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SF 소설의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칭송받는 프랭크 허버트의 ‘듄’은 1984년 컬트의 거장 데이비드 린치가 ‘사구’로 영화화했지만 흥행에 참패했다. 현재 국내 극장가에는 21세기의 대표적인 천재 감독 중 하나인 드니 빌뇌브가 리메이크한 ‘듄’이 상영 중이다. ‘사구’와 달리 연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린치는 4시간짜리로 찍은 뒤 3시간짜리까지 타협했지만 유니버설 등 투자자들은 2시간짜리를 고집했고, 결국 141분으로 개봉되는 바람에 내용이 많은 면에서 설득력을 잃었다며 ‘듄’은 서막임에도 무려 155분이다. 설명이 충분하다. 카이탄 행성의 샤담 4세 황제가 다스리는 서기 10191년의 우주.

칼라단 행성의 레토 아트레이디스(오스카 아이삭) 공작과 기디프라임 행성의 하코넨(스텔란 스카스가드) 남작은 숙적 관계이다. 아라키스라는 사막 행성에서 생산되는 스파이스라는 가스는 생명을 연장시키고 의식 세계를 확장시킬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우주여행을 가능하게 만드는 매우 귀중한 자원.

아라키스에는 언젠가 퀴자트 하더락이라는 구원자가 나타나 참된 자유를 찾아 줄 것이라는 오랜 예언을 믿으며 숨어 사는 프레멘 종족이 있다. 스파이스에 의해 4000년 동안 진화한, 항해자로 구성된 우주여행조합은 황제의 권위 밖의 인물들로 황제에게 레토와 그의 아들 폴(티모시 샬라메)을 죽일 것을 압박한다.

레토는 황제 자리에 오르기 위해 정략결혼을 했지만 실질적인 결혼 생활은 사랑하는 베네 게세리트 수녀 제시카(레베카 퍼거슨)와 하며 폴을 얻었다. 아라키스는 그동안 하코넨이 지배해 왔지만 황제는 아트레이디스가 지배할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그건 세력이 확장하는 레토를 없애려는 황제와 하코넨의 음모.

내부의 배신으로 충신 던컨(제이슨 모모아)과 거니(조슈 브롤린)가 희생되는 가운데 결국 레토는 하코넨의 손에 죽는다. 생포되었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제시카와 폴은 사막 속으로 도망가서 몸길이 300~400m에 이르는 모래충을 피해 스틸거(하비에르 바르뎀)가 영도하는 프레멘 무리에 합류하는데.

이 영화는 방대한 원작을 여는 서막에 불과함에도 린치의 ‘사구’와의 비교를 거부하는 거대한 스케일과 발전한 기술, 그리고 드뇌브의 강력한 철학이 빛을 발한다. 향후 어떻게 발전하고 전개될지 벌써부터 기대감을 부풀리는 관객들이 많은 게 그 증거이다. ‘사구’에서 어색했던 액션의 진일보가 우선 보기 좋다.

SF ‘액션’을 제대로 구현했다. 잠자리를 연상케 하는 헬기도 인상 깊다. 전체적으로 사막 그 자체를 주인공 삼아 하나의 거대한 서사시를 커다란 화폭에 옮긴 듯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사막의 풍경화 같다. 최소한 사막에 대한 헌시, 즉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찬사만으로도 값어치를 발휘한다.

스파이스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향신료 혹은 석유를 의미한다. 왜 하필 사막 행성인가? 그곳은 중동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뿌리가 같은 세 일신교의 성지. 프레멘의 대화에서는 노골적으로 지하드(성전)와 구원자라는 단어가 거론되고는 한다.

그 구원자는 유대교의 메시아이다. 다수의 민속 신화에 깃들어 있는, 구속된 현실로부터 해방시켜 줄 구원자인 것이다. 린치가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를 통한 미국의 조작된 신화를 이으면서 미국의 중동 간섭을 노골적으로 합리화했다면 프랑스 피가 섞인 캐나다인 빌뇌브는 중심을 유럽으로 가져왔다.

레토의 칼라단 집에는 투우를 소재로 한 예술 작품이 눈에 띈다. 심지어 아라키스로 이동하기 위한 짐을 쌀 때는 황소 머리 작품을 포장한다. 또한 아라키스에 입성할 때의 제의 시작은 스코틀랜드의 백파이프 연주를 앞세운다. 즉 아트레이디스 가문은 서로마 제국의 지배자를 은유한다.

아라키스는 당연히 바빌로니아를 중심으로 한 중동을 비롯해 광의적으로는 터키와 이집트, 인도까지 포함한다. 하코넨은 독일로 추정된다. 프랑스가 제일 싫어하는 나라는 한때 형제였던 독일이므로. 린치가 워낙 원작이 가진 철학적 메시지를 잘 구현했기에 빌뇌브는 원작에 충실하면서 비주얼에 주력했다.

중국 무협지와 서양 신화가 가진 구조에 우리의 ‘홍길동’(폴은 첩인 제시카의 후실이다.)까지 빌려온 이 영화는 ‘반지의 제왕’에 이은 영웅 서사시의 새로운 전범이 될 만큼 거의 모든 면에서-아직까지는-완벽에 가깝다. 빌뇌브는 ‘블레이드 러너 2049’로 ‘블레이드 러너’의 가치를 재조명하게 만든 뒤 ‘듄’으로 SF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

서기 10191년인데 정치는 역행해 고대 혹은 중세의 유럽의 황제가 다스리는 정치적 구조를 보인다. 그런데 정작 황제마저도 움직이는 실권자는 우주여행조합이다. 그 길드는 현대 자본주의가 낳은 재벌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들은 스파이스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프레멘만큼은 다르다.

그들의 최고 가치관은 바로 물이다. 스파이스는 자본, 과학, 기술, 권력 등을 의미한다. 물은 모든 생명체가 공통적으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생명의 필수적, 기초적 자원이다. 탈레스가 말한 만물의 근원이다. 아마 모든 생명체의 필수 자원이라는 물의 정체성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불변의 진리일 것이다.

베네 게세리트는 언어로써 사람을 조종하고 음파를 총보다 강력한 무기로 활용하는 기술을 지녔다. 말과 소리가 이토록 강력한 무기라는 설정은 사람이 언어를 가짐으로써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어서 진화할 수 있었다는, 언어 철학의 힘에 대한 메타포이다. 빌뇌브는 이 시대 영화 팬들에게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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