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케빈 맥도날드 감독, 2009)는 정치 스릴러를 표방하지만 사실 언론의 사명을 웅변하는 장엄한 서사의 영화이다. 밤. 마약쟁이 드숀과 배달부 버논이 킬러 로버트에게 살해된다. 다음날 아침. 유부남인 스타 의원 스티븐(벤 애플렉)의 보좌관 소냐가 출근 중 지하철에 뛰어들어 죽는다.

스티븐은 방위예산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 민간 방위산업체 포인트코프의 비리에 대한 청문회를 주도하고 있었다. 언론은 소냐가 스티븐과 불륜 관계였음에 주목해 치정 문제에 의한 자살로 기사를 쓴다. 그날 밤 스티븐은 파파라치를 피해 대학 친구인 워싱턴 글로브 기자 칼(러셀 크로우)을 찾아간다.

그는 소냐가 출근 전 휴대 전화로 보낸 밝은 동영상 메시지를 보여 주며 자살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칼은 이 사건에 주목하는 의회 블로그 담당 후배 기자 델라(레이첼 맥아담스)에게 지하철 CCTV를 조사할 것을 조언하지만 사고는 사각지대에서 발생했다. 칼은 드숀이 소냐와 통화한 것을 알아낸다.

그에게 드숀의 친구라는 소녀 맨디가 접근해 그가 훔쳤던 가방을 건넨다. 그 속에는 평소 반듯한 이미지의 소냐와 다른 사진이 담겨 있다. 칼은 취재를 해 나갈수록 소냐는 타살된 것이며 포인트코프가 이 사건에 직접 연루되어 있고, 그들이 스티븐을 감시하기 위해 소냐를 고용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소냐는 뒷골목의 여자였다. 하지만 홍보 전문가 도미닉이 그녀를 캐스팅해 포인트코프에 소개했고, 포인트코프가 잘 포장해 스티븐에게 위장 취업시켰던 것.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소냐가 스티븐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어 스파이 노릇을 그만두자 포인트코프가 살해한 것으로 칼은 가닥을 잡는다.

타블로이드는 연일 스캔들 기사를 쏟아내고, 매출에 급급한 편집장은 칼에게 기사를 내놓으라고 닦달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핵심이 포인트코프에 있음을 확신하는 칼은 더 완벽한 취재를 해야 한다며 최후의 승부처로 도미닉과 스티븐의 인터뷰를 기획, 그 증거로 동영상까지 촬영할 것을 결심하는데.

원작인 동명의 BBC 미니시리즈를 2시간 살짝 넘는 시간에 압축했기 때문에 매우 스피디하게 진행되므로 지루할 틈이 없어 매 시퀀스가 스릴러이다. 먼저 던지는 메시지는 과연 미국이 외치는 ‘평화를 위한 전쟁’이 올바른 이데올로기인가이다. 포인트코프는 이슬람 테러로 매년 400억 달러를 번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 안보에도 깊숙하게 관여해 관련 부처들을 장악해 곧 국토안보부까지 접수할 수준이다. 퇴역 군인들로 이루어진 경영진과 일선 용병들의 이념은 오로지 돈일 뿐, 애국심이나 전우애 따위는 버드와이저와 바꾼 지 오래이다. 정치보다 자본주의가 더 크고, 무섭다는 이 메시지는 엄청나다.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기에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정치인들은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썩어빠졌다는 테제 역시 충분한 교훈을 준다. 사이즈가 다를 뿐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사실 어느 나라이든 그 추악한 카르텔에서 언론이 빠질 리 없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표제가 강렬하다.

미국은 양차 세계 대전을 통해 엄청난 부를 챙김과 동시에 지구촌의 헤게모니를 움켜쥐는 데 성공했다. 그 ‘전쟁 돈벌이’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중동 지역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이슬람 테러가 돈줄.”이라고 말한다. 대중은 뉴스를 통해 정치를 접하고 그 논조에 의해 정치 판세를 판단한다.

그러나 언론의 보도 내용과, 논제가 모두 진실일까? 이 영화에서 타블로이드들은 물론 다수의 언론이 방산업체나 정치권의 비리에 대한 진실보다는 말초적인 내용에 집중하는 데 그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적지 않은 대중이 골치 아픈 국가적 미래보다는 천박한 취향에 집착하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그래서 언론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부르댄다. 지금 같은 언론의 홍수 시대에 정말로 필요하고 소중한, 웬만한 교과서 이상의 값어치를 지닌 반짝반짝 빛나는 걸작이다. 스티븐의 아내 앤은 사실 칼과 잠깐 바람이 났었다. 그녀는 칼에게 “아빠가 정치인보다 더 싫어한 사람은 기자.”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다. 유명 정치인, 연예인, 공무원, 기업인 등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니 기자가 좋을 리 만무하다. 그들에게 기자가 필요한 경우는 자신들이 원하는 기사를 내게 할 때뿐이다. 앤은 칼에게 “난 (너에게) 정보원일 뿐이잖아.”라고 허무하게 말한다.

그 한 마디에는 기자의 취재 윤리, 보도 윤리가 담겨 있다. 과거에 칼이 앤과 잠깐 불장난을 했을 때는 남자로서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 잘못을 깨닫고 오직 기자로서만 생각하고 행동한다. 앤도 이제는 그걸 충분히 깨닫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이봐, 기레기들! 칼을 좀 보라고!“라고 외치는 듯하다.

언론에 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객관성과 실증주의일 것이다. 하위 개념으로는 합리주의와 계몽주의도 들 수 있겠다. 고대 그리스 이래 거의 모든 철학자들이 추구한 건 정의, 선, 도덕, 이성, 지혜 등이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전통의 권위에 관성적으로 복종하는 걸 반대하는 4대 우상론을 주창했다.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주의는 그의 확장이다. 언론의 당연한 의무! 모든 팩트에 대해 ‘왜’와 ‘만약에’에서 시작하라는. 그 모든 건 객관성에 근거한다. 결론은 ‘형이상학적 사변을 배격하고 관찰이나 실험 등으로 검증 가능한 지식만을 인정하는 인식론적 방법론’(두산백과)인 실증주의이다. 언론의 필독서!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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