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이터널스’는 고른 계층으로부터 걸작으로 칭송받은 ‘노매드랜드’(2020)의 클로이 자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큰 기대감을 부풀렸으나 결과적으로 MCU의 페이즈 3 이후, 즉 어벤저스의 활약이 끝난 뒤의 마블의 세계관이 더 이상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쉽지 않다는 것을 입증했을 따름이다.

셀레스티얼이라는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 그 첫 번째 셀레스티얼 아리솀은 BC 5000년 돌연변이 포식자 데비안츠들이 각 행성의 지적 생명체를 먹어 치우며 진화하자 올림피아 행성의 영웅들인 이터널스를 곳곳에 파견하는데 지구에는 프라임 이터널스 에이잭(셀마 헤이엑)을 리더로 한 팀이 간다.

나머지 멤버들은 테나(안젤리나 졸리), 길가메시(마동석), 이카리스(리차드 매든), 킨고(쿠마일 난지아니), 세르시(젬마 찬), 마카리(로런 리들로프), 파스토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드루이그(배리 케오간), 스프라이트(리아 맥휴). 그들은 데비안츠들을 모두 제거한 뒤 각자 지구 곳곳에 정착해 산다.

수 세기 전 연인 이카리스와 헤어진 세르시는 현재 영국에서 인간 데인(키트 해링턴)과 사귀며 살고 있다. 어느 날 지진이 발생하며 데비안츠들이 나타나고, 이카리스와 재회한다. 이터널스는 다시 뭉쳐 데비안츠들과 싸우는데 그 리더는 기존의 존재와 달리 더욱 앞서가는 진화의 능력을 보인다.

세르시는 조언을 듣기 위해 에이잭을 찾아가지만 그녀는 데비안츠의 공격에 이미 사망한 상황. 사체에서 구슬 하나가 나와 세르시의 몸에 들어간다. 그것은 그녀를 리더로서 지목했다는 것이고, 그렇게 아리솀을 만나게 된다. 세르시는 아리솀으로부터 엄청난 비밀을 듣고 팀원들을 그러모아 알려 준다.

이터널스와 데비안츠는 아리솀이 창조한 존재자들이었다. 아리솀은 행성의 지적 생명체들이 어느 정도 포화 상태가 되면 그 행성의 에너지를 흡수하는(멸망시킴) 이머전스를 실행해 새로운 셀레스티얼을 탄생시켜 왔다. 이제 인구가 포화한 지구에서 새 셀레스티얼 티아무트를 탄생시키려 하는데.

일단 우주관은 ‘어벤져스’가 근접도 못 할 만큼 어마어마하게 확장되었다. 빅뱅 이론과 천지창조론을 교묘하게 결합해 우주 탄생의 비밀을 풀어 보려는 노력은 인정할 만하다. 과학과 종교와 가설의 교묘한 결합이다. 그러나 서사를 거대하게 펼치려다 보니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영화는 BC 5000년 메소포타미아 해안 지역, BC 575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남쪽 바빌론 왕국, AD 40년 굽타 제국, 1521년 테노치티틀란(멕시코, 아즈텍 제국) 등을 삽입했다. 이터널스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석기 단검을 금속으로 바꿔 준다. 그런데 순동은 이미 그보다 500년 이상 전에 사용되었다.

게다가 이미 농경 문화를 시작한 지 3000년이 지난 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옷차림이 당시 문명에 어울려 보이지 않고, 해안 지역이라는 것도 당시 농경문화와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마블 팬들에게는 매우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우주관과 설정 등이 충분히 흥미와 재미를 줄 수 있다.

타노스와의 연관성,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이미 소개한 셀레스티얼의 출현,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죽었으니 이제 어벤저스 리더는 누가 하지? 네가 할래?”라는 대화 등이다. 게다가 이카리스를 슈퍼맨에 비교하며 “클라크 켄트라고 부를까?”라고 놀리는가 하면 ‘스타워즈’ 책을 등장시킨다.

이는 경쟁 스튜디오에 대한 조크 혹은 조롱이다. 아리솀이라는 절대 지존의 신을 상정한 것도 재미있다. 이카리스(이카로스), (아)테나 등 그리스 신화의 신과 길가메시(우루크의 왕)라는 신화를 빌린 센스도 돋보인다. 게다가 올림포스가 신화와 달리 우주의 행성이라는 현실주의 역시 재치 만점이다.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리솀이 생명을 창조하고 멸절시키는 것을 반복하는 절대자라는 설정 하나에 모두 담겨 있다. 아리솀이 데비안츠와 이터널스를 창조한 이유는 인류를 비롯한 각 행성의 지적 생명체를 보호하기 위함이지만 그게 그들을 보존하고자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 인구수를 어느 수준까지 올려야지만 이머전스를 통해 자신의 친자라고 할 수 있는 새 셀레스티얼을 탄생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소 등 가축을 정성스레 돌보는 것은 결국 그걸 에너지원으로 삼아 인류를 보존하자는 게 이유이듯. 이터널스가 죽지 않는 이유는 애초에 생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머전스가 발생할 때마다 기존의 기억이 지워져 뇌가 리셋이 된다. 자신들은 셀레스티얼보다 들급이 낮은 올림피아 행성의 신적인 생명체라고 착각했지만 아리솀의 손에 의해 창조된, ‘생명’(인격)이 없는 생명체였던 것. 여기서 이 영화는 운명론이나 목적론이냐의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모든 진실을 깨달은 에이잭은 지구 멸망을 막기 위해 이터널스 중 단연 압도적인 초능력을 지닌 이카리스를 불러 차기 지도자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이카리스는 아리솀이 정해 놓은 우주의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며 오히려 그녀를 데비안츠의 먹잇감으로 던져 죽게 만든다.

운명론을 따랐던 스프라이트는 결국 목적론으로 선회해 어른이 되고 늙어 죽을 수 있는, 인간으로 변하는 길을 택한다. 결국 우리는 기억으로 자존감을 갖추고 추억으로 삶의 활력과 목적을 추구한다는 메시지이다. 그게 존재의 이유. 비주얼은 감독의 이름만으로도 보증 수표. 하지만 거기까지가 전부.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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