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형환 변호사

[미디어파인 시사칼럼] 형법 제299조는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간음한 자를 강간에 준하여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범죄를 준강간이라 한다.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성행위를 거절하거나 저항하기 어려운 상태의 사람에게 범행을 한다는 점에서 준강간의 비난가능성은 매우 높으며 무거운 처벌과 강도 높은 보안처분이 따르게 된다.

준강간은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형량은 사건의 정황과 대법원의 양형기준을 고려하여 결정된다. 준강간의 성립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건은 바로 사건 발생 당시 피해자의 상태이다. 만일 피해자가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다면 범죄 자체가 성립하지 않게 되므로 이 부분을 조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신상실은 신체적,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성적 자기 방어를 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잠을 자고 있거나 술에 만취하여 인사불성이 된 상태에서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항거불능은 심신상실 외의 사유로 심리적, 육체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준강간 사건이 술자리 직후에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심신상실에 대한 판단은 피해자가 술에 얼마나 만취했는지 여부를 가지고 결정하게 된다.

문제는 당사자가 술에 취해 당시의 기억을 명확하게 떠올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둘만 있는 공간에서 은밀하게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에 서로의 진술이 엇갈릴 경우, 누구의 말을 신뢰해야 하는지 결정하기 쉽지 않다. 함께 술자리를 가졌던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나 사건 전후 피해자의 태도, 평소 피해자의 주량과 가해자와의 관계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사건의 진위를 파악해야 한다.

만일 피해자가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CCTV나 블랙박스 등을 통해 포착된 피해자의 모습이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있으며 의식이 비교적 명료해 보이는 상황이라면 그 상태를 심신상실로 보기는 어렵다. 실제로 재판부는 술에 취해 일시적으로 기억이 상실한 블랙아웃 상태는 심신상실로 인정하지 않는다. 단순히 피해자의 기억이나 진술에만 의존하여 범죄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피해사실 전후의 객관적 정황상 피해자가 심신상실등이 의심될 정도로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었음이 밝혀진 경우 또는 피해자와 피고인의 관계 등에 비추어 피해자가 정상적인 상태라면 피고인과 성적 관계를 맺거나 이에 수동적으로 동의하리라고 도저히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준강간의 성립이 인정된다. 따라서 개인의 주장보다는 여러 증거를 토대로 형사전문 변호사와 함께 탄탄한 논리를 구축해야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유앤파트너스 전형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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