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김주혁 주필의 가족남녀M&B] 인류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국민소득을 끝없이 높이는 것일까? 아니다. 최저생계만 유지되더라도 인류는 지속 가능하다. 필수요소는 환경과 출생이다.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파괴되거나, 출생률 고속 감소 추세가 끝없이 이어지면 결국 인류는 지구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현재 추세대로라면 환경과 출생 측면에서 모두 지속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인구는 2020년 출생률 0.84명, 신생아 27만 여명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 브레이크가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인류 멸종과 관련해 경각심을 울려주는 영화들이 눈길을 끈다.

▲ 영화 ‘나의 마더’와 ‘칠드런 오브 맨’의 포스터.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은 인류가 종말을 향해 가는 2027년, 런던을 배경으로 한다. 세계 여성들이 모두 임신 기능을 상실해 더 이상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다. 생후 18년 4개월짜리 디에고가 최연소자다. 그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이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대부분 국가가 폭동 테러 등으로 무정부 상태다. 유일하게 군대가 유지되고 있는 영국으로 불법 이민자들이 몰려든다. 정부는 불법이민과 전쟁을 벌인다. 이런 상황에서 흑인 소녀 키가 기적적으로 임신했다. 이민자 인권단체 리더인 줄리안이 그녀를 보호한다. 줄리안은, 아들과 사별한 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전 남편 테오를 20년 만에 만난다. 새 생명을 잉태한 흑인 소녀가 무사히 ‘승리호’에 도착하도록 보호해 달라고 그에게 부탁한다. 천신만고 끝에 테오는 빈 집에서 20년 만에 처음 태어난 키의 아기를 받아낸다. 이들이 집 밖으로 나가며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러자 전투 중이던 정부군과 난민 모두 사격을 중지한 채 경외감과 축복을 표한다. 테오 일행은 결국 작은 보트를 구해 바다로 나간다. 총상으로 인해 테오는 보트에서 숨을 거둔다. 키와 아기만 남은 보트에 승리호가 다가오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에서 불임은 환경 파괴의 영향일 수도 있고, 극단적인 출산 파업의 비유일 수도 있다.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20살 미만이 단 한 명도 없거나 한 명뿐인 세상을 상상해 보라. 암울하고 끔찍하다.

▲ 20년 만의 신생아와 엄마가 탄 보트를 향해 승리호가 다가오고 있다.(영화 ‘칠드런 오브 맨’ 스틸 이미지)

영화 ‘나의 마더’는 로봇이 인간배아를 인공생식시켜 양육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장소는 인간이 멸종할 경우 작동하도록 프로그램된 인류재건시설. 멸종 후 첫날 마더 로봇이 자동조립돼 활동을 시작한다. 보관 중인 인간배아 6만 3000개 중 1번 여자 배아를 인공생식기관에 넣자 24시간 만에 아기가 탄생한다. 로봇 ‘마더’는 ‘딸’을 먹이고 돌볼 뿐 아니라 각종 교육을 시키는 등 훌륭한 인격체로 성장하게 한다. ‘모녀’가 세상의 전부다. 그러다가 멸종 후 1만 3867일이 경과한 날 부상한 낯선 여자가 이곳 안전시설에 찾아온다. 그러면서 모녀 사이의 신뢰가 흔들린다. 외부 여자의 몸에 박힌 총알이, 그녀가 마더를 쏜 총알과 동일하다고 마더는 말했다. 하지만 딸이 비교해 보니 달랐다. 낯선 여자는 살아남은 인간들을 로봇들이 몰살시킨다며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딸은 가고 싶지만 곧 탄생할 남동생을 두고 가기는 싫었다. 몇 시간 전 마더가 딸에게 선물로 주겠다며 남자 배아를 꺼내 인공생식기관에 넣었기 때문이다. 그 남동생은 24시간 내에 태어난다. 결국 딸은 낯선 여자와 함께 떠났지만, 죄책감 때문에 곧 되돌아온다. 마더는 자신을 만든 창조자인 인간의 비인간적 몰락을 보다 못해 인간을 재건하려 했다고 털어놓는다. 동생을 홀로 버려두지 않은 딸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며 임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한 마더는 결국 자신과 낯선 여자를 제거한다. 이로써 세상에는 딸과 남동생, 그리고 수만개의 인간배아만 남게 된다.

1978년 처음으로 체외수정이 성공한 이래 시험관 아기가 수백만 명 탄생했다. 몇 해 전에는 세계 최초로 인공 여성생식기관이 완성되기도 했다. 인공 생식은 아직 성공률이 낮고 비용이 많이 든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되고 있어서 미래에는 영화 내용이 실현 불가능한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이 떠올랐다. 파이어스톤은 이 책에서 생물학적 가족을 ‘착취의 기생충’이라고 지적하며 인공 생식과 함께 생물학적 가족의 붕괴를 강조한다. ‘페미니스트 혁명의 최종목적은 남성 특권의 철폐뿐만 아니라 성 구분 그 자체를 철폐하는 것이어야 한다. 종족의 생식은 인공 생식으로 대치될 것이다. 노동 분업은 (인공두뇌를 통해) 노동을 완전히 철폐함으로써 종식될 것이다. 그리하여 생물학적 가족의 압제는 붕괴될 것이다. 가족을 해체하면 성적 억압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 파이어스톤의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를 비롯한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 과연 우리가 그리는 유토피아의 모습일까? 물론 페미니스트 중 다수는 이런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다.

▲ 마더 로봇과 딸이 인간배아를 살펴보고 있다.(영화 ‘나의 마더’ 스틸 이미지)

가부장제가 여성을 억압해 왔다는 진단은 타당하다. 결혼 출산 파업의 책임은 여성보다 남성들이 더 많이 져야 하는 것도 맞다. 남성들이 더 빨리 변해야 한다. 그러나 처방은 현명해야 한다.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양성평등을 조속히 이뤄내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어야 한다. 결혼 출산 무용론이나 가족 해체를 주장하는 자멸행위는 위험하다. 우리 모두가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환경 보호와 함께 양성평등 실현을 서둘러야겠다.

▲ 김주혁 미디어파인 주필

[김주혁 미디어파인 주필]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전 서울신문 선임기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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