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땅에 드문드문 꼭꼭 숨은 미래유산 [서울미래유산 답사기]

전수정 문화지평 칼럼니스트l승인2022.01.08l수정2022.01.0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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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지평은 서울시 문화본부 문화정책과 미래유산팀 후원으로 ‘동서남북 서울미래유산 만보답사’란 주제로 네 차례 답사와 아카이빙을 진행했다.

[미디어파인 칼럼=전수정의 서울 프롬나드] 도시인문콘텐츠·디지털 헤리티지 아카이빙 전문단체 문화지평(대표 유성호)은 서울미래유산을 둘러보는 답사와 아카이빙을 수행했다. 이번 사업은 문화지평이 서울시 문화본부 문화정책과 미래유산팀 후원으로 ‘동서남북 서울미래유산 만보답사’란 주제로 네 차례 진행했다. 문화지평은 이번 사업을 통해 △시 외곽 서울미래유산 자원 탐방 답사 △동서남북 시 외곽에 산재한 서울미래유산 영상·텍스트 아카이브 △서울미래유산 어반 스케치 및 온·오프 전시활동 등 다양한 아카이빙 활동을 했다. 네 차례 답사를 1인칭 시점으로 기록한다. <편집자 주>

강남 인구분산의 시발점 고속버스터미널

▲ 80년대 강북 인구의 강남 분산을 위해 지은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초기 모습과 현재 모습. 답사팀이 고속버스터미널 옥상에서 출발 단체사진을 찍었다.

이번 답사에서는 서울미래유산이 많지 않기 때문에 다른 건축물들을 함께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강남고속버스터미널(현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의 역사에 대해 알아봤다.

1975년 3월 4일 서울시 연두순시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시 인구증가 없이 강북의 조밀 인구를 강남에 소산 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적인 방안이 깊이 연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서울시장 구자춘은 고속버스터미널의 강남 이전을 추진했다. 원래는 서울을 3개 핵심공간으로 나눠 개발하는 계획에 따라 버스터미널도 영등포와 강남, 반포 등 3곳을 개발하려고 했지만 박 대통령의 한마디에 강남으로 집중된다.

1975년 6월 27일 서울시는 도심 집중의 완화와 강남 개발을 촉진한다는 이유로 서초구 반포동 19번지에 종합버스터미널을 건설 계획 발표했다. 5만평의 부지에 고속버스터미널(3만평)과 시외버스터미널(1만평)을 짓고, 나머지 1만평의 부지에 택시 승강장과 시내버스 주차장 등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1975년 11월 초기에는 가건물 형태로 운영되다가 하차장은 1980년 9월 19일, 본관은 1981년 10월 11일에 완공해 같은 달 20일 개장했다. 그러나 교통난이 심각해지자 서울시는 시외버스터미널을 남쪽, 지금의 남부터미널로 이전한다.

완공 당시에는 3층과 5층에도 승차장이 있는 초대형 버스터미널로 서울의 명물로 꼽혔으나 승차장과 진입로를 교량이 아닌 일반 콘크리트 건물 기준으로 지었기 때문에 승차장이 버스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했다. 1988년 5층 승차장, 1992년 10월에는 3층 승차장을 폐쇄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금은 수많은 유동인구와 편리한 교통 요지로 상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은 민현식(완종합건축설계사무소)이 설계를 맡았다.

1970년대부터 서울과 지방을 잇는 버스 여객 및 화물을 수송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국내 최대, 서울의 대표적인 버스터미널이다.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종합터미널이자 ‘민족 대이동’이라 표현되는 귀성·귀경길의 중심지로 서울시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장소란 의미에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미술문화 대중화 기여 화랑도 미래유산 선정

▲ 샘터화랑은 미술문화 대중화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2019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

서울시는 지난 2019년 12월 새롭게 서울미래유산으로 미술문화 대중화에 기여해온 화랑 등 근현대 서울의 발자취가 담긴 유·무형 문화유산 16개를 선정해 발표했다. 화랑 선정 이유에 대해 시는 “시민들이 미술을 접하기 어려운 시절부터 미술작품 전시와 미술작가 발굴을 통해 미술문화의 대중화에 기여한 것이 높이 평가됐다”면서 “샘터화랑을 비롯해 통인화랑, 조선화랑, 예화랑, 샘터화랑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들 중 이번 답사지역인 남(南) 미래유산 지역에 있는 샘터화랑은 1978년 9월 엄중구 씨가 개설했다. 개설 당시는 서울 동숭동 서울대 문리대 자리였다. 1979년 5월 남관, 유영국, 이준, 문학진, 최종태 5인전을 개관 기념전으로 해서 갤러리 사업을 시작했다.

1980년대 강남 개발 붐과 함께 강남구 압구정동에 새로운 화랑가가 자리잡을 무렵, 동숭동 문예진흥원을 중심으로 한 샘터화랑은 춘추화랑, 세종화랑 등과 함께 국내 미술계를 대표하는 화랑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1990년 강남 청담동에 분원을 개설하고 1997년에는 지상 4층, 지하 1층 규모의 건물을 신축해 전시공간을 확장했다.

샘터화랑은 1980년대 초부터 전속작가를 고용하고 발굴해 지속적으로 작품 제작을 지원했다. ‘한국 현대미술사의 정립’이라는 취지를 가지고 운영된 샘터화랑은 박서보, 윤형근, 정창섭, 이강소, 전혁림, 손상기, 오세열 등 국내 작가들 외에도 미국의 찰스 아놀디(Charles Arnoldi) 등의 해외 작품도 전시했다. 박서보 작가는 최근 가장 핫한 브랜드로 2010년 이후 단색화 열풍을 이끌면서 지금은 호당 단가가 가장 비싼 인기 화가가 됐다.

뉴욕 ACAF, 멜버른 아트 페어, 중국 CIGE, 홍콩 아트페어 등 주요 국제 아트페어에 지속적으로 참여해 한국 현대미술을 세계에 알리는데 앞장섰다. 또 국내 작가들의 국제무대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데도 힘쓰고 있다. 2007년에는 중국 상해 모간산루 예술특구에 국내 갤러리로서는 처음으로 진출해 천루오빙, 첸리주 등의 중국 작가들 작품을 소개하는 가교 역할도 하고 있다.

샘터화랑은 삶과 예술철학이 작업에 고스란히 묻어 나오는 국내외 거장들의 전시를 꾸준히 개최하고 있다. 아울러 역량 있는 신진 작가 발굴과 작품 제작을 지원에도 적극적이다. 2010년 청담동에서 서초구 반포동 현재 자리로 이전한 샘터화랑은 1980년대부터 민중미술 작가와 작품을 발굴해 소개하는 등 민중미술 발전에도 기여했다.

평형 건축이 추구하는 평등 ‘서울법원종합청사’

▲ 서울법원종합청사는 건축가 김수근이 신축현상설계 공모를 통해 당선된 작품이다. 터 파기부터 건축 과정과 건축 초기 청사 앞은 여전히 무허가 판자촌이 즐비한 모습.

서울법원 종합청사 본관 건물은 1980년대 강남개발 막바지에 지어진 공공건물 청사건물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공공건축물로 신축현상설계 공모 결과 무려 28 대 1의 경쟁을 뚫고 당선된 작품이다. 가작으로는 건축문화설계연구소의 박수량·김충섭·김영섭, 금성건축연구소의 한종언, 종합환경연구소 일건의 황일언이 차지했다. 심사위원으로는 서울대 이광노, 한양대 김진일·유희준, 홍익대 강건희, 연세대 송종석 교수 등이 참여했다. 공교롭게도 김중업합동건축연구소 김중업 대표도 심사위원에 이름을 올렸다. 김중업과 김수근의 흔적을 한곳에서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건축물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건물은 1985년 설계해 1989년 지하 2층, 지상 20층으로 준공됐다. 공모 당시 고등법원과 민사지방법원, 형사지방법원, 가정법원 등 4개의 법원으로 구성돼 있다. 공모 요강은 ‘설계자의 창의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법원 기능에 맞는 합리적인 구조와 재래식 구조를 탈피한 새로운 형상을 부각하고 조형미를 나타낼 수 있도록 한다’고 명시했다. 아울러 외관은 법원의 권위를 상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수근은 “이 법원들의 법정은 저층부에 4개의 법정동으로 분산됐으며 사무실 부분은 두 개의 타워로 올라 있다. 강한 중심축을 갖는 평면은 중앙홀을 중심으로 엄격한 균제형식을 취하며 대단히 복잡한 출입등선을 기능별로 구분한다. 거대한 매스를 둘로 나누고 이들 사이에 공조기능을 수행하는 4개의 원통을 두어 이를 통합하여 조형에서도 완전한 평형이 이루어지도록 했다”고 설계 의도를 밝혔다.

이를 해석하면 법원으로서의 권위를 나타내려 널따란 기층부와 그 위에 설치한 두 개의 육면체가 강한 사각형 매스감을 갖도록 처리했다. 건물의 전 높이를 감싸는 거대한 원형 기둥군과 창문이 주는 수직성 또한 이러한 느낌을 강하게 갖게 해 준다. 동관과 서관으로 동선이 분리되어 공간적인 위계질서도 보여준다. 법원이 지니는 형평성과 공정성을 상징하기 위해 전체를 좌우대칭으로 처리한 특징을 보여준다.

건물은 고층빌딩 형태를 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알루미늄색의 둥근 탑 느낌을 주고 있다. 서울지방법원이 사용하고 있는 동관과 서울고등법원이 사용하고 있는 서관이 두 개의 탑처럼 세워져 있다. 이들 두 건물은 서로 연결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중앙 현관에는 법원을 상징하는 대형 문양이 걸려 있다. 건물 저층부는 대부분 법정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마치 탑의 기단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이곳은 사전 허가 없이 사진 촬영이 허락되지 않아서 건물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지 못하게 해서 밖에서 기록을 남겼다.

한 국가와 민족 수준 가늠자 ‘예술의 전당’

▲ 스승인 김중업, 김수근을 제치고 제자이자 부하직원이었던 김석철이 건축을 맡아 화제가 된 예술의 전당. 이웃한 국립국악당과 더불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예술의 전당은 건립 목표는 ‘한 국가와 민족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인 문화와 예술에 국민 모두가 자유롭게 참여, 경험,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시설을 제공하고자 하는데’ 있다. 당시 문공부 이진희 장관은 해외 지명공모를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국내 현상공모를 실시했다. 결과는 40세 나이의 김석철 건축가가 당선됐다. 김중업, 김수근도 모두 응모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공교롭게도 김석철은 서울대 건축가를 나와 김중업, 김수근 건축설계사무실을 모두 거친 전력이 있다.

예술의 전당은 1984년에 착공해 1993년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종합예술시설이다. 우면산 기슭에 위치한 대표적인 복합예술센터로서 예술의 전당은 음악당과 서예관, 미술관, 오페라하우스, 예술자료관, 기타 야외시설 등으로 구성된다. 1987년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옮겨 온 국립국악원을 접하고 있는데, 이 역시 서울미래유산이다.

1988년 음악당과 서예관을 준공해 1단계 개관을 했다. 1990년 2단계로 미술관과 자료관을 열었고 1993년 마지막으로 오페라하우스를 개관했다. 88 올림픽 때는 문화예술축전 공연장으로 활용됐다. 오페라하우스에는 갓 모양이 지붕으로 얹고 음악당은 부채를 본뜬 외관이 설계에 적용됐다. 1980년대 한국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미래 서울미래유산 감인 구 한국교육개발원

▲ 서울시 서초구 우면동 소재의 한국교육개발원. 현대 건축 대가 김중업의 작품이다. 설립 당시 외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현판 글씨는 교육자이면서 의사인 서예가 김사달 선생이 쓴 것이다.

답사팀은 예술의 전당 뒤편 우면산을 넘었다. 이날 답사는 거리가 제법이라 아예 점심 도시락까지 준비했다. 물론 희망자에 한해서다. 몇 명은 이탈했고 남은 답사팀은 예술의 전당 뒤편 숲속에서 도시락을 나눠 먹고 옛 한국교육개발원을 거쳐 삼품참사위령탑으로 향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1972년 8월에 ‘정부출연연구기관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에 의해 만들어진 국책연구기관이다. 중간에 이 건축물이 들른 이유는 예술의 전당 공모에서 탈락한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했기 때문이다. 예술의 전당과 정 반대인 우면산 남쪽 산사면에 위치한 이 건축물은 일부러 찾지 않으면 절대 볼 수 없을 정도로 산속에 꼭꼭 숨어 있다. 김중업의 작품, 추방처럼 쫓겨났던 프랑스에서 돌아 와 손을 댄 첫 작품, 독특한 외관 형태나 공공건축물이란 점에서 언젠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될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다.

대지 52,066㎡, 건축면적 1,450㎡, 연면적 4,691㎡, 지상 5층 건물로 알루미늄 커튼 휠(16㎜복층유리) 및 타일로 마감 했다. 김중업은 설계소묘에서 “79년에 영구 귀국한다. 알뜰한 작품을 고국에 남기고 싶고, 뜻있는 젊은이들에게 건축가의 참모습을 보이고 싶은 까닭이다. 명예나 재산도 탐낼 나이는 넘었고 오로지 성심, 성의껏 좋은 작품을 수놓고 싶어서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그는 “귀국 첫 작품으로 이 작품을 바쳤다. 태양열과 풍력을 시험하고 싶고, 연구기관다운 풍부함을 담고 싶고, 고속도로에서 빤히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 반짝 빛내고 싶어서이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갈 수 있고 이곳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즐거움을 드려 한국교육방송에 획기적인 기원을 긋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고 덧붙였다.

양재천 지나 양재시민의 숲 삼품참사위령탑까지

▲ 우면교 아래를 흐르는 서울미래유산 양재천을 건너 양재시민의 숲에 있는 삼풍참사위령탑에서 남(南) 서울미래유산 답사를 마쳤다.

답사팀은 우면교를 건너 삼품참사위령탑을 향했다. 우면교 아래로는 양재천이 흐르고 있다. 양재천은 1970년대 개포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직강화 됐다가 1995년 국내 최초 자연형 하천복원사업으로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다. 하천복원사업으로 조성된 후 많은 사람들의 쉼터 역할을 해오고 있는 도심공원으로써 보전가치가 있다고 판단,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양재천은 경기도 과천 관악산에서 발원해 과천시를 통과해 흐르다 어린이대공원 뒤 청계산에서 발원한 막계천과 합류한다. 서초구 양재동에 이르러서는 청계산 동쪽계곡에서 발원한 여의천과 합류한 다음 서울시 서초구와 강남구를 지나 탄천으로 유입하는 하천이다. 유로 총연장은 15.6㎞이며 서초구에서 관리하고 있는 구간이 3.7㎞, 강남구 구간이 3.5㎞이며 나머지 8.4㎞는 과천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미래유산으로는 강남구에서 지정 받았다.

복원은 식생호안(植生護岸)을 도입해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생물의 서식공간을 확보했다. 콘크리트를 이용해 복구한 청계천과 달리 흙과 돌, 나무 등의 자연을 이용해 하천을 자연과 가장 가깝게 복구하는 방법을 식생호안이라고 한다. 수질은 2급수다.

삼풍참사위령탑이 있는 양재시민의 숲은 우리나라 최초로 숲 개념을 도입한 공원이다. 그래서 도심에서 보기 드문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당시 서울의 관문이던 양재톨게이트 주변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조성됐다. 남측 구역에는 삼풍참사위령탑을 비롯해 유격 백마부대 충혼탑, 1987년 미얀마 안다만해협 상공에서 북한의 테러로 폭파된 대한항공 858편 위령탑, 우면산 산사태 희생자 추모비 등 곳곳에 각종 추모시설물이 들어서 있다.

삼풍참사위령탑 1995년 6월 29일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인해 유명을 달리한 502명의 영혼과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건립한 위령탑이다. 건축물 안전사고 예방에 대한 중요성을 알려주는 상징적인 조형물로써 사고 3주기인 1998년 3월에 횃불탑을 건립하기 시작해 6월 준공했다. 국민 성금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높이 8m의 화강암으로 제작됐다.

유족 측에서 추천한 이화여대 김봉구 교수가 설계했다. 참사 현장에 서 있지 못하고 멀리 양재시민의 숲에 있는 것이 다소 의아했다. 하지만 강남개발사 전문가 전상봉 해설사가 강남 ‘아파트 값’에 영향을 주는 시설물 때문이란 설명을 들으니 ‘씁쓸한’ 이해가 됐다. 남(南) 미래유산 답사는 여기서 마친다. 조금만 더 가면 또 하나의 강남지역 미래유산인 양재동 하훼공판장이 있지만 답사팀이 많이 지쳤기 때문이다. 양재동 하훼공판장 1991년에 개장한 우리나라 최대의 화훼류 법정도매시장이다. 

전수정 문화지평 칼럼니스트  moonwhajipyu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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