 진짜 고수였다. 형제 고수는 부부에게 지고 두목은 더욱 광분한다.

두목은 중국 최고의 킬러로서 적수가 없는 화운선사를 고용한다. 그러나 화운선사는 두목을 제압하고 제가 두목 자리에 앉는다. 그 과정에서 부부 고수가 화운선사와 맞붙고 웬일인지 싱은 궁지에 몰린 부부를 도와주었다가 화운선사에게 무차별 공격을 받는다. 부부는 최고의 경공술을 이용해 가까스로 싱을 데리고 탈출한다.

칼에 맞고, 독사에 물리며, 화운선사의 주먹질에 곧 숨이 넘어갈 것 같던 싱에게 기적이 일어난다. 사실 그는 절세 고수가 될 체질을 타고났지만 임독이맥이 막혀 있었다. 공교롭게도 화운선사가 그 임독이맥을 뚫어 준 것. 화운선사는 도끼파를 이끌고 돼지촌을 멸절시키려 하고 부상을 입은 부부는 새로 태어난 싱을 믿을 수밖에 없는데.

이 작품은 상업 영화의 모든 전형적인 문법을 집대성했다. 권선징악이라는 큰 주제 아래에 추억과 순수함이라는 줄기를 퍼뜨리고 있다. 선한 사람이 살기 힘든 이 세상의 불합리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가운데 악에는 끝이 없다는 악의 연대기를 그린다. 그걸 쿵푸라는 장치를 통해 할리우드식 기승전결로 펼친다.

원래 도시는 악어파가 장악하고 있었는데 신흥 세력 도끼파가 몸집을 키워 악어파를 제거한 뒤 도시를 장악한다. 두목은 도끼파의 불패 신화를 잇기 위해 돼지촌을 무너뜨리려고 화운선사를 고용하지만 그보다 더 사악한 화운선사가 도끼파를 접수한다. 싱이 도끼파에 들어가고 싶었던 건 거지의 삶에서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고아로 자란 그는 세상을 구하고 싶었기에 전 재산 10위안을 털어 여래신장 비급을 사지만 사기였다. 한 소녀를 구해 주려다 불량소년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기만 한다. 그때 그가 깨달은 것은 정의 실현 따위는 자신의 행복에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 경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결론이 중요하다는 것.

어떤 짓을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부를 얻으면 그게 정의라는 것이었다. 도끼파에 들어가고자 했던 이유이다. 하지만 그는 선천적으로 선한 사람이었다. 비겁하고 야비하며 얍삽했던 그는 아무런 소득을 바라지 않고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부부가 당하는 것을 보고 잠재되어 있던 천성이 되살아나 화운선사를 공격한다.

그건 그를 이길 자신이 있어서도, 엉뚱한 영웅 심리도 아니었다. 정의 구현에 이유가 있을 수 없다. 천하제일 고수가 되어 화운선사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던 싱은 그의 항복 선언에 공격을 멈춘다. 마음을 놓은 그를 화운선사가 암수로 공격해도 제지한 뒤 용서해 주며 오히려 자신의 무공을 전수해 줄 수도 있다고 배려한다.

그건 악을 제압하기 위해 악이 행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대항하는 이이제이가 정의는 아니라는 뜻이다. 진정한 정의 구현은 악이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마치 종교 같은 메시지이다. 화려한 액션과 CG는 어색함이 전혀 없고, 절대 물리지 않을 만큼 시간은 빨리 흐른다.

이 영화에 동원된 패러디와 차용은 정말 무궁무진하다. 초반 도끼파의 승승장구를 표현하는 신들에서는 도끼파 조직원들이 뮤지컬 같은 군무를 펼친다. 부랑아 시절 돼지촌을 찾은 싱은 아이들이 축구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자 “아직도 축구 나부랭이나 하냐?”라며 이전 히트작 ‘소림축구’를 끌어들인다.

또한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걸작 ‘샤이닝’을 오마주 하는가 하면, 싱과 돼지촌 안주인과의 추격 장면에서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워너 브러더스의 애니메이션 ‘루니 툰’의 로드러너와 코요테의 추격전 시퀀스를 빌려 온다. 무술도 다양한 패러디 혹은 오마주로 중국 무술 영화의 집대성을 보여 준다.

리샤오룽(이소룡)을 존경하기로 유명한 그는 리가 창시한 정통 지퀀도(절권도)부터 청룽(성룡)의 체조를 연상시키는 아크로바틱 쿵푸를 보여 준다. 또한 ‘매트릭스’까지 오마주 한다. 싱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롤리팝(막대 사탕)을 건네주는 장면은 고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빌려 온 것이다.

그런데 저우는 그런 할리우드식 상업적 재미를 담은 장면들을 모두 고풍스럽게 꾸며 나가는 영리함을 발휘한다. 비록 할리우드의 돈을 받아 할리우드의 상업적 문법을 따라가지만 중국의 전통만큼은 지키겠다는 의지이다. 세 고수나 부부의 정체가 드러나기 전까지 모두 결핍투성이였던 것은 사람을 겉모습으로만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결국 이 영화는 정의를 웅변한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정의라고 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의 본질은 평등, 평균적 정의와 배분적 정의이다.”라고 외쳤다. 싱이나 돼지촌 사람들이 찢어지도록 가난하게 살았던 건 평등적, 평균적, 배분적 정의가 구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부패한 권력)과 도끼파(공권력과 결탁한 범죄자 혹은 자본) 때문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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