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지옥행 특급택시’(D. C. 해밀턴 감독, 2018)의 원제는 ‘The Fare’(운임)이고, 내용은 판타지 멜로이니 얼마나 한심한 작명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무지한 왜곡과 달리 의외로 볼 만하다. 택시 기사 해리스(지노 앤서니 페시)는 늦은 밤 매니저의 명령대로 미모의 페니(브리나 켈리)를 태운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불이 꺼지며 페니가 연기처럼 사라진다. 당황한 해리스가 매니저의 조언대로 미터기를 재설정하자 그는 이전 기억을 잊은 채 페니를 태운 장소로 되돌아가 또 그녀를 태운다. 그런 상황이 무한 반복되고, 어느 순간 해리스는 저도 모르게 페니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자 페니가 진실을 털어놓는다. 이런 상황은 100번도 넘게 반복되었고, 페니가 사라지는 순간 해리스의 이전 기억이 지워졌던 것. 어느덧 두 사람은 연인이 되어 그런 타임 루프를 즐기게 된다. 그런데 해리스는 페니의 이마에서 예전에 입었던 상처를 발견하고 타임 루프가 아닌 걸 깨닫는다.

그 순간 페니는 “물을 마시지 마.”라고 외치며 사라지고 해리스는 계속 다른 손님들을 태우게 되는데. 켈리가 제작과 각색에 참여해 6일 만에 촬영을 끝낸 저예산 작품이지만 작품성만큼은 낮지 않다. 흑백과 컬러를 오가는 후반 작업도 나름대로 의미가 느껴진다. 택시가 달리는 황량한 환경도 의미 있다.

한국식 제목과 달리 뭉클한 사랑 이야기이다. 일본 어느 지역의 괴담에서 모티프를 얻어 그리스 신화와 버무린 각색 솜씨가 썩 훌륭하다. 페니는 동전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장례를 치를 때 유족은 고인의 두 눈에 동전을 얹어 주었다. 저승길 노잣돈이다. 그 뜻도 있지만 사실 그녀는 페르세포네이다.

페르세포네는 제우스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 사이의 딸로 제우스의 협조를 얻어 저승 신 하데스가 납치해 아내로 삼았다. 하계를 완전히 떠나지 못하도록 하데스가 석류를 먹였다. 하지만 데메테르의 강력한 요구에 굴복한 제우스가 제안해 1년 중 3분의 2는 지상에, 나머지는 하계에 머물게 되었다.

페니는 지상에 올라왔을 때 해리스를 만났고, 둘은 첫눈에 반해 불륜 관계가 되었다. 분노한 하데스는 해리스를 영원히 죽지 않는, 자신의 노예인 저승의 뱃사공 카론으로 만든 것이었다. 망자의 영혼이 이승을 떠나 하데스의 저승 세계로 가려면 카론에게 뱃삯을 지불하고 스틱스 강을 건너야 한다.

스틱스는 세상을 둘러싸고 흐르는 대양강 오케아노스의 물줄기에서 갈라져 나와 저승으로 흘러드는 강을 지배하는 여신이다. 증오의 강인 스틱스 강은 저승에서 슬픔의 강 아케론, 탄식의 강 코키투스, 불의 강 플레게톤, 망각의 강 레테 등의 지류로 나뉜다. 해리스가 마신 물은 레테였던 것이다.

매니저는 바로 하데스였던 것. 외전에서 테세우스와 친구 페이리토오스는 페르세포네를 구하러 하계로 내려갔다 하데스의 술책으로 망각의 의자에 앉자마자 모든 것을 잊었다. 나중에 헤라클레스가 저승 문을 지키는 삼두 괴수 케르베로스를 잡으러 왔을 때 테세우스만 구출해 이승으로 데려갔다.

즉 해리스의 “해리라고 부르지 마.”라는 대사에서 헤라클레스 냄새가 살짝 풍긴다. 또한 두 사람의 반복적인 만남은 타임 루프가 아니라 해리스를 1년에 한 번씩(신화와 달리 단 20분) 만나기 위한 페니의 ‘작전’이었던 것. 모든 사실을 깨달은 해리스의 결정은 영원한 사랑을 선택하는 운명론이었다.

페르세포네가 1년의 3분의 2를 지상에서 데메테르와 함께 지낸다는 것은 봄부터 가을까지 대지가 풍요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3분의 1동안 지하에서 산다는 것은 겨울이다. 작품 속에서 매니저가 ‘중간 지대’를 거론하는 것은 해리스가 카론처럼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반복적으로 오가는 것을 뜻한다.

켈리가 각색에 참여했기에 가장 강렬한 메시지는 페미니즘이다. 제우스를 비롯한 모든 신들이 강간을 일삼고, 권력을 이용해 연애와 결혼을 하는 것은 왕과 귀족들이 그런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저질렀다는 역사와 현재까지도 신부의 의사에 상관없는 정략결혼이 비일비재하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래서 이 작품이 주장하는 것은 의지와 운명이다. 칸트는 의지를 실천이성으로 봤고, 니체는 권력에의 의지를 부르댔다. 헤겔은 의지가 정신의 기본 원리라고 주창했다. 페니와 해리스의 사랑에의 의지가 바로 그렇다. 중간 지대에 갇힌 해리스가 현실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에의 의지가 만든 운명론이다.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도, 그래서 지옥의 뱃사공이 된 것도 사랑에의 의지가 만든 것이므로 운명으로 받아들여 영원히 사랑하겠노라는 의지이다. 중세 스콜라 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를 이어 주의주의를 완성했다. 하느님이 주신 ‘도덕적’ 자유 의지이다. 페르세포네의 결혼은 그녀의 의사와 다른 강제였기에 이 작품은 페니와 해리스의 사랑을 용인하는 것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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