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로 인간의 손맛 건축에 입히다 [문화지평 답사 아카이브]

문화지평l승인2021.12.27l수정2021.12.2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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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지평은 서울시 건축문화활성화사업 ‘김중업과 김수근, 현대건축 1세대 궤적을 쫓아서’를 진행했다.

[미디어파인 칼럼=김중업과 김수근, 현대건축 1세대 궤적을 쫓아서] 문화지평은 김중업과 김수근의 건축유산을 둘러보는 서울시 건축문화 활성화사업을 수행했다. 이번 사업은 도시인문콘텐츠·디지털 헤리티지 아카이빙 전문단체인 문화지평이 서울시 건축기획과의 후원으로 ‘김중업과 김수근, 현대건축 1세대 궤적을 쫓아서’란 주제로 진행했다. 7회 차 답사는 덕성여대 캠퍼스 조성의 초석을 닦은 김수근의 예술관·자연관·도서관 등 작품군을 소개한다. 답사는 10월2일 오전 9시 배건욱 해설사 해설로 시작했다.

김수근 만의 작품세계 구축된 70년대 작품

▲ ①1967년 덕성여대 쌍문동 캠퍼스 항공사진으로 차미리사 묘소와 이전한 감고당이 보인다. ②1974년 대운동장과 정구장이 조성됐다. ③1979년 가정관과 약학관이 들어섰다. ④1985년 미술관과 도서관이 보인다.

1970년대는 김수근 만의 것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작품세계가 열린 시기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우리 전통건축이나 전통문화를 소화해 그가 가지고 있던 조형감각에 적절한 공간 크기와 인간적인 스케일이 어우러지는 수작들을 많이 만들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공간사옥, 서울대학교 예술관, 경동교회, 불광동성당 그리고 덕성여대 약학관, 가정관 등이 그것이다. 이 시기에는 주로 벽돌을 섬세하고 세련되게 인간의 손맛을 느끼게 사용했다.

이 시기 김수근은 외장재로 주로 붉은 벽돌을 사용했다. 공간사옥 등 몇몇 경우는 검은 벽돌을 썼다. 이는 주변 창덕궁 소재와 색을 맞추려 했기 때문이란 해석도 있다. 한국 벽돌 크기는 서양 석조 건축 것보다 작다. 이러한 재료의 크기와 비례에 따른 차이는 건물 전체의 구성에서 공간의 분절로 이어진다. 외부로 나타나지 않는 내부의 시멘트 벽돌도 같은 크기의 것을 사용했다.

벽돌 줄눈으로 토속적인 느낌을 강하게 하기도 했다. 김수근이 설계한 많은 건물에서 벽돌 두 장 두께의 벽체가 벽면에서 돌출한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를 ‘김수근의 띠’라고 부를 정도로 건축조형에 주요 모티브로 사용했다. 이는 벽면을 분절시킴으로써 매스의 육중함 대신 풍부함을 가져다준다. 또 하나는 건축에 정면성과 방향성을 부여해 준다는 점이다. 김수근은 사람들이 멀리서 건물을 보고 출입구를 찾지 못하면 실패한 작품이라고 자주 되뇄다고 한다.

전통의 조형의식과 풍토성에 적합한 재료인 벽돌이 70년대의 김수근의 주 언어였다. 그는 벽돌이 지니고 있는 조소성과 한 장씩 손으로 쌓아야 하는 인간적인 스케일, 구하기 쉬운 재료였다는 점에서 좋아했다. 그는 벽돌의 거친 텍스처가 한국인의 기호에 맞아떨어진다고 했다. 그의 벽돌건축은 재료의 본성을 구조적인 역할보다는 표면의 질감에 두었다. 이를 통해 전통의 구현과 휴먼스케일이라는 자신의 건축개념을 실현했다는 해석이 있다.

