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폴 앤더슨 감독은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감독, 제작자이자 밀라 요보비치의 남편으로 유명하지만 초창기 ‘이벤트 호라이즌’(1997)이라는 호러 SF 걸작을 남기기도 했다. 서기 2040년. 광속보다 빠른 속도로 우주를 여행하던 탐사선 이벤트 호라이즌이 실종된다. 7년 후 그보다 작은 우주선 루이스 앤 클락이 파견된다.

호라이즌에서 희미하게 생존 신호를 확인한 미국 우주국이 여러 가지 의문점과 생존자 확인을 위해 보낸 것. 선장 밀러(로렌스 피시번)를 리더로 한 이 구조대에는 이벤트 호라이즌을 제작했던 위어(샘 닐) 박사도 포함되어 있다. 밀러와 대원들은 이벤트 호라이즌에 승선하는데 생존자는 없다.

저스틴이 중력 구동기에 흥미를 느끼고 빨려 들어갔다 구조된 후 혼수상태에 빠지더니 자살을 시도한다. 밀러를 비롯한 모든 대원들이 환영이나 환청에 시달린다. 대원들은 박사에게 해명을 요구하지만 박사는 뭔가 숨기는 듯하다. 결국 대원들은 이 탐사선이 살아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항해 일지를 발견하고 그 안에 녹음된 대화를 해석하던 중 “이 지옥에서 당신들을 구하라.”라는 라틴어인 걸 알게 된다. 밀러는 모두에게 철수 명령을 내리지만 위어가 클락에 폭발물을 설치하는 바람에 호라이즌에 갇히게 된다. 아들 환영에 이끌린 피터스가 추락사하고 쿠퍼는 우주 미아가 된다.

사실 호라이즌은 차원과 차원 사이에 구멍을 뚫어 블랙홀을 만드는 중력 구동기에 의해 순간적인 공간 이동을 하는 우주선이었다. 그래서 카오스 차원으로 넘어가 강력한 힘을 얻어 생명력을 갖추게 되었고, 생존 신호는 바로 호라이즌 자체가 발산하는 것이었다. 대원들이 겪은 환영과 환청은 호라이즌이 만든 것.

자신이 만든 호라이즌에 강한 집착을 가진 위어는 중력 구동기를 통해 차원 반대편 우주 미지의 세계에 매료되어 대원들을 그 차원으로 함께 끌고 가려고 한다. 심지어 그는 호라이즌으로부터 초인적인 힘을 얻는다. 그는 악마가 되어 대원들을 하나, 둘씩 죽이고 밀러는 그를 필사적으로 막는데.

이 영화는 ‘고스트 쉽’(2002)이나 ‘헌티드 맨션’(2004) 같은 우주의 유령선, 즉 물령화를 소재로 한다. 물령화는 사람에게 다른 영혼이 깃드는 빙의 현상처럼 물체나 물건에 영혼, 영체, 정령 등이 깃드는 현상을 말한다. 호라이즌은 워프를 통해 우주의 끝에 갔다 왔고, 거기서 어둠의 힘이 빙의된 것이다.

이 작품은 교묘하게 과학과 종교를 동시에 비웃는다. 과학적으로 우주의 끝은 증명된 바 없다. 종교적으로 사후 세계는 천당과 지옥으로 나뉜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게 아니고 우주의 끝은 암흑의 세계인데 그게 바로 지옥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은연중에 천당은 없다고 외치는 듯하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다. 위어는 일에만 몰두하느라 아내를 외롭게 만들어 결국 자살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과 그리움에 괴롭다. 밀러는 이전 탐사 때 불에 타죽은 한 대원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피터스는 남편과 이혼한 뒤 홀로 키운 아들의 아픈 다리를 고쳐 주지 못한 죄악감에 사로잡혀 있다.

인간을 파괴시키려는 악마는 있는데 그게 종교가 이야기하는 사탄 같은 것과는 다르다고 이 영화는 웅변한다. 신이든, 악마든 그 형상은 그동안 인간의 종교가 주장해 온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고.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에서 주장한 것처럼 특정한 형상이 아닌, 특수한 현상일 수도, 다른 차원일 수도 있다고.

이 영화는 과학과 철학에 관심이 없다면 굉장히 지루하거나 매우 잔인해서 기분이 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단순히 귀신 들린 집이나 유령선의 포맷을 우주선으로 가져온 것을 떠나 악과 지옥, 혼돈의 우주를 새로이 설계했기 때문이다. 과연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하나의 별에는 여러 개의 행성이 딸려 있다. 하나의 은하에는 1000억 개의 별이 있고, 우주에는 그런 은하가 1000억 개가 있다. 인류가 멸망하기 전에 우주의 끝을 찾아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블랙홀과 워프로 간단하게 우주의 끝에 다녀온다. 종교에서 지옥이라 말하는 곳이다.

또한 사상가들이 혼돈(카오스)의 세계라고 말하는 곳이다. 이 작품을 좋아하는 관객의 충성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라 리부트 등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조금 더 심오하게 리메이크한다면 ‘카오스’, ‘가이아’, ‘에로스’라는 삼위일체론의 수많은 신화까지 접목하는 트릴로지 방식도 괜찮을 듯하다.

앞부분에서 위어는 “원리를 깰 수는 없지만 우회는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이 영화가, 혹은 이 영화의 과학적 논리가 웅변하고자 하는 주제일 듯하다. 워프 논리가 바로 그렇듯. 위어는 뒷부분에서 스스로 눈을 파낸다. 그는 호라이즌과 함께 혼돈의 세계로 가려 하는데 그곳에선 시력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는 ‘매트릭스’ 끝부분에서 네오가 보여 준 ‘마음의 눈’의 철학이다. 이 영화는 굉장히 과학적인 듯하지만 의외로 유물론을 반대하고 관념론의 손을 들어 주는 경향이 짙다. 동력 구동기는 과학의 힘이 위어의 손을 거쳐 작용해 만들어졌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조종한다.

그런 조종의 근간은 인간 내면의 약점이고, 그 약점은 자책감 혹은 양심의 가책이다.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천당은 없고, 오직 혼돈의 세계만 있다고 설정한 것이다. 왜? 어차피 현실 세계 역시도 유쾌함과 행복함보다는 불쾌함과 불편함이 더 많으니까.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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