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애프터 라이프’(아그네츠카 보토위츠 보슬루 감독, 2009)는 제목만 보면 사후 세계를 다룬 듯하고, 내용을 보면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의 사기극 같기도 하지만 의외로 내용이 깊다. 초등학교 교사 애나(크리스티나 리치)는 연인인 변호사 폴(저스틴 롱)에게 점점 심드렁해져 관계가 멀어지고 있다.

폴은 시카고의 본사로 발령이 나자 생각 끝에 이참에 아예 애나와 결혼하려 마음먹고 저녁 식사 약속을 한다. 레스토랑에서 폴이 ‘함께 가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애나는 지레짐작으로 이별 선언이라 착각해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러나 빗길에서 운전 중 대형차와 교통사고가 난다.

눈을 떠 보니 그녀는 장례식장에 누워 있다. 장의사 엘리엇(리암 니슨)은 그녀가 8시간 전에 사망 진단을 받았다고 설명하며 염을 한다. 그러나 눈앞의 현실이 매우 또렷한 그녀는 믿을 수 없다. 엘리엇은 자신은 망자들의 말을 들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며 그녀의 죽음을 강하게 세뇌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와서 시체를 확인한다. 그러나 폴이 찾아왔을 때는 그녀는 생생하게 깨어 있었다. 엘리엇은 장례식 전 직계 가족 외의 사체 확인은 불가하다고 폴을 돌려보낸다. 애나는 엘리엇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열쇠를 훔치고, 그가 외출한 사이 시체 안치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그러나 열쇠가 없어진 것을 깨달은 엘리엇이 황급히 되돌아온다. 애나를 찾아 낸 엘리엇은 궤변이지만 설득력 높은 논리로써 그녀를 자포자기하게 만든다. 그 시각 건물 밖에서 애나의 학생 잭이 창문 앞에 선 애나를 발견하고 그 사실을 폴에게 전하는데. 무서운 장면 없이 정말 섬뜩한 스릴러이다.

사실 엘리엇은 의사와 짜고 의식을 잃은 노인이나 환자에게 사망 진단을 내린 뒤 하이드로늄 브로마이드라는 약물을 투여해 죽은 듯한 상태로 만들어 결국 산 채로 땅에 묻어 왔다. 장례식을 많이 할수록 돈도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원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혐오감을 갖고 있기 때문.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과연 모든 사람들이 현생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는가?’이다. 답은 그렇지 않다. 소수의 부자, 극소수의 초월자를 제외하면 대다수는 고통스럽고 힘겨워하며 살고 있다. 애나는 번듯한 직장에 다니며 조건이 나쁘지 않은 연인 폴과 만나고 있지만 왠지 현실에 불만투성이였다.

그녀는 홀어머니와의 관계가 비틀어질 대로 비틀어져 있었다. 폴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왠지 그와의 관계나 데이트 등이 이제는 더 이상 설레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그리 성취감을 느끼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러니 행복을 느낄 리 만무했다. 엘리엇은 그런 사람은 살 필요가 없다고 단정한다.

“내가 염하는 사람들은 죽어서가 아니라 더 살 의미가 없어서 묻힌다. 그들은 시체와 다름없다. 시체는 우리의 공기만 오염시킬 뿐이다.”라는 대사이다. 그러면서 그는 “고통은 전부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라고 말한다. 애나는 “왜 죽죠?”라고 묻고, 엘리엇은 “그래야 삶이 소중해지니까.”라고 답한다.

그는 “살아도 사는 것처럼 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다들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만 사실 사는 게 더 두렵다.”라고 주장한다. 이 작품은 삶과 죽음의, 그리고 사랑과 행복의 정체성과 인식론을 묻는다. 의학적으로 숨을 쉬고 맥박이 뛰면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식론적 시각은 매우 다양하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야.’라는 매우 비관론적인 자조가 있다. 생물학적으로는 분명히 살아 있지만 사는 게 매우 고통스러워서 불행하기 때문에 그 삶이 사는 것 같지 않다는 뜻이다. 과연 그렇게라도 어떻게든 사는 날까지 사는 게 옳은 것인가, 아니면 그런 삶에서 ‘조기 퇴근’하는 게 더 나을 것인가?

물론 종교든, 사회 통념이든 ‘극단적 선택’은 올바르지 않다. 이른바 ‘존엄사’에 관해서 아직도 논란은 계속 진행 중이다. 스스로의 극단적 선택이나 존엄사는 시간이 흐를수록 표를 얻는 편이지만 엘리엇이라면 명명백백한 악마이다. 물론 감독은 그런 극악무도한 범죄를 합리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애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었지만 행복이 뭔지 모르겠다. 사랑하면 상처받는다는 걸 알게 되어 사랑하지 않기 위해 폴을 밀어냈다.”라고 고백한다. 엘리엇은 그런 무기력해지고, 무책임해진 사람들의 가치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행복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추구해야 할 것이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고.

할리우드에서 변호사는 종종 정의 구현과 상관없이 오직 돈을 위해 일하는 사기꾼으로 그려진다. 도덕적이어야 마땅하지만 가족과 척지고, 사랑을 안 믿는 교사. 자연주의자들은 인간이 각종 종을 멸망시키고, 지구를 황폐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맞다. 인간이 자연(신)의 적이다. 하지만 엘리엇이 신 행세를 하는 것은 가장 큰 범죄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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