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쓸개도 없다 [홍무석 칼럼]

홍무석 한의사l승인2021.12.29l수정2021.12.29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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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베테랑> 스틸이미지

[미디어파인 칼럼=한의사 홍무석의 일사일침(一事一針)] 2015년 개봉된 영화 ‘베테랑’에서 유행한 대사가 있다. 주인공 조태오 역할을 맡은 배우 유아인이 이죽거리듯 내뱉은 ‘어이없네’다.

관객들이 명대사로 꼽은 내용은 이렇다. "맷돌 손잡이가 뭔지 알아요? 그걸 어이라고 해요. 맷돌 돌리다가 손잡이가 빠지면…지금 내 기분이 그래."

‘어이’가 맷돌 손잡이라는 것인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이야기는 아니고 몇 가지 설(說)중의 하나라고 한다. ‘어이’가 절구에 넣은 음식을 빻을 때 쓰는 공이에서 나왔다는 설이 더 퍼져 있지만, 이 역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또 다른 하나는 궁궐의 기와지붕에 얹어진 동물 장식이라는 설인데, 궁궐 짓기를 마무리 하려는데 이것을 잊어버려 당황한 데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런 설이 나오는 가운데, ‘어이가 없다’는 표현은 이미 19세기 문헌에서 처음 나온다고 국립국어원은 밝히고 있다. ‘어이없다’는 ‘어처구니없다’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뜻밖의 상황에 기가 막힌다는 뜻이다.

‘어이없다’처럼 우리가 잘 쓰는 말 중에는 '□□없다'는 있지만 '□□있다'는 없는 말들이 있는데, 인체 장기(臟器)에 비유하는 관용어도 자주 쓰인다. ‘쓸개도 없이...’ ‘쓸개 빠진 놈’이 대표적이다. ‘쓸개 있는 놈’이란 표현은 없다.

우리말의 신체 장기 중에서 ‘쓸개’는 매우 독특하다. 우리 몸의 간장, 심장, 폐장, 신장, 비장 등 오장(五臟)과 대장, 소장, 위, 쓸개, 방광, 삼초 등 육부(六腑) 대개가 한자어인데 쓸개는 순우리말이기 때문이다.

물론 폐를 ‘허파’라고 하고 심장을 ‘염통’이라고 하고 위를 ‘양’이라고도 한다. 쓸개도 의학적으로 담낭(膽囊)으로 표현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쓸개가 훨씬 익숙할 것이다.

쓸개는 간장에서 분비되는 쓸개즙을 일시적으로 저장하고 농축하는 주머니이다. 음식물이 들어오면 쓸개즙을 분비해 소화를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쓸개가 빠지면 왜 줏대 없는 사람으로 표현되는 걸까.

▲ 사진 출처=픽사베이

아마 오행설을 기반으로 하는 한의학의 인식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쓸개도 간처럼 추진력을 상징하는 목(木, 나무) 기운을 가진 장기로 보기 때문이다. 오행설은 세계의 기초를 이루는 5가지 물질, 즉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가 생기고 그것들이 조화되어 천지 만물이 생겨난다고 보는 이론이다.

담낭의 담(膽)은 ‘대담하다’, ‘담대하다’할 때의 그 담이다. 쓸개는 용기를 의미하는 장기인 셈이다. ‘간이 크다’고 할 때처럼 강력한 추진력을 의미한다. 그러니 쓸개가 빠졌다고 하면 결단력이 없고 생각이나 행동이 왔다, 갔다하면서 줏대를 잃었다고 보는 것이다.

쓸개라는 어휘는 ‘쓰다’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는 의견도 국어학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심한 구토를 하면 나오는 쓴 물이 쓸개즙이고,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난도 참고 이긴다는 의미의 와신상담(臥薪嘗膽)에는 땔나무 위에 눕고 쓸개를 맛보다는 뜻이 담겨 있다. ‘쓸개=쓴맛’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쓴맛도 맛 중에서는 중요한 맛이고, 쓰다고 필요 없는 것은 아닌 셈이다. 오히려 쓴맛에 빠지면 그 맛을 더 즐기기도 한다. 커피의 맛이나 나물 중에서 씀바귀가 대표적이다. 쓰디쓴 일이 많은 세상에서 쓸개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물론 ‘쓸개도 없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 한의사 홍무석

[홍무석 한의사]
원광대학교 한의과 대학 졸업
로담한의원 강남점 대표원장
대한한방피부 미용학과 정회원
대한약침학회 정회원
대한통증제형학회 정회원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홍무석 한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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