건물에 사용된 벽돌은 구조재가 아니라 마감재라는 것이다. 즉 철근 콘크리트 라멘조에 치장벽돌을 쌓는 방식이다. 그는 구조와 기능이 외관에서 정직히 표현돼야 한다는 근대건축의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지 앓았다. 오히려 외장재는 건물의 피부라는 개념을 선호했다. 구조체는 건물을 지탱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인간이 실제로 건물에서 느끼는 부분은 건물의 피부 껍데기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수근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벽돌의 거친 느낌과 한 장 한 장 손으로 쌓아야 하는 과정이 상징하는 인간적인 따뜻함을 나는 사랑한다”고 말했다.

▲ 덕성여대 초기 마스터플랜과 현재 건축물이 들어선 모양을 겹쳐보았다. 위치는 거의 같지만 가정관과 약학관이 형태는 조금씩 다르게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쌍문동 덕성여대 캠퍼스 조성과 관련해서는 이 학보에 실린 이 학교 문은미 실내디자인학과 교수의 글에 매우 세밀하게 정리돼 있다. 문 교수 글에 따르면 쌍문동 캠퍼스의 근간이 된 마스터플랜은 미국의 건축가 제임스 패덕에 의해 완성됐다. 패덕은 1971년 서울대 관악캠퍼스 마스터플랜 자문을 위해 구성된 미국의 캠퍼스용역단 일원으로 참여한 인물이다.

당시 대학들은 장기발전계획에 기초한 마스터플랜 없이 무계획적인 캠퍼스 확장에 몰두했던 때다. 반면 덕성여대는 마스터플랜에 의해 계획적으로 캠퍼스를 조성했다. 문 교수는 “1977년 3월 발표된 패덕의 마스터플랜은 전형적인 서구 대학캠퍼스의 마스터플랜 성격을 보여주는데, 대학의 핵심 건물이라 할 수 있는 행정본부, 도서관, 학생회관 이 교지의 중심에서 광장(현 민주광장)을 둘러싸도록 구성한 점, 개별 건물들이 학과의 유사성에 따라 마당을 공유하면서 하나의 소규모 커뮤니티를 형성하도록 계획된 점에서 그 특징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쌍문동 캠퍼스 계획의 핵심은 교지 서쪽의 백운대, 인수봉에서 북쪽의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수려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또 현존하는 자연을 보존하며 주변 녹지와 대학 건물이 조화되도록 고려한 것이다. 우리 대학에서 친환경 캠퍼스의 원칙은 이때부터 적용되고 있었으며 건물의 높이를 3~4층으로 제한했던 당시의 원칙 또한 일부 기숙사 건물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유효하다”고도 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건축 마스터플랜이었던 셈이다.

김수근은 패덕과 서울대학교 예술관을 설계하면서 쌓았던 친분으로 덕성여대 설계에 참여했다. 문 교수는 “약학·가정관은 부지에 원래 있던 벚나무와 단풍나무들을 가능한 보존하고 이 나무들을 둘 건축가가 쌍문동 캠퍼스의 첫 번째 건물을 설계한 것은 우리 대학의 고유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앞으로 지어질 건물설계를 위한 형태와 공간계획의 원칙을 제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덕성여대 약학‧가정관(자연관)

▲ 지금은 자연관이란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는 약학‧가정관 전경.

1976년 완공된 철근콘크리트조의 학교건축물로 1979년 제1회 한국건축가협회상 수상작이다. 건축가 김수근이 서울대학교 예술대학에 적용시킨 캠퍼스 플랜을 응용하되 문제점을 보완해 설계한 건물이며 캠퍼스 건축 시리즈의 정립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덕성여대 쌍문동 캠퍼스에서 초기에 지어진 건물이 자연관(가정약학관), 예술관(미술학관), 도서관이다. 이 3개의 건물은 김수근 캠퍼스 건축 시리즈의 백미라고 일컬어진다. 각각 다른 건물이지만 사실은 연결되어 있는 구조로 건축됐다. 김수근이 설계한 대학 캠퍼스 플랜의 주요 특징들은 그 후에도 많은 건축가들에 의해 대학 캠퍼스 계획의 주요 레퍼런스로 채택됐다.

