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울프’(1994)는 ‘졸업’의 마이크 니콜스가 연출하고 연기파의 대명사 잭 니콜슨이 주연을 맡은 호러 영화이다. 니콜슨의 명연기도 훌륭하지만 당시 30대 중반의 나이로 가장 빛나는 미모를 뽐낸 미셸 파이퍼의 충만한 매력을 감상하는 게 덤이다. 50대의 윌(니콜슨)은 뉴욕 유력 출판사의 편집장이다.

억만장자 알든이 출판사를 인수하는 중이고, 윌의 후배 스튜어트(제임스 스페이더)가 편집장 자리를 노려 그에게 아부하고 있다. 윌은 출장 갔다 돌아오는 한밤 시골길에서 늑대를 친 뒤 차에서 내려 확인하다가 손을 물린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다행히 광견병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는다.

자신의 대저택에 출판사 직원을 초청해 파티를 연 알든은 윌을 불러 동유럽 시장을 개척하라며 사실상 좌천 혹은 해고를 통보한다. 윌은 시각, 청각, 후각 등이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되면서 갑자기 체력이 상승한다. 게다가 정신적으로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진다.

하지만 낮에서 밤으로 변하는 시각에는 몸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기도 한다. 바로 그 시각 우연히 마주친 알든의 딸 로라(파이퍼)의 도움을 받은 인연으로 친해진다. 로라는 상류층 문화의 가식을 강요하는 아버지에게 질려 어려서부터 반항하며 자랐고, 현재 역시 일탈을 추구하는 삶을 산다.

그녀는 거칠지만 인간미가 넘치고, 강해 보이지만 어딘지 약점이 노출되는 윌에게서 묘한 매력을 느낀다. 아내 샬롯의 옷을 옷장에 걸려던 윌은 이상한 향수 냄새를 맡고는 스튜어트의 집으로 달려간다. 말리는 스튜어트의 손을 문 뒤 그의 집 문을 열고 샬롯을 발견하자 짐을 싸서 호텔에 투숙한다.

윌은 자신이 늑대 인간이 된다고 로라에게 고백하고, 로라는 윌의 방에서 함께 자며 그렇게 연인이 된다. 다음날 아침 경찰이 찾아와 샬롯이 목이 물어뜯긴 채 살해당했다며 윌의 알리바이를 추궁하는데. 늑대 인간을 소재로 한 스릴러인데 현대 사회가 만든 각박한 가족 관계, 대인 관계를 묻는다.

윌은 밤이 되면 늑대 인간이 되어 거리로 나가 사냥을 하거나 살인을 하지만 아침에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의 몸에 남은 흔적들로 제 야행을 깨달은 그는 전문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전문가는 오히려 자신을 물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윌에게 “인간이 숲에서 벗어나서 살게 된 게 고작 2만 5000년밖에 안 되었다.”라고 충고한다.

가장 큰 메시지는 ‘자연을 떠난 인간이 자본주의 세계를 구축하고 얼마나 사악해졌나?’이다. 알든은 30년 동안 회사를 위해 몸 바쳐 일한 윌을 하루아침에 해고한다. 그동안 겉으로는 ‘제일 존경하는 선배’라며 윌에게 아부했지만 상황이 변하자 알든에게 빌붙어 모사를 꾸민 스튜어트가 배후에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튜어트는 심지어 샬롯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 자신의 멘토나 멘티라고 믿었던 직장 동료, 혹은 업계의 친구들이 알고 보면 죄다 자신의 경쟁자였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늑대에게 물리기 전의 윌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가장이었다. 일에 지쳐 가족에게 소홀하고, 아내와의 잠자리가 소원해진 남자. 하지만 가정을 지켜야 하기에 해고의 불안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그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더 불철주야 회사 일에 전념해야 하는 워커홀릭.

이런 무기력하고 나약하기만 한 모습은 현대 사회의 전형적인 가장들이다. 그런데 늑대에 물린 후 달라진다. 돌발적으로 아내와 뜨거운 시간을 갖는가 하면 회사에 출근도 안 한 채 하루 종일 잠을 자기도 한다. 알든 앞에서 작아지기만 했던 태도에서 돌변해 그를 압박해 유리한 근로 계약을 맺기도 한다.

이는 사주와 노동자, 간부와 평사원 간의 ‘갑을’ 관계가 전복된 모습이다. 바로 모든 노동자가 꿈꾸는 구도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능력에 따른 보수를 받고, 인격에 따른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와 직장. 하지만 그건 현실에서는 정말 한낱 꿈일 따름이다. 현대 사회에서 소시민이 갈구하는 최소한의 니체의 ‘가치전도’임에도 불구하고.

억만장자인 알든은 행복할까? 로라와 윌의 대화에 따르면 로라가 12살 때 엄마는 죽었고, 유일한 혈육인 남동생은 지난해 자살했다. 그는 경계성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었다. 감정과 자아가 현저하게 불안정해 대인 관계가 원만치 않은 병. 분노 조절 장애가 있고, 충동적이며, 자기 파괴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을 것에 대한 공포감, 만성적인 권태감, 공허감을 느낌으로써 자해 행동이 반복되고 급기야는 자살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부잣집 도련님’이 왜 이런 병에 걸렸을까? ‘공주님’(로라)은 왜 사춘기에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리다 경찰서를 들락날락했고, 왜 윌 같은 남자에게 끌릴까?

알든은 자식들에게 상류층으로서의 품격과 권위를 지킬 것을 강요했을 것이다. 그 격식은 곧 가식이었을 것이다. 로라가 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인류의 고향은 자연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구축한 문화와, 이룩한 문명은 풍요와 안락을 가져다주었을지언정 자연에서 누렸던 자유는 박탈했다.

많은 철학자들은 신을 자연 혹은 우주로 정의한다. 최선의 법을 자연법으로 상정한다. 알든은 “자네의 독특한 취향과 개성은 걸림돌.”이라고 말하고, 윌은 “예술은 죽고 우리는 지쳤다.”라고 말한다. 돈과 체제에 익숙해져 자연법을 망각한 인류에게 경고하는 장엄한 메시지이다. 특히 마지막 충격의 반전이 그렇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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