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픽사베이

[미디어파인 칼럼=박병규 변호사의 법(法)이야기] 혼인빙자간음죄라는 죄명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에 대해 처벌하는 죄로 형법 제304조에 규정되어 있었는데, 2009년 11월 26일 위헌판결을 받아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혼인빙자간음죄는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우리 법원은 상대 여성에 대한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등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유부남인 사실을 숨긴 채 소개팅 어플로 만난 여성과 1년 넘게 사귄 30대 남성에게 상대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 침해를 이유로 3,000만원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미혼 여성인 A는 2019년 7월 소개팅 어플로 만난 30대 남성 B와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B와 결혼을 전제로 진지한 만남을 이어오던 A는 2020년 9월 뒤늦게 B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A는 B가 결혼 사실을 숨기고 미혼인 것처럼 행세하며 자신을 만났다는 사실에 충격과 불안 등을 호소했고, 결국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습니다.

이후 A는 B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3단독은 A가 B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B는 위자료 3,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했습니다(2020가단5272120).

재판부는 "사람이 교제 상대를 선택하고 그 범위를 정하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할 수 있고, 그 중에는 상대방의 혼인 여부나 상대방과의 혼인 가능성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러한 사항에 관해 적극적 혹은 소극적 언동을 통해 허위사실을 고지하는 방법으로 상대방을 착오에 빠뜨려 성행위를 포함한 교제 관계를 유도하거나 지속하는 행태는 기망으로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전제한 후,

"혼인빙자간음죄가 폐지됐다고 해서 이러한 행위에 따른 민사적 책임마저 부정될 수는 없다. B는 A를 기망해 A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고,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안겨줬다고 볼 수 있어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나아가 "기망의 수단과 방법, 교제 기간, A의 연령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A의 정신적 고통에 상응하는 위자료 액수는 3,000만원으로 정함이 타당하다. 설령 B의 주장처럼 A가 B의 혼인관계를 인식했거나 인식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이 B의 불법행위 성립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한편 재판부는 B가 제기한 반소에 관해선 "A가 정체불명의 남성과 동행해 B의 주거지를 찾아가 현관문에 '연락하라'는 쪽지를 남기고, B의 배우자에게 연락해 자신들의 관계를 알려준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 B의 A에 대한 기망 행위와 그로 인한 A의 정신적 고통을 고려하면, A의 행위가 B에 대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거나 사회상규를 벗어난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위 판결은 몇가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상대방의 혼인 여부나 상대방과의 혼인 가능성에 관해 적극적 혹은 소극적 언동을 통해 허위사실을 고지하는 방법으로 상대방을 착오에 빠뜨려 성행위를 포함한 교제 관계를 유도하거나 지속하는 행태는 기망으로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점”,

두 번째는, “이 사건의 경우, 기망의 수단과 방법, 교제 기간, A의 연령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A의 정신적 고통에 상응하는 위자료 액수를 3,000만원으로 정했다는 점”,

세 번째는, “A가 B의 혼인관계를 인식했거나 인식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이 B의 불법행위 성립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점”,

마지막으로 “A가 정체불명의 남성과 동행해 B의 주거지를 찾아가 현관문에 '연락하라'는 쪽지를 남기고, B의 배우자에게 연락해 자신들의 관계를 알려준 사실이 있더라도, B의 A에 대한 기망 행위와 그로 인한 A의 정신적 고통을 고려하면, A의 행위가 B에 대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거나 사회상규를 벗어난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 이라 할 것입니다.

위자료의 액수가 점차 증액되고 있는 점, A가 B의 혼인관계를 인식했다고 하더라도 B의 불법행위 성립을 인정한 점 등에서, 법원이 점차 이러한 사건에서 손해배상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 박병규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박병규 변호사]
서울대학교 졸업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제37기 사법연수원 수료
굿옥션 고문변호사
현대해상화재보험 고문변호사
대한자산관리실무학회 부회장
대한행정사협회 고문변호사
서울법률학원 대표
현) 법무법인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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