덕성여대 자연관(가정약학관)은 지하1층, 지상3층의 ‘ㅁ’자형의 중정형(비엔나숲) 건축물이다. 건물 중앙에 펼쳐진 중정은 특히 가을이면 타는 듯한 붉은 단풍으로 장관을 연출한다. 김수근 은 처음 캠퍼스를 설계할 때부터 단풍나무와 벚나무가 우거졌던 숲을 보호하기 위해 힘썼다.

김수근은 중정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의 층수를 제한했다. 이는 교육적, 경제적 이유가 들어 있었다. 이 때문에 건물의 평면적 확산이 불가피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설의 집중화와 내정(內庭) 계획이 시도됐다. 건물배치도 불규칙하게 이루어지도록 했다. 건물 매스들도 분절시켜 사용자를 압도하지 않게 했다.

밖을 향해 내다보았을 때 멀리서 캠퍼스를 감싸고 있는 산들이 조망될 수 있도록 1층의 일부가 필로티로 꾸며졌다. 자연적 개방감이 있도록 중정을 만든 것이 큰 특색이다. 전체는 붉은 벽돌을 장식 없이 단순하고 경쾌하게 쌓아 올렸다. 높지 않은 건물에 단풍나무 숲을 안마당에 살려서 조용하고도 아늑한 분위기를 갖게 했다는 평이다.

서울시는 “서울대 예술대학에 적용시킨 프로토타입을 응용해 캠퍼스 건축 시리즈의 변천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으로 보존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덕성여대 미술학관(현 예술관)‧도서관

▲ 현 예술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미술학관 전경.

예술관은 약학‧가정관에 이어 1982년 준공됐다. 2010년 1층 근린생활시설을 증축했고 2012년 건축물 명칭을 미술대학에서 예술관으로 바꿨다. 붉은 벽돌 등의 특징적 요소들로 인해 건축사적으로 의미가 높다고 평가되고 있는 건축물이다. 김수근이 서울대 예술대학에 적용시킨 캠퍼스 플랜을 응용하되 문제점을 보완해 설계한 건물이며 캠퍼스 건축 시리즈의 정립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대학의 중앙부는 남쪽으로 있는 캠퍼스에 접하며 강의동으로는 제일 남쪽에 위치하는 이 건물은 서쪽으로 백운대의 경관을 받아들여 중앙에 다목적의 마당을 형성했다. 남, 동, 북으로 세 개의 동을 구획해 ‘ㄷ’자 모양의 선적인 기능을 갖추되 공동의 장소가 될 수 있는 중앙을 형성했다. 도서관은 2012년에 건축물 명칭을 덕성여대 제1호(도서관)에서 덕성여대 도서관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현재 건물 전체를 도서관 및 연구실로 이용하고 있다.

▲ 도서관 전경과 건축문화기행 답사단 단체사진. 코로나 시기라서 교내 출입을 못하고 교문 앞에서 기록을 남겼다.

<참고문헌>
-김수근문화재단 홈페이지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
- 덕성여대신문(2018), [미리 보는 덕성 100년사]쌍문동 캠퍼스의 건축가들, 문은미(실내디자인학과) 교수 

[문화지평]

서울시비영리민간단체(도시문화콘텐츠연구·답사‧아카이브 전문단체)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2016), 역사도시 서울답사(2017), 서울 구석구석 톺아보기(2018), 2천년 역사도시 서울 진피답사(2019), 서울미래유산 시장 관광자원화 아카이빙(2019), 서울 첫 종교건축물과 주변 근대 건축물 답사‧아카이빙(2020), 물길 따라 점·선·면으로 잇는 서울 역사(2021), 김중업과 김수근, 현대건축 1세대 궤적을 쫓아서(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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