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픽사베이

[미디어파인 칼럼=한의사 홍무석의 일사일침(一事一針)] “걔네 엄마는 손이 커서 어떤 음식을 해도 정말 장난이 아니냐.” 이렇게 말하면 손 크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 마음 씀씀이가 넉넉해서 음식을 많이 준비한다는 뜻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동네 사람 다 먹일 수 있을 만큼의 스케일을 보인 엄마 일화가 대표적이다.

큰 손이 긍정 의미라면, 큰 발은 의미가 다르다. 발이 크면 빨리 달아날 수 있겠다는 뜻에서 도둑발이라고 한다는데, 의외로 발 크기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거 같다. 심지어 “여자가 보기 흉하게 왜 그렇게 발이 크냐”는 핀잔에 주눅 들었다는 하소연을 본 적 있다.

손 발 뿐 아니라 간이 커도 문제인걸까. 1990년대에는 아내 눈치 보고 사는 공처가들을 풍자한 ‘간 큰 남자’ 시리즈가 크게 유행했다. 여성들의 급격한 사회 진출로 가부장 문화를 허물어뜨리는 데 일조(?)했을 법한 썰렁 유머였는데, 그 인기는 대단했다.

대표적인 시리즈로 이런 게 있었다. “20대 밥상 앞에서 반찬 투정하는 남자, 30대 아침밥 달라는 남자, 40대 외출할 때 어디 가냐고 묻는 남자, 50대 아내가 야단칠 때 말대답을 하거나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는 남자, 60대 퇴직금 어디 썼는지 물어보는 남자, 70대 아내가 외출할 때 같이 나가자고 하는 남자”

간 큰 남자 시리즈가 얼마나 유행했던지, 1995년도에는 같은 이름의 책이 단행본으로 나왔고 가수 김혜연은 음반을 냈으며, KBS에서는 드라마(1995년 9월7일~11월 3일)가 방영됐다. 드라마에는 여성의 지위가 격상 되면서 나타난 ‘간 큰 남자’의 이야기라는 설명이 달려있다.

그런데 왜 간일까. 간은 한의학에서 말하는 오장(五臟)의 하나로, 심(心) 폐(肺) 비(脾) 간(肝) 신(腎)-이렇게 다서 모두 중요한데, 왜 사람들은 간이 큰 것을 얘기하는 걸까. 심장이 큰 남자, 폐가 큰 남자가 아니라 간 큰 남자라니...

▲ 사진 출처=픽사베이

그런데 의미를 곰곰 따져보면 ‘간 큰 남자’가 관용어구로 쓰이게 된 데는 한의학에 바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다시 말해 한의학을 이해하는 사람이 간에 비유하며 처음에 이 말을 했고 점점 공감을 얻어 관용어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된다.

왜냐 하면 간은 추진력을 상징하는 목(木, 나무) 기운을 가진 장기로 보기 때문이다. 오행설에 바탕으로 둔 한의학의 인식에서다. 오행설은 세계의 기초를 이루는 5가지 물질, 즉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가 생기고 그것들이 조화되어 천지 만물이 생겨난다고 보는 이론이다.

한의학은 오행설에 따라 간을 목의 기운이 강한 장기로 배속해 놓고 있다. 나무는 5가지 물질 가운데 유일한 생명체라고 볼 수 있다. 추운 겨울 언 땅에서 생명을 유지하다 봄이 되면 딱딱한 껍질에서 잎사귀가 돋아나는 게 나무다.

동량지목(棟梁之木)이란 말이 있는데, 짓고 있는 집의 기둥이나 대들보가 될 만한 큰 나무라는 뜻이다. 나무로 큰 집을 짓듯이 간도 우리 몸을 구성하는 중요한 장기여서 목에 배속했다고 볼 수 있다.

옛날 사주에서도 목 기운이 강하면 추진력이나 결단력이 높다고 풀이했다. 결국 그 추진력을 빗대 간이 크다고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의학과 오행설을 이해하지 못하면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이었을 것이다.

다만 속어로 쓰이는 ‘간덩이가 부었다’라는 표현과는 구별돼야 할 거 같다. 간이 부은 거는 이상 증세이고, 뭐가 문제가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추진력보다는 무모한 행동을 탓하는 표현에 가깝다. 반면, 연말연시만이라도 불우한 이웃에 손을 내미는데 간이 커져 볼 일이다. 

▲ 한의사 홍무석

[홍무석 한의사]
원광대학교 한의과 대학 졸업
로담한의원 강남점 대표원장
대한한방피부 미용학과 정회원
대한약침학회 정회원
대한통증제형학회 정회원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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