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 이야기]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할까요?

매력 없는 이야기지만 저의 경우에는 ‘살 집’이 필요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지방에서 자란 저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느라 하숙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결혼한 형들에게까지 차례로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그런 것들이 점점 불편해져서 내 집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렇다면 아예 결혼을 하는 게 낫겠다는 계산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 그 무렵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결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아주 정나미 떨어지는 말이겠지만 미안하게도 사실입니다.

저는 결혼하기 전 소위 ‘프로포즈 이벤트’를 하지 않았습니다.
결혼 전 아내가 “가족이나 친구들이 ‘그 사람하고 결혼을 하기는 할 거냐’고 자꾸 묻는다.”고 하기에 “그럴 거라고 말하지 그랬어요?. 나는 같이 살고 싶은데.” 라고 대답한 게 전부입니다. 저는 이런 청혼 아닌 청혼을 아내가 받아준 것을 정말 다행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사실 그 보다 더 다행인 것은 그때 내게 ‘살 집에 대한 필요'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십중팔구 한참 후에 다른 여인과 결혼을 해서 살고 있을 거고, 그것으로 나의 삶은 현재와 판이하게 달라져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는 그런 순간들이 꽤 많습니다. 마지못해 받아들인 상황이 최상의 기회였다거나, 최대의 이익을 얻을 거라 확신했지만 참담한 결과로 끝이 나는 경우들 말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내가 결혼하기로 결정했지만 사실은 결혼이 나의 삶을 결정짓더라는 말입니다.

 

저는 정신과 의사가 된 지 한참 후에 부부가족치료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뒤늦게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환자 치료가 목적이었습니다. 정신과를 찾는 분들 중 상당수가 가정에서의 문제를 안고 있지만 전통적인 정신의학만으로는 충분한 도움을 주기 어려웠기 때문에, 정신의학을 보충할 수 있는 치료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 시작했던 공부가,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국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한 것과 부부가족치료를 공부한 것으로 제 삶은 아주 많이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부부가족치료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과 사랑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은 ‘살 집’과 같은 필요 때문에 구입하는 상품이 아니며, 뜨거운 사랑의 열정으로 시작할 수 있는 모험도 아닙니다. ​어찌 보면 사랑이나 결혼까지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을 잘 해내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동화나 드라마가 ‘두 사람은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끝을 맺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부부라는 관계가 얼마나 모진 악연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주변이나 뉴스 등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부부 간의 폭력뿐 아니라 살인이나 자살이 드물지 않은 것을 보면 부부갈등에 이은 이혼 정도는 오히려 점잖은 편에 속합니다. 주목할 것은, 이런 부부들도 그런 상황에 이르기 전까지는 다른 행복한 부부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서로 없으면 죽고 못 살 것 같은 연애를 거쳐서 결혼한 부부나 정반대로 중매 또는 소개소를 거쳐서 결혼한 부부 모두 시간이 지나면 그 결혼 만족도에 별 차이가 없더라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보면 결혼에서의 성공 여부는 결혼 당시의 친밀감보다는 결혼과 배우자에 대하여 어떠한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부가족 상담을 마치는 많은 분들이 “치료를 받으면서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었어요. 미리 알았더라면 이런 혼란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요…” 라고 말합니다.현실에서는 모든 부부가 갈등을 겪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갈등은 단순히 ‘두 사람이 맞지 않거나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신호가 아니라, ‘지금보다 더 나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안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행복한 부부란 갈등이 없는 부부가 아니라 갈등을 잘 풀어가는 부부입니다.​

요사이 젊은이들 중에는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포기해버린 듯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간단히 말해서 현재 결혼해서 사는 사람들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도 사랑에 대한 욕구마저 없을 리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욕구가 결혼을 통해서 충족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거나, 또 자신 역시 상대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대단히 영리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역시 결혼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원래 결혼은 욕구의 충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면 모순되는 것 같겠지만 지금 같은 시대에 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생각이 짧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들 중에는 행복한 기대에 들떠있는 사람도 있고, 또 일부는 남모르는 불안감을 애써 감추면서 결혼을 감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의 사랑에 취하여 또는 결혼식과 살림의 준비에 쫓겨서, 가장 중요한 점, 즉 자신들이 어떻게 살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경우들도 적지 않습니다. 한 치 앞의 일도 알수 없는 삶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기울여야 할 주의를 소홀히 해서는 뜻밖에 끔찍한 결과를 맞게 될 수도 있습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바라는 것이 충족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서, 사랑과 결혼을 미화하여 우리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사랑도 결혼도 함부로 할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 합니다. 결혼을 단순히 생활의 편리를 위한 선택이나 혼인 서약에 따르는 의무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결혼을 너무 좁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젊은이들이 거짓 사랑이 아니라 진짜 사랑, 결혼의 겉모습이 아니라 인격의 결합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게 되기를 바랍니다.

​결혼과 사랑에는 놀라운 신비가 숨겨져 있는데, 그 신비는 결혼을 하고 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가정을 지켜낸 사람 자신의 ‘인격적 변화’에서 발견됩니다. 저는 이런 변화를 저 자신의 경험, 즉 과거의 제가 단순하게 원했던 ‘살 집’보다 훨씬 큰 ‘깨달음’을 얻게 된 것과, 또 저와 상담을 하여 행복을 되찾은 부부들이 단순히 ‘결혼 생활의 연장’이 아니라 ‘더 깊은 부부 관계’를 얻게 되는 것을 목격하면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결혼을 앞둔 사람들뿐 아니라 이미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그 동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깊은 사랑과 행복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실 누구인들 결혼을 통해서 행복해지는 것을 마다하겠습니까?
​그 방법을 잘못 찾거나 또는 아예 포기하기 때문에 얻지 못할 뿐이겠지요. 그래서인지 사실 젊었을 때는 많은 시행착오를 저지르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철들기’ 까지 반드시 오랜 세월이 필요할까요? 그래서 젊었을 때는 아옹다옹 싸우더라도, 나중에라도 ‘사이 좋은’ 부부가 될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그런 ‘기적’을 믿는 사람들은 “젊어서 마음대로 살다가, 나이 들어서 오붓하게 사는 게 더 좋지 않겠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십 년을 함께 살면서도 끝내 좋은 관계로 회복하지 못하는 부부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단순히 세월이 지나서 그렇게 되기란 거의 불가능하며,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그 동안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따라서 가능하면 결혼 전에 아니면 적어도 결혼 초기에 사랑과 결혼 생활에 대한 바른 관점과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젊었을 때 올바른 부부 관계를 맺으면 갈등과 고통이라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불필요한 기간을 거치지 않고도 처음부터 끝까지 오래도록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결혼 생활을 잘하기 위한 비결은 자신과 상대, 그리고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는 데서 시작합니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관점을 새롭게 해주는 것, 그래서 진정으로 행복한 삶에 도움을 주는 것, 이것이 제가 이 글을 통해 많은 분들과 소통하려는 이유입니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현)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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