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걸후드’(2014)는 ‘워터 릴리스’(2007)와 ‘톰보이’(2020) 사이에 있는 셀린 시아마 감독의 성장 3부작 중 하나이다. 성적이 나빠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자 2년째 유급 중인 16살 소녀 마리엠. 홀어머니가 야간 청소부로 일하기에 어린 두 여동생을 돌보고 있다. 오빠 지브릴은 그녀에게 폭력적이다.

담임선생으로부터 직업계 고교에 진학하라는 압박을 받고 나온 마리엠은 레이디, 아디아투, 필리 등 세 명의 불량소녀들로부터 함께 놀자는 제안을 받는다. 파리 외곽의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마리엠은 매사에 주눅이 들어 있지만 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점점 대담해져 주머니칼도 소지할 정도.

헤어스타일도 바꾸고 가죽점퍼를 입는다. 선량한 학생들에게 현금을 강탈해 친구들과 술 파티도 연다. 또한 지브릴의 친구 이스마엘에게 반해 연인이 된다. 레이디는 한 불량소녀와의 일 대 일 결투에서 패해 의기소침해지고 심지어 아버지로부터 긴 머리를 잘리는 수모를 겪으며 친구들과 멀어진다.

그러자 마리엠은 레이디에게 패배를 안긴 소녀에게 도전해 통쾌하게 이긴 뒤 그녀의 브래지어를 잘라 레이디보다 더 큰 수모를 안겨 준다. 그러자 레이디와의 사이가 회복되고, 그 사실을 안 지브릴도 그녀에게 다정해진다. 어느 날 동생이 불량소녀들과 함께 강도질을 하려는 걸 보고 저지, 집에 데려온다.

이스마엘과의 사이를 안 지브릴이 심하게 폭행하자 마리엠은 짐을 싸 집을 나오고 범죄 집단의 보스 아부가 접근하자 그의 밑으로 들어가 마약 판매를 한다. 제 집에서 전 조직원을 불러 파티를 연 아부가 강제로 키스하려 하자 마리엠은 그와 결별하고 이스마엘을 찾아간다. 이스마엘은 결혼하자고 하는데.

‘소녀 시절’이라는 제목부터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확연하다. 동성애, 인종 차별, 성차별, 가난 등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흔하지만 매우 불편한 이슈들에 관심을 갖고 해부하거나 비판하려는 감독의 의도는 분명하다. 훈계도, 솔루션도 아니다. ‘제발 관심 좀 가져 달라.’라는 이야기이다.

파리 외곽에 사는 흑인 소녀들. 집안은 가난하고, 대부분 결손 가정이며, 부모는 자상하지 않고 폭력적이거나 억압적이거나 무관심하다. 공부를 하지 않기도 하지만 할 만한 환경도 못 된다. 교육의 필요성을 제대로 일깨워 줄 어른이 주변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늘 당장의 현실이 퍽퍽하기 때문이다.

술, 담배, 이성 교제, 쇼핑, 춤, 노래 등에 관심도 많지만 아직은 성인보다 부족한 게 많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돈이 없다. 그런 아프리카 출신 프랑스 빈민들이 출세할 수 있는 길은 프로 운동선수 아니면 연예인이지만 그런 성공은 하늘의 별 따기,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할 확률일 따름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다른 사람인 건 아니다. 상류층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똑같은 인권을 타고난 ‘사람’이다. 비록 어리고, 가난하며, 미래가 불투명하지만 자존감만큼은 상류층 사람과 다름없다. 아니, 그래서 자기애가 더욱 강렬하다. 모든 게 회의적인 패배주의자 마리엠은 세 친구를 만나 변한다.

그녀들은 “지금 순간을 즐겨라. 네가 원하는 걸 해.”라고 자신감을 심어 준다. 마리엠이 리벤지 매치에서 이긴 뒤 “너를 위해 했다.”라고 말하자 레이디는 “아냐, 너를 위해 한 거야.”라고 말하며 포옹해 준다. 엄마는 관리자에게 얘기해 마리엠에게 여름 방학 기간의 청소 아르바이트 자리를 마련해 준다.

그러자 마리엠은 관리자에게 “엄마에게 제가 필요치 않다고 말해 주세요.”라고 정중하게 거절한다. 그녀는 엄마 같은 삶을 살기를 거부한 것이다. 아버지가 왜 없는지는 설정되어 있지 않지만 이혼했든, 사별했든 그는 가정에 불충실한, 무능한 가장이었던 게 확실하다. 오빠의 가부장적 폭력은 유전일 것이다.

아부 밑에서 마약 판매를 하는 마리엠은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금발 가발을 착용하고 다닌다. 그리고 백인 상류층의 파티가 열리는 호화로운 건물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그건 상류층으로 올라가고 싶은 빈민들의 몸부림을 의미한다. 하지만 스트레이트 금발은 가발일 뿐 본래는 검은 곱슬머리.

아부의 성폭행을 뿌리치고 찾아온 마리엠에게 이스마엘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니 결혼하자.”라고 말하지만 마리엠은 “네 애 낳아 주는 게 내 인생?”이라며 거절한다. 범죄 조직의 여자 동료 모니카는 남장을 하고 다니는 마리엠을 보고 “남장을 한다고 여자가 아닌 건 아냐.”라고 충고해 준다,

마리엠이 남장을 한 건 마약 판매라는 거친 일을 하기 위해서였지 여성성을 거부하거나 비하한 게 아니었다. 그만큼 이 사회는 여자에게 불친절하고, 불리한 상황을 연출해 준다는 이야기이다. 남자라서 자랑스러울 수 없듯, 여자라서 불편해서도 안 된다. 각자의 지위가 당당해야 마땅하다는 메시지.

그건 세 친구들과 패스트푸드 식당에 있을 때 갓난아이를 업고 나타난 옛 친구가 입증한다. 마리엠이 그녀의 정체를 묻자 친구들은 “너 이전의 네 번째 멤버. 임신하면서 우리와 헤어졌다.”라고 답한다. 그 패거리가 옳다는 게 아니라 출산과 결혼이 여성의 경력을 단절시키는 이 사회를 비꼬는 것이다.

베르트랑 베르줄리는 “부당함의 세 얼굴은 무질서, 불공평, 파렴치.”라고, 파스칼은 “섭리는 섭리이기에 복종할 뿐 정당해서 복종하는 게 아니다.”라고 각각 말했다. 경제적으로 소외된 자들에 대한 이 사회의 편견과 무관심은 바로 그 세 얼굴이 아닐까? 소녀들이 리바이스를 입고 나이키를 신는 설정도 기가 막히다.

리바이스는 레비스트로스라는 프랑스 이민이 미국에서 청바지의 신화를 연 브랜드이고, 나이키(승리의 여신 니케)는 미국 흑인의 우상 마이클 조던 마케팅으로 유명하다. 결국 집으로 돌아와 초인종을 누르지만 대답 없이 뒤돌아 가며 오열하는 마리엠은 지금쯤 잘 살고 있을까, 잘살고 있을까? 아니면?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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