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연관 변호사

[미디어파인 시사칼럼] 군대는 민간과 달리 계급 간 질서와 상명하복 문화가 매우 엄격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는 군대의 전투력을 최상으로 발휘하여 국방 수호의 의무를 다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때로는 군의 폐쇄적인 문화가 개개인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문제를 낳기도 한다.

군인이 군인을 상대로 저지르는 군형사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결국 군을 조직하는 개개인의 사기를 저하시켜 엄청난 전투력 손실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에 우리나라는 군형법을 통해 군대의 규율을 유지하는 한편, 군인 개개인의 인권도 보호하고 있다.

다양한 사건 중에서도 군인 간 성범죄는 민간과 군대의 차이를 극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본래 우리 형법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각종 성범죄를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다. 하지만 군형법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동시에 군의 전투력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강간과 추행에 대한 죄를 규율하고 있기 때문에 형법에 비해 법정형의 수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예를 들어 폭행과 협박으로 사람을 추행하는 강제추행의 경우, 형법이 적용된다면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나 군형법이 적용된다면 벌금형 없이 1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가중처벌 된다. 강간의 경우에도 형법상 혐의라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나 군형법상 혐의가 인정된다면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또한 합의에 의한 동성간 성관계 또는 성적 접촉을 처벌하지 않는 민간과 달리 군에서는 이를 ‘추행’에 해당하는 군형사사건으로 보아 처벌해왔다. 군형법에서는 군인 등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하지만 합의에 따른 동성애를 처벌하는 것이 구시대적이라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등장함에 따라 앞으로 이러한 종류의 군형사사건 처리 방향이 바뀔 전망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사적인 공간에서 자발적 의사의 합치에 따라 이루어진 동성 간 성관계 또는 이와 유사한 성행위가 군이라는 공동 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를 직접적, 구체적으로 침해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에는 군형법상 추행 혐의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대법원은 동성간의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추행이라는 평가가 이 시대의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음을 지적했다.

군인 간 성범죄를 비롯해 군형사사건의 수사, 재판 과정에서 군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행사하지 못하고 기본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군인이기에 시민보다 더욱 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생활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군인이라는 이유로 인권이 침해당해서도 안 된다. 자신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는 대응책을 마련해 사안에 맞게 대처한다면 스스로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YK법무법인 배연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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