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퍼스트 러브’는 추종자들로부터 ‘츠츠미 월드’라는 찬사를 들을 만큼 뛰어난 작품 세계를 펼쳐 온 츠츠미 유키히코 감독의 새 작품이다. 22살의 여대생 칸나(요시네 쿄코)가 아버지 나오토를 식칼로 살해하자 사진작가 가몬(쿠보즈카 요스케)의 아내인 상담심리사 유키(키타가와 게이코)가 취재에 나선다.

그런데 담당 변호사가 시동생인 카쇼(나카무라 토모야). 사실 카쇼는 가몬의 친동생이 아니다. 자유분방한 어머니가 남자와 눈이 맞아 사라지자 그녀의 언니가 걷어 키운 것. 게다가 유키와 카쇼는 대학 동기생으로 3학년 때 알게 되어 깊은 관계까지 맺었던 한때의 연인이지만 이후 모른 체해 왔다.

국선 변호인인 카쇼는 칸나의 일에 소극적이지만 유키는 다르다. 그래서 그런 카쇼에게 불만이 크다. 유키는 칸나를 취재하면서 그녀의 정신 상태가 매우 불안정하고, 감추는 사연이 크다는 것을 어림짐작한다. 칸나의 어머니는 변호인 측이 아닌 검사 측 증인으로 나서는 등 배후를 캘수록 오리무중이다.

유키는 칸나로부터 최근 연인과 억지로 성관계를 했는데 그를 사귄 이유가 이전 연인이 매우 폭력적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고백을 듣는다. 그러면서 진짜 사랑한 사람은 10년 전 알았던 10살 연상의 편의점 직원 요지였다는 말까지 듣는다. 유키는 편의점 사장으로부터 요지의 연락처를 알아내 만난다.

그녀는 요지와 칸나의 진술을 통해 충격적인 비밀을 알아낸다. 유명 화가 겸 대학교수인 나오토는 어린 칸나를 자신의 데생 수업에 모델로 세워 왔다. 칸나는 그게 너무 힘들어 괴로워하던 차에 제게 다정하게 대해 준 요지에게 끌렸던 것. 유키는 당시 나오토에게 수업을 들었던 한 예술가를 찾아간다.

그가 데생 실습 때 그렸다는 그림은 가히 충격적이었는데. 영화 장르에서 관객은 쉽고 감독은 어려운 게 멜로라면 둘 다 힘든 게 심리극이다. 이 심리 스릴러는 ‘칸나는 아버지를 왜 죽였나?’부터 ‘그녀가 진범인가?’라는 의문을 풀어 나가는 과정이 힘들지만 종당에는 큰 울림을 준다는 게 강점이다.

충분한 재미, 감동, 교훈을 보장한다. 유키는 칸나의 담당 변호사가 카쇼라는 사실에 불편해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학 시절로 플래시백. 그들은 숨기고 싶은 상처가 있다는 점에서 칸나와 다를 바가 없다. 어머니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란 카쇼는 자유분방한 성생활에 의존하며 젊음을 소비해 왔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유키는 초등학생 때 어머니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아버지가 해외 출장 때마다 아동 성매매를 했다는 것. 그런데 그것보다 더 놀라운 건 그런 아버지를 어머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묵인해 줬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녀는 아버지 차의 대시보드에서 그 증거 사진을 목도한다.

그런 트라우마 탓에 두 사람은 첫 성관계에 실패하고 서로에게 상처만 준 뒤 모르는 사이가 된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가몬의 사진 전시회에 간 유키는 가난하지만 다정한 중동 부녀의 사진 한 장에 감격해 그와 사랑에 빠지고 카쇼와 모르는 사이인 척하며 결국 가몬과 결혼해 나름의 행복을 찾는다.

하지만 그녀의 결혼 생활은 가식적이었다. 아버지와 카쇼에 대해 철저하게 함구하거나 속여 왔던 것. 그건 카쇼 역시 마찬가지. 형에 대한 우애와 질시라는 상반된 두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열등감을 우월감으로 변용한 그는 결국 변호사라는 꿈을 이루지만 내면은 여전히 고독하고, 외면은 가식적이었다.

두 사람의 칸나에 대한 반응은 그래서 상반되었다. 칸나의 진실을 파헤침으로써 그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려는 유키를 보고 카쇼는 “네 트라우마를 투영시킬 따름.”이라며 폄훼하지만 그녀는 그런 그에게서 구토증만 느낄 따름이었다. 유키를 거부하기는 어른을 못 믿는 칸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자신을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하며 유키의 구원의 손길을 밀어냈다. 그런 유키에게 칸나가 마음의 문을 열게 된 계기는 유키의 진실성과 솔직성 때문이었다. 유키는 자신이 곧 칸나임을 털어놓는다. 그러자 칸나는 놀라운 고백을 한다. 경찰에서의 진술을 번복해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판사는 칸나의 주장을 받아들일까? 이 작품은 법정 영화가 아니다. 감독이 도달하고자 하는 탄착점은 분명하다. 그건 어른의 아이에 대한 학대와 성폭행에 대한 고발이다. 칸나는 나오토의 데생 실습 때 남자 대학생들 앞에 서는 게 괴로울 때마다 칼로 자신의 손목을 그어 왔다.

어머니는 “왜 그랬냐?”라고 묻고, 칸나는 “닭에게 긁혔다.”라고 답했다. 이 뻔한 거짓말에 어머니는 그냥 모른 체했다. 나중에 화장실에서 유키는 어머니의 손목에서도 똑같은 흉터를 발견한다.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자식에게 그대로 대물림하거나 외면하는 부모는 의외로 많다. 최근 뉴스들이 증거이다.

감독은 경청과 눈을 웅변한다. 여자는 남자에게 직장에서 상사 때문에 힘들다고 애로 사항을 토로한다. 그러면 남자는 그 상사를 자신이 응징하겠다고 나댄다. 여자가 원한 건 그런 설루션이 아니다. 그저 자기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을 따름이었다. 칸나는 유일한 친구인 엄마에게서 그걸 못 얻었다.

그래서 생면부지의 요지에게 기댔던 것. 유키와 칸나는 자신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에 공포를 느끼며 성장했다. 나오토는 칸나를 남자 누드모델들과 함께 세웠고, 학생들과의 술자리에 그녀를 앉혔지만 어머니는 모른 척했다. 말미의 “법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게 해 줘 고맙다.”라는 칸나의 편지는 뭉클하다. 이 카오스의 시대에 신문고가 될 소중한 작품! 16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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