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란다스의 개’, 비운의 걸작 블랙 코미디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22.01.13l수정2022.01.14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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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는 흥행에서 참패했지만 작품성과 더불어 봉 감독의 ‘될성부른 떡잎’의 기운을 알려 준 비운의 걸작이다. 시간 강사 윤주(이성재)는 변두리 대단지 서민 아파트에서 임신한 아내 은실(김호정)과 함께 산다. 사실상 백수이고 아내의 벌이로 먹고사는 셈이다.

선배는 학장에게 뇌물을 제공해야 교수에 임용된다고 조언해 주지만 윤주에게 돈이 있을 리 없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윤주는 단지 내 개 짖는 소리에 분노해 마침 주인과 떨어진 애완견 한 마리를 잡아 옥상으로 올라간다. 밑으로 던지려다 차마 그러지 못한 그는 지하 보일러실에서 죽이려 한다.

그러나 구석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보고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방치된 옷장 속에 가둔다. 한 소녀가 관리 사무소 경리 현남(배두나)을 찾아와 애완견을 찾는 전단지에 확인 도장을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 우연히 그 전단지를 본 윤주는 화들짝 놀란다. 성대 수술을 했기에 짖을 수 없는 개였던 것.

급히 보일러실에 갔다가 경비 변 씨(변희봉)가 잡아먹는 정황을 발견하고 몰래 숨어서 본다. 마침 관리소장이 나타나자 변 씨는 ‘보일러 김 씨’라는 사람이 살해되어 지하실 벽 속에 숨겨진 채 묻혔다는 괴담을 들려준다. 윤주는 소음의 주인공이 혼자 사는 할머니의 개임을 알고 기지를 발휘해 훔친다.

이번에는 과감하게 옥상 위에서 던진다. 때마침 단지 내 상가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친구 장미와 함께 근처 옥상에서 흡연을 하던 현남이 그 모습을 보고 윤주를 쫓아온다. 윤주는 운 좋게 정체를 들키지 않고 현남의 손에서 벗어난다. 애완견의 사체를 본 할머니는 쓰러지고 현남이 병원에 데려간다.

은실이 갑자기 애완견을 사와 순자라고 명명한다. 산책하던 윤주는 한눈을 파는 바람에 순자를 잃어버리고 현남과 함께 전단지를 붙인다. 은실은 윤주에게 순자를 못 찾으면 끝이라고 통보한다. 관리소장에게 해고당한 현남은 옥상에 올랐다가 노숙자 최 씨(김뢰하)가 순자를 잡아먹으려는 걸 발견하는데.

일단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불편할 법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감독의 풍자와 유머 코드를 이해한다면 굉장히 재미있는 블랙 코미디이다. 상업적 재미만 놓고 본다면 이후의 작품들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은 맞지만 은유적, 비유적, 환유적 유머와 위트는 정말 대단하다.

먼저 이 작품은 니체의 가치전도가 돋보인다. 윤주와 현남은 자신의 성별과 사뭇 다른 이름이다. 변 씨는 지하 보일러실에서 이어폰을 끼고 러닝머신 위를 달린다. 아파트 경비원이라는 열악한 지위와는 달리 그곳에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사는 것이다. 각종 요리를 해 먹으며 나름의 풍요를 즐긴다.

또 마당에서는 빗자루로 청소를 하는 게 아니라 시원하게 휘두르며 골프 연습을 한다. 가장 강한 메시지는 취업의 어려움과 노동자의 애로 사항이다. 윤주는 “어릴 때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교수가 되는 줄 알았는데(그렇지 않다).”라고 뇌까린다. 결국 그는 은실의 퇴직금 1500만 원으로 교수직을 산다.

툭하면 자리를 비운다고 타박을 하던 관리소장은 결국 현남을 해고한다. “경리 맡을 여상 나온 애들 수두룩해.”라고 큰소리를 치며. 은실이 퇴직금 1640만 원을 받고 퇴사했다고 하자 윤주는 왜 그만뒀냐고 묻는다. 이에 은실은 “애 밴 여자가 회사에 다닐 수 있는 줄 아니?”라고 울부짖는다.

은실은 “지금까지 내가 내 돈 제대로 쓴 적 있니?”라며 처음으로 퇴직금 중 40만 원으로 순자를 샀다며, 꼭 찾아오라고 호통친다. ‘목포 보일러 김 씨’는 시공사와 관리자가 담합해 부실시공을 함으로써 따로 사익을 챙긴 것을 대놓고 꾸짖다가 그들에게 살해된다. 전두환의 광주민주화운동 은폐를 암시하는 것.

스스로 무기력하고 사회적으로 무능력한 현남은 TV에서 강도를 때려잡은 여자 은행원을 보고 동경한다. 그러던 중 최 씨를 잡아 그동안 실종된 애완견을 잡아먹은 범인으로 경찰에 넘김으로써 인터뷰를 한다. 그런데 막상 TV 뉴스에는 최 씨만 나오고 그녀의 인터뷰는커녕 자막조차도 안 나온다.

오히려 최 씨는 교도소에 가면 하루 세 끼 규칙적으로 먹을 수 있다는 걸 다행스럽게 여긴다. 사회라는 게 이토록 아이러니컬한 일들로 넘쳐난다. 윤주는 아파트에서 개 키우는 게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않자 “도대체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라고 개탄한다.

그런데 정작 그는 뇌물 1500만 원으로 교수가 된다. 규칙이 아닌, 법을 어겨서. 드디어 강의실에 선 윤주의 얼굴은 그러나 어딘가 어두워 보인다. 반면에 해고된 현남은 장미와 함께 밝은 표정으로 힘차게 산에 오른다. 그리고 그녀는 배낭에서 승용차 사이드 미러를 꺼내 관객에게 햇빛을 비춰 준다.

사이드 미러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볼 수 없는 뒤를 보여 주는 역할을 한다. 며칠 전 현남은 장미와 술을 마시고 거리를 헤매다 주차된 한 승용차의 사이드 미러를 발로 찬 뒤 가져왔다. 여기서의 사이드 미러는 과거이다. 산에서의 그것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로잡아 밝은 미래를 희망하는 것이다.

옥상에서의 노란 의상 응원 부대와, 윤주와 현남이 달릴 때의 흰색 의상 응원 부대는 재치 만점의 만화적 장치. 윤주의 빨간 티와 현남의 노란 티는 양대 보수당과 진보당을 상징한다. 지하철에서 아이를 업고 구걸하는 아주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현남은 유머, 뇌물에서 1만 원을 빼 주는 윤주는 이 삭막한 시대의 일말의 희망